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역에 내리니 머리가 아팠다. 오후 3시였던가. 만 40시간을 침대 구경 못한 거지가 된 나는 기차역의 벤치만 봐도 조용히 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뜨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또 한국말이 들렸다.
“혼자 왔어요?”
“에? 한국 사람이에요?”
“하하, ‘긴가 민가‘했는데 한국 분 맞으시군요. 배낭여행 왔어요?”
남자는 여행객 차림이었다. 다부진 표정이 인상적인 그 사람은 그래도 나보다는 덜 찌들어 보였다. 그 놈의 마일리지가 사람 잡았지, 왜 나는 이 고행 길을 사서 온 것일까. 나는 힘없이 말했다.
“그런 셈이죠.”
“민박집 잡았어요?”
“민박이요?”
“아니면, 호텔팩 왔어요? 호텔 예약은 했고요?”
호텔. 예약한 적은 없다. 내가 듣기로 마드리드는 배낭여행의 시즌에도 항상 호텔의 빈 방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겨울은 배낭여행 비수기 아닌가. 그런데 아저씨는 ‘뉴규?’
“아저씨는 여행사 사람이에요?”
“아, 아니요. 저는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네. 로펌에 취직하기 전에 유럽 여행 왔어요. 저는 마드리드 시내로 나가려고 택시 타려는데, 아가씨도 마드리드 가지 않을까 해서요. 일행이 있으시면 뭐, 좋은 여행 하시고요.”
토정비결이라도 보고 올 걸. 올 한해는 남자 운이 대박이 되려나, 왜 가는 곳 마다 날 못 도와 줘서 안달인 남자들이 줄을 서는 것인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여기 기차역이었죠! 아저씨, 택시 타실 거면 저도 같이 가요. 어서 시내로 가야죠.”
나는 하품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다부진 변호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많이 피곤 하신가봐요.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포르투갈?”
“아뇨, 파리에서요. 말도 마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요.”
“민박집에 전화를 해야겠네요. 일행이 하나 더 있다고 미리 말을 해야 자리가 있어요.”
“핸드폰 있어요?”
“로밍 해왔어요.”
아. 로밍이라. 진짜 한국사람 맞구나. 하느님, 제게 여기서 애국가를 부르라면 부르겠어요. 없던 애국심이 샘솟아 오르는 순간들. 나는 만 이틀을 모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좋다. 나도 해올걸.”
“비싸긴 해도 제가 성질이 급해서요. 전화기 없으면 못 살겠더라고요.”
“아, 저는 덕분에 너무 편하네요. 저 정말 저도 모르게 착하게 살았나봐요.”
나도 모르게 그런 부끄러운 말이 절로 튀어 나왔지만 창피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귀인의 퍼레이드인가. ‘남쪽으로 가면 귀인들을 만날 것‘이라는 ’오늘의 운세‘가 비행기 한 구석 구겨 둔 신문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내 팔자를 꼭 안고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럼, 택시 잡습니다."
"네."
홀연히 나타난 마드리드의 귀인을 살펴보았다. 이 남자는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데 비해서 피부가 젊어보였다. 하긴, 변호사는 중년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생각보다 젊은 변호사인 이 남자는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어보이는 맑고 고운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남자의 피부를 감상할 여유가 있는 내가 놀라웠다. 그런데 나는 더 놀라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이 남자가 당찬 발음으로 영어를 쓰면서부터.
“Downtown, please.(시내요.)“
“Que? (뭐요?- 스페인어)”
하하. 하하하.
세상에. 아저씨. 아저씨는 뉴욕 변호사신가? 마드리드 오셔서 왠 ‘다운타운’ 타령인가. 나는 내 수줍은 스페인어를 여기서 꺼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변호사’의 영어로 목적지에 먼저 도착할지, 아니면 나의 ‘발 스페인어’로 먼저 도착할지 계산해야 했다. 나는 변호사님께 수줍게 행선지를 물었다.
“민박집 주소가 어떻게 되요?”
“시내라는데요.”
“저 좀 보여주세요.”
“영어 잘해요?”
“그게 아니고요.”
곱게 접어둔 프린트 물에는 민박집의 위치를 설명하는 구구한 설명들이 가득 있었다. 아하, 주거지에 불법으로 침대를 여러 개 엮어 만든 한국 민박집을 가겠다는 거구나. 찬찬히 작은 지도를 살폈다. 알만한 명승지를 소리 높여 외치자. 나는 언뜻 눈에 띄는 단어 가운데 회화 책에서 100번은 본 단어, ‘Plaza de Mayor (마요르 광장)‘를 발견했다. 그리고 독립군처럼 크게 외쳤다.
