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누가 냄비의 민족 아니랄까봐, 개라고는 글로 배운 것이 전부인 주제에, 대책 없이 덜컥 개를 입양한지 반 년이 된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개 복'은 확실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심으로.
400그램이 안 되던 복순이는 이제 2.2키로를 넘긴 미모의 성견이 되었다. 반 년전만 하더라도, 개나 고양이더러 미모라는 말 갖다붙이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이건만 이리봐도 저리봐도 복순이의 미모는 진정 블랙핑크 언니들을 찜쪄먹고도 남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아가씨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입양했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개 복이 많다.
이른 여름 언제였나, 미쳐 장마가 시작도 되기 전, 아직 피서객들이 몰려오기 전 해운대에 복순이와 둘이 내려 갔는데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내려가느라 차 표도 겨우겨우 끊어 내려갔다 덕분에 해운대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두워진 해운대를 복순이와 산책 할 수가 없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한 발자국 떼면 말 거는 사람들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어머, 이렇게 예쁘다니!"
자식이 예쁘면 이런 기분일랑가.
으쓱거리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담으며, 수줍은 척 빠르게 도망치는 걸음 내내 흐뭇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었다. 예뻐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미스코리아 뽑듯 고르고 고른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예쁘기까지 한 것인지 나도 가끔 궁금했건만. 정말이지 남들 눈에도 그렇게 예쁜가보다. 우연히 내게 와 준 너는 도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예쁘단 말이냐. 나는 참 개 복도 많다.
동물병원 선생님말씀을 빌자면, 성격은 마치 유재석같이 둥글둥글하다고 한다. 그러게, 나는 포메라니안은 앙칼지고 못된 종자로만 알았는데, 복순이는 그야말로 순딩이 그 자체이다. 어째 개를 키우는데,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안 난다. 누가 온다고 짖고, 배고프다고 짖고, 자기 보라고 짖고, 놀자고 짖는게 개가 아니겠는가만은, 이 아가씨는 그저 살랑살랑 곁에 와서 헥헥거리다가 내가 바쁘면 그 옆에 엎드려서 가만히 쳐다본다. 친구가 놀러와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쟤 성대 수술했어?"
"아니."
"왜 안 짖어?"
그 말을 들으니, 걱정이 되어 또 병원에 달려갔다. 동네 팔불출 초보 개 어멈으로 이름을 날리는 나를 딱하게 생각하시는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개가 꼭 짖지는 않아요."
"성대수술 했냐고 묻고들 하길래, 뭔가 해야되는 걸 못해줬나 미안해서요."
"하도 잘 갖다 바쳐주셔서 짖을 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와, 힐링 되네요."
대단한 것 해 준것도 없는데, 좋다고 웃는 얼굴 보여주는 복순이를 걸리다가 잡아 올려 끌어안았다.
"나한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복순아."
나는 참 개 복도 많지. 돌아오는 길 내내, 피식피식 웃으며 개 복많은 내 반려견 라이프를 그렇게 곱씹었었다.
한 달전, 복순이는 에스컬레이터에 앞발이 끼는 바람에 뼈 두 마디가 절단났고, 너덜거리는 젤리 패드와 인대를 절단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잠실 본가에 들릴 때마다 내 운전이 문제가 있는지 차에서 멀미를 하는 통에 내 딴에는 곱게 모신다고 지하철을 탄 것이다. 캐리어에 꽁꽁 싸메두었던 복순이는 매일같이 산책하는 공원 입구에 연결된 에스칼레이터를 타자, 제가 아는 곳이라며 내리고 싶어했다. 오랜 시간 잘 참았다는 마음에 캐리어에서 꺼내어 에스컬레이터를 태웠는데, 아뿔싸. 신나게 뛰어 오르던 복순이와 에스컬레이터의 리듬이 너무 맞아버린 것이었다. 생전 짖지 않던 복순이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고, 나는 이유를 모르다가 앞발이 낀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넘실넘실 밀려올라오는 계단들에 고통이 이어졌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빼냈다. 젤리 패드 하나가 너덜거렸다. 눈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작은 앞발을 보고 나는 한 걸음에 병원으로 내달렸다. 내게 안긴 복순이는 짖지 않았다. 낑낑거리던 소리도 잦아들었다. 복순이는 가만히 안겨있었다.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복순이를 에스컬레이터에 태워놓고 카톡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안고 탔던 그 에스컬레이터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나. 왜 한 눈 판 것인가. 다시 걷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피가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엉엉엉. 복순아, 미안해. 이딴식으로 키울거면서, 나를 만난 것을 행운으로 만들어주겠다며, 복많은 소녀가 되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였지. 나를 만나 발이 다쳤다고 하면 어쩌나. 우리의 만남이 비극으로 끝나면 어떻게 하나. 검사해보고 전화해준다는 병원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꺼이꺼이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온 전화가 나를 깨울 때까지.
