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래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1주 정도 먼저 마드리드에 도착한다, 마드리드를 신나게 여행한다, 그리고 1월 3일, ‘콜론(콜롬버스를 가리키는 스페인어)광장’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는 그 연수 프로그램의 셔틀버스를 탄다, 그리고 한 달 잘 논다.
나는 무사히 마드리드에 도착했고, 따라서 나는 행복해해야 했다.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
마드리드.
내 전공, 스페인어를 쓰는 모든 나라의 중심지. 유럽을 두어번 씩 들락거려도 아직 가보지 못한 스페인의 서울. 평소의 나 같으면 무지하게 신이 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오빠’와 헤어지고, 올라탄 AVE(스페인 열차)의 1등석은 TGV의 2등석보다 별로였다. 세련된 AVE의 녹색 스트라이프는 나로 하여금 본래부터 선량한 사람임이 분명한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벙어리처럼 입 한 번 열지 않고 그렇게 5시간이 넘게 마드리드행 기차에 앉아 있었다.
오빠가 나를 깨운 때는 온 사방에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눈이 부셔 깬 것인지 오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깬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튼 골아 떨어졌던 이등병마냥 바짝 군기가 잡힌 모습으로 벌떡 일어났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열차의 차창에 오빠가 기대어 있었다. 오빠는 웃으며 인사했다.
“Good morning.”
“여기 어디에요?”
“거의 다 왔어요. 이제 곧 내려야 되요.”
내려야 된다는 생각은 아까도 했다. 꿈결이었지만, 나는 내가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 내 눈꺼풀위로 어둠이 한 가득 있었을 때, 그 때 분명히 사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내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 뭐라고 말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는 실눈 한 번 제대로 떠 보지 않은 채 다시 잠이 들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내가 내릴 곳을 지나친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반쯤 감긴 눈으로 오빠에게 물었다.
“아까요, 좀 어두울 때 벌써 다 오지 않았나요?”
“국경 직전의 역들이 몇 번 있었죠. 곤히 자다가 뒤척이기에 일어나지 말라고 했어요. 어차피 좀 더 가야 되니까 더 자도 된다고 했었어요.”
“오빠는 정말 밤을 꼴딱 샌 거예요?”
오빠는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CD player를 보여줬다. 세상에. CD라니. 전화기 마다 어플이 내장 되어 있는 21세기에 구석기 시대 청동 거울 같은 걸 들고 있는 이 남자는 정체가 뭘까. 나는 비몽사몽 가운데에서도 CDP가 주는 컬쳐 쇼크 때문에 정신은 차려지려고 했다. 오빠는 내게 손짓 했다.
“이제 진짜 내려야 해요. 일어나요.”
“으으으으.”
다리가 마비 된 것 같았다. 몸부림 심하게 치는 내가 산송장도 아니고 미이라처럼 이 좁은 곳에서 그 긴 밤을 보낸 것이 맞단 말인가. 나는 온 몸을 뒤틀었다.
“잡고 일어나요. 하나, 둘, 셋.”
오빠가 손을 뻗었다. 생각보다 보드라운 손,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오빠의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미이라가 살아나듯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오빠는 나의 빵빵한 레드 칼라 캐리어에 자신의 작지 않은 여행 가방을 양손에 쥐고 그렇게 플랫폼에 내렸다. 오빠를 따라 열차의 계단에 발을 디뎠다. 햇살의 나라,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입구 마을인 Irun, (이룬 지방)은 아침 7시인데도 온 사방이 눈이 부셨다. 역 안에 부는 차가운 겨울바람도 어젯밤 파리의 그 바람보다는 훨씬 따뜻한 것 같았다. 나는 눈이 부셨다.
"마드리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먼가요? 이제 우리 여기서 뭐 타요?”
“우리는 아니에요.”
“오빠 스페인 안 가요?”
“저는 바르셀로나 가요.”
“아. 맞아.”
그랬다. 그 얘기 들은 적 있다. 어제, 간밤에, 당신이 그런 얘기한 것, 기억이 난다. 조금 잠이 깼다. 우리가 어제 만났다는 것. 그것도 기차 역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것, 그리고 한 기차를 우연히 같이 타고 왔다는 것, 다 기억 났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이제 각자 갈 길 가야 되는 구나. 그런데 나 왜 이렇게 서운하죠. 나는 왜 못 할 이별을 하는 것 같죠. 나는 갑자기 이 이별이 몹쓸 짓 같았다.
“이제 우리 따로 가는구나.”
“마드리드는 저기 보이는 계단으로 가요, 맞은 편 플랫폼에서 출발하고, 1시간 안 남았어요. 곧 올 거예요.”
“오빠는요?”
“저는 반대편 건물, 그러니까 저 쪽으로 가야될 것 같아요.”
“아……, 그건 몇 시에 온데요?”