“Oye, cerca de la Plaza de Mayor. (아저씨, 마요르 광장 근처요.)”
“Si, senorita. (네, 아가씨.) Vamos. (갑시다.)”
제 나라 말을 좀 읊어 주자, 당나귀가 엉덩이를 차인 것처럼 ‘히히힝’ 거리던 택시 아저씨는 신나게 엑셀을 밟았다. 나는 좀 무안했지만 이게 빠른 길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어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싶었고, 민박집을 찾아 또 헤매기에는 조금 많이 피곤했다. 그런데, 내 옆의 변호사 아저씨는 나의 한 줄 스페인어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스페인 분이신가요?”
“아니요. 공부를 좀 했어요.”
“전공요? 그럼 스페인어과?”
“네.”
“어느 대학? 외대?”
“네? 하하.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세요?”
“아, 기분 나쁘시면 죄송해요. 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왔고, 올해 사법연수원 1년차인 지대범이라고 합니다.”
“어, 변호사 아니고요?”
“1년 뒤에 자격증이 나옵니다. 연수원이라고 말하면 잘 모르잖아요. 행시도 연수원이 있고.”
“에이, 누가 연수원을 몰라.”
“아무튼 감동적이네요. 제가 민박집에다 ‘마요르 광장’에 픽업 나오라고 전화 할게요. 그리고, 중요한 얘기를 안했는데요."
"뭐죠?"
"요금은 반반씩 냅니다.”
아이고, 나를 굳이 불러 세운 것은 택시비 반띵 때문이었군요. ‘반반 무 많이’도 아니고, 반띵 정신은 세계로 뻗어나가는구나.그래,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택시 라이드를 다 주겠어.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은 김칫국일세. 나는 그제야 택시비가 걱정되었다. 여전히 100유로(Euro) 10장뿐인 내 지갑. 나는 도대체 어떻게 웃으며 내려야 이 무서운 아저씨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복잡해진 내 머릿속도 모르고, 빠릿빠릿해 보이는 이 예비변호사는 내게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로밍폰을 향하여 ‘여보세요’를 외쳤다. 목소리는 무거웠다. 5분 뒤에 도착하니 마요르 광장으로 픽업을 나오라. 고압적이고 무거웠다. 머리 안 감은지 약 40시간이 넘어가는 나로서는 어떻게 몸을 배배꼬아야 가장 기름기가 덜한 부분이 낯선 예비 변호사님의 언저리에 놓일지 고민되었는데, 저 목소리를 들으니 더 위축되었다. 나는 내 지갑 사정을 털어놓기로 했다.
“제가 100유로짜리들 밖에 안 가져와서요, 민박집 가서 바꿔드려도 되죠?”
“아, 환전을 다 100유로로만 했어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금 섭섭했다. 섭섭할 이유는 없었지만, 너무 좋아했던 내 자신이 창피해서 부끄러웠다. 나를 역에서 보자마자 반긴 것은 '반띵' 때문이었으니 내가 귀인 어쩌구 날뛰던 것은 부끄러울 일이었다. 나는 이 낯선 변호사님 덕분에 마드리드에 도착한지 10분도 안 되어, 어젯밤 만난 오빠 생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연락하라며 플랫폼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내 머릿속은 온통 ‘머리 기름’과 ‘돈 문제’로 가득했다.
**
지대범은 ‘대범’했다. 민박집 주인 같아 보이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존댓말은 존댓말이었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고압적인 멘트로 제 가방까지 들라고 시켰다. 삼촌뻘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먼저 이리 달라는 제스처를 하기 전에 이미 지대범의 양 손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 역시 입이 열 개라도 아저씨께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대범은 내 빨간 캐리어까지 제 식구의 짐 마냥 아저씨의 양 손에 들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요르 광장 정 중앙에서부터 세르반테스가 살았다는 그 좁은 골목 구석의 끝에 있는 민박집으로 가는 길 내내 땅만 보고 걸었다. 대범한 지대범씨는 나만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마드리드 돌아볼 계획 다 세우셨어요?”
“음, 계획은 없는데.”
“그냥 오신 거구나. 시간 낭비하겠네. 여행책 안 사왔어요?”