"뼈는 이미 절단되었고, 젤리 패드도 같이 잘라야할 것 같아요."
"엉엉, 걸을 수는 있나요?"
"경과 봐야되긴 하지만, 걷는 데는 지장 없을 거에요. 너무 놀라셨죠."
"엉엉, 미안해서 어쩌죠. 잘못 되면 어쩌죠."
"잘 될거에요"
입원시키라고 하시고, 며칠 뒤에 면회오라고 하셨다. 반 년 만에 오피스텔에 나 혼자 앉아 있자니, 심장이 쪼그라들것만 같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내 발가락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도도도도 원목 바닥을 스치는 복순이 발톱소리가 없었다. 어느샌가 나타나 놀자고 점프하는 복순이가 없었다. 화분을 파헤치다 멈칫거리며 도망가는 소리, 붙박이 옷장들 사이로 킁킁대며 점프하는 소리가 눈물나게 그리웠다. 아니, 만난지 반 년밖에 안되었건만, 이렇게 내 인생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버렸구나. 복순아, 나는 정말이지 너 없는 내 하루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나를 혼자 두지 말아줘.
목에 플라스틱 카라를 두 개나 겹쳐 쓴 복순이는 마취 주사가 덜 깬 모습이었건만, 어째 나를 알아보았다. 기물기물 감기는 눈을 애써 뜨더니 꼬리치며 낑낑거렸다. 나는 작은 아크릴박스 회복실에 갇힌 복순이를 보며 미안하다며 통곡했다. 병원사람들이 내게 청심환을 권했다. 약간 부끄러웠지만, 눈물이 멈추진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입원했던 복순이를, 그래도 내가 돌보겠다며 집으로 데려왔다. 선생님은 조금 걱정하며 말씀하셨다.
"서는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본인이 워낙 서서 움직이려는 의지가 강해요."
"아픈데 무리하는 거면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아프면 강아지들이 안 걸으려고 할 텐데, 복순이는 참 씩씩한 것 같아요. 불편하고 어색해도 본인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성격인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걱정이 덜해요."
"감사합니다, 엉엉엉."
플라스틱 카라를 끼고 이곳 저곳 부딪혀가며 붕대를 잡아빼려 갖은 노력을 다 하던 복순이는 씩씩하게 버텨내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난 요즘은 예전처럼 폴짝거린다. 아파도, 불편해도, 낑낑거리지도 않고, 짖지도 않고, 움츠러들어 이상한 행동을 하기는 커녕, 더 발랄하게 좁은 오피스텔을 휘젓고 다니더니, 이내 공원에서도 곧잘 뛴다.
나는 개 복도 많지.
어쩌자고 이렇게 의젓하고 착하고 순한데 씩씩하고 영특한데 둥글둥글한 개를 만난 것이냐. 뭘 알고 만난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너는 이렇게 완벽한 것이냐.
나는 개 복도 많지.
가끔, 자려고 누워 있을 때, '얘네들은 10년 사니까 1년에 20만원밖에 안 들어요.'라고 말하던 펫샵 남자가 생각난다. 당연히 10년보다 더 살게, 갖은 정성을 다 하겠지만, 혹시라도 나보다 너가 먼저가게 되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뒤를 생각하고 시작한 사이가 아니다보니, 나는 우리의 뒷 이야기는 상상할 준비가 되지 않는다.
인생이란 게 참 요상하여,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만나지지 않고, 우연히 만나 백년해로 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보다 너를 먼저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몹시도 무섭고 두렵다.
"또 비슷한 거 하나 키웁디다."
누군가 이렇게 말 하는 바람에, 나는 더 끔찍해졌다. 복순이 말고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만나 생각지도 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지금만 생각하고 싶다. 너 없는 시간을 앞서 상상하며 고통받고 싶지 않다. 계획에 없던 너를 만나 진심으로 다행인데, 그 이외의 것을 계획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