“저기 전광판 얼핏 보니까 11시면 오는 것 같아요.”
“지겹겠다.”
“또 음악 들어야죠.”
“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추억이 나를 울리네.’ 눈썹을 찡그리며 울부짖던 송대관 아저씨가 생각났다. 귓가가 터지도록 스페인어가 들리는 데도 내 귓바퀴 어딘가에는 송대관 아저씨가 노래를 불렀다. 아저씨 말은 반만 맞다. 나는 추억이라고는 바게뜨 빵 하나 나눠먹은 것 뿐인 주제에 이 남자와 헤어진다니 울고 싶었다. 이 몹쓸 서운함은 도대체 뭘까. 어제 우연히 만난 오빠는 도대체 왜 나를 울리려고 하는 걸까. 나는 다시 눈을 비볐다. 오빠는 가만히 캐리어를 밀어줬다.
“Be safe. (조심해요.) 지원씨.”
“오빠도요……. 아, 되게 서운하네요.”
“저도요.”
“우리 다시 못 보는 건 아니겠죠? 나 놀러갈 거예요, 아는 척 할 거죠? 저 정말 바르셀로나 갈 거예요.”
“내 연락처, 이메일 다 있잖아요. 바르셀로나 꼭 놀러 와요.”
오빠는 가만히 웃었다. 또 기억났다. 어젯밤, 시트러스 잔향이 지나가던 당신의 이 선한 미소는 처음부터 나를 녹여버렸다. 저 놈의 미소가 나로 하여금 이 아침, 이 바쁜 아침, 대단히 오래 사귀어온 남자와 헤어지는 것처럼 이렇게 애타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참 못된 미소를 가졌다.
“에이, 그래놓고 내가 연락하면 ‘누구세요?’이러는 거 아니야?”
“하하하하, 이런. 기억 안나요? 어제 지원씨가 지원씨 것도 모두 적어 줬잖아요.”
오 마이 갓. 그랬던가, 난 기억이 안 나는데? 나 치매야? 입을 벌리고 기억 상실증 환자 노릇을 하는 내게 오빠는 주섬주섬 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1004jiwonnie@gmail.com, 한국 전화번호 011-211-8376 아니에요?”
“어? 언제 적었지?”
“많이 졸려했죠. 마드리드까지 또 자면서 가요.”
눈꺼풀 위로 여전히 쏟아질 것 같은 잠을 저리 치우려고 노력하는 내게 오빠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덥석 오빠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을 놓는 것이 이렇게 아쉬운 것은 내가 잠이 덜 깨서인가. 배가 고파서인가.
"서운해요."
“정 많은 지원씨. 기차 또 놓치기 전에 어서 먼저 가요.”
“저기 계단말고 에스컬레이터는 없어요?”
“하하, 여기는 미국이 아니잖아요. 계단 뿐이에요.”
“나 미국서 온 거 아니라니까. 저 서울에서 왔어요. 나중에 헷갈리지 마요!”
“네. 서울서 어학연수 온 지원씨, 조심해서 가요.”
“우리 또 볼 거죠?”
“연락해요.”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악수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애들 장난처럼 말 하는 내내 마주 잡은 손을 위아래로 출렁거리게 흔들었다. 오빠는 내 손을 놓지 못하고 그렇게 출렁여줬다.
“연락해요!!!”
나는 계단을 올라가서도 두어 번 뒤돌아보며 아쉽다는 내색을 유감없이 내뱉었다. 그 때는 그냥 내 짐 때문에 내 대신 밤을 새버린 이 바보 같은 남자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었는데 그저 ‘연락하자’는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말 못할 아쉬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차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내다볼 때만해도 나는 그가 그 플랫폼에 계속 서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난 그저 보통의 여행자들이 창가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창문 밖을 살피는 것처럼 그렇게 두리번거리다가 저 바깥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그냥 그런 눈길을 느꼈다.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붙였다.
그 때였다.
오빠는 건너편 플랫폼에서 내가 앉은 열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밖에서 열차의 창문 안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10년 넘게 붙어 지낸 동거남과 이별한 여자처럼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꿈속을 헤매듯 졸렸던 나는 그렇게 처음 본 남자, 긴긴밤 기차 한 칸에서 내 대신 짐을 살펴준 남자와 유난스러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만남은 이별을 동반하고, 원래 만남은 이별의 다른 말'이란 거창한 말이 생각났다. 말도 안 돼. 그런 건 지금 이순간을 위한 말은 아니야. 어제 만난 당신과 오늘 이렇게 이별하며 내 가슴 한 구석이 이렇게 싸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도대체 나나 당신은 서로 언제 봤다고, 뭐가 아쉬워 이렇게 손을 흔드는가. 나는 기차가 출발하고 꽤나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팔이 아파 떨어질이 되도록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