시간 낭비라.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이 기억났다. TV 앞에 붙어 있는 내 등 뒤로 아빠는 ‘그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잠이라도 푹 자는 게 낫다’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살아보니 그런 것은 시간낭비가 맞다. 돌아보면 남는 것이라고는 ‘연예인들의 과거사 고백‘뿐, 내 마음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마드리드 시내를 가로, 세로로 몇 시간 내에 다닐 것인지, 이 오래된 도시를 단 며칠 만에 주파할 것인지를 계획 세우지 않는 것이 시간 낭비일까. 그것이 과연 멍 때리고 TV보던 고등학생이 들어야 했던 그 말을 들을 일일까. 나는 입이 좀 나와 버렸다.
“누가 며칠까지 다 보라고 숙제 낸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시간 낭비, 돈 낭비죠, 유럽 다른 데도 얼마나 볼 게 많은데요. 아, 맞다. 스페인 공부하신 분에게 헛소리처럼 들리나요?하하하.”
“아, 아니에요.”
“하하하하.”
그는 조금 소름끼칠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계획은 유럽 주요 도시들의 왕궁 양식을 비교해보고, 3대 미술관의 유명한 작품을 다 보는 거예요. 직업상 필요하죠. 제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워낙 수준들이 높을 거니까 미리 준비해둔다고나 할까.”
으악. 오글거린다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귀인이며 토정비결이며 모두 취소다. 나는 성의 없이 대답했다.
“아, 예.”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스페인 왕궁, 그리고 큰 미술관이 있다는 거 그거 거든요? 짐 푸시고 저랑 나가시죠.”
으악. 으악. 으악.
아저씨, 아저씨는 40시간 이상 샤워하지 못한 여자랑 어딜 돌아다니고 싶으세요? 저는 물이 필요하다고요 나는 고개를 흔들고 손을 내저었다.
“Prado(프라도)에는 지금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네? 왜 안돼요? 누구 만날 약속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저녁 대접할게요. 튕기고 그러실 필요 없어요.”
튕기고 그러시다니, 지금 제가 당신하고 ‘밀당’하는 것 같나요.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지, 이 남자 알고 보면 변태 취향인지도 몰라. 화장기 없이 자연산 기름으로 머리가 팍 눌려버린 여자만 보면 들이대고 싶어지는 변태. 나는 혼자 조금 킥킥거렸다. 그것이 대범씨에게는 ‘Yes'사인으로 들린 것 같았다.
“가시는 겁니다.”
“사실은 제가요. 너무 차를 오래 타서……. 저 샤워하고 싶어서요.”
“그래요? 그럼 기다릴게요. 어차피 혼자 나가면 저녁 먹기도 그렇고, 저녁 같이 먹어요.”
으으윽. 저녁이라. 그거 레스토랑 가는 걸 말하는 것인가요.
먹은 거라고는 입안이 찢어질 것 같던 바게트 샌드위치와 냉장고에서 갓 꺼낸 얼음맛 나는 초코 머핀이 전부인 내 눈앞에, 테이블마다 촛불 켜 놓고 은수저 찰랑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경쾌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이 지나갔다. 레스토랑. 이 제안은 지나치게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김칫국이었다.
“오며 가며 스페인어 하시는 분하고 다니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일 것 같아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거예요. 같이 가시죠!”
그렇구나. 이 똑똑한 아저씨에게 그새 내가 스페인어를 좀 한다는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버린 것이다. 무식해서 용감하던 택시 안과 달리 ‘다운타운’을 외쳐봤자 알아들어주지 못하는 마드리드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이 사람은 내게 용건이 생겨버렸다. 아름다운 레스토랑에 앉아 수저가 부딪히는 맛있는 소리를 상상하던 나는 다시 입이 나와 버렸다.
“제가 정말 졸려서 샤워하면 잘 것 같아요. 어쩌죠?”
“하하하. 너무 비싸신데요? 근데, 이름이 뭐죠?”
단순히 내 이름을 묻는데도 확 느껴지는 거부감은 오던 잠을 쫓았다. 내가 문제일까. 중앙기차역에서 마요르 광장까지 오는데 얼마나 흘렀다고 이렇게 만정 떨어져하는가. 남들이 보면 멀쩡할 이 남자를 내가 거슬려할 만한 자격이 있나, 주제가 되는가. 이 분이 나더러 백수 면피용 직업, ‘대학원생’ 명함을 가졌다고 구박을 한 적이 있나, 너는 왜 한국 여자들처럼 일찍 일어나 예쁘게 단장하지 않냐며 잔소리를 했나. 그는 내게 잘 못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심사가 뒤틀려하나. 내가 뭔데 이렇게 예민을 떠나 반성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이름은, 현지원입니다.”
“지원씨,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더 튕기면 다른 분한테 갑니다.”
나는 잠시 반성했던 1분전 나를 원망했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므로 나는 내가 간택 받은 것을 감사해하며 이 무거운 육신을 발랄하게 이끌고 처음 본 예비 변호사님을 위해 마드리드 시가지투어를 나서야하나보다. 나만 몰랐다. 그를 한 번 힐끔거렸다. 손윗 삼촌뻘의 민박 아저씨를 특급 호텔 ‘벨 보이‘보다 더 알뜰하게 부려먹는 저 패기, 심신의 안녕을 위해 파김치가 된 초면의 여자를 들들 볶는 저 지구력. 이길 수 없었다. 나는 패기와 지구력의 남자, ‘대범 지’에게 이 저녁 내 한 몸 오롯이 진상해 바칠 운명 같았다.
**
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걷는 모양새는 완전히 연인같은 남녀였지만, 나는 그렇게 힘든 길은 전 인생 통틀어 처음 걸어보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이 정수리를 적시는 순간, ‘이대로 이 좁은 샤워실에서 쓰러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건만, 두통이 심해지기는 했어도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 뿐인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샤워실을 나오는 나를 문간에서 맞이하며, 약속시간보다 늦었다는 것처럼 시계를 티 나게 보는 ‘지대범님‘을 마주보면서 ’지금이라도 배가 아프다‘고 하면 안 될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머릿속으로만 고민했다. 그는 이미 ’Dressed up (드레스 업)‘된 상태로 현관을 오락가락 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내 젖은 머리를 ’자연 건조‘시키기로 했다. 길 가로 나온 지대범은 대단히 신나버렸다.
“유럽은 해가 빨리 진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겨울이라 그런가봐요. 여름은 안 그래요.”
“하필 겨울에 와가지고, 에휴……. 근데, 지금은 너무 늦어서 프라도미술관은 못 가겠죠?”
“대범씨 입장하면 호루라기 불 듯한데.”
“아……, 아쉽네요.”
지대범은 ‘진짜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정말 프라도 미술관을 원해서 여길 온 것일까. 나는 그냥 조금 궁금했다.
“내일 아침부터 찬찬히 보시면 되죠. 특별히 프라도에 오고 싶으셨어요?”
“공부하는 거죠. 말씀 드리지 않았나? 제 직업상 수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도 있을 거라, 미리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이것도 다 영업능력 확장의 일환이니까.”
“미술을 상당히 좋아하시나봐요. 스페인 미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로 많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스페인 미술 좋아합니다.”
“고야, 벨라스케스 조아하시나요?”
“무슨 께스요?”
하하. 하하하.
수준 있는 예비 변호사님. 프라도를 보고 싶다 하시면서, 설마 여기까지 오셔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콜렉션’을 찾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시시해지려고 했다. 밥 한끼 값만 하자. 아니지 택시 값까지 후하게 쳐서 많이 웃어주자. 이 어려운 레스토랑 나들이에 내게 마지막 남은 온 에너지를 불살라 주면 나도 날로 먹는 거 아니다. 본분만 다하고는 사뿐히 돌아가야지. 내일은 꼭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민박집에서 한국식 저녁을 얻어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지대범 변호사님은 다부지게 오늘의 계획을 읊었다.
“오늘은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요르 광장’만 돌고, 바로 근사한 식당을 찾아보죠. 마드리드에서 이 정도면 제일 잘 먹었다는 말을 들을만한 큰 호텔은 아는 곳 없나요?”
호텔이라. 신라호텔 찾으시면 안되는데요. 나는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큰 호텔이 근처에 있을까요.”
“저 가이드 비 드리기로 했습니다.”
“뭐 미리 찾아보신 곳 있으세요?”
“그건 제가 스페인어 전공인 지원씨에게 여쭤보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으앙.
넌 나 언제 봤다고 이러는 거야. 너 자꾸 그러면 나 프랑스 식당으로 가는 수가 있어. 난 속으로 이미 니킥, 로킥, 암바까지 모든 테크닉을 동원하여 저 얄미운 주둥이를 혼내주고 있었지만, 차마 액션으로는 옮길 수가 없었다. 저 다부진 몸매로 나를 한 방에 보낼지도 모르는데 몸조심해야지. 어렵게 온 마드리드니까. 나는 대충 밥부터 먹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그 때였다. ‘마요르 광장’을 가로지를 힘도 없던 나에게 ‘찬란한 태양(Solar)’이 보였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럽고 적나라한 잉카문명 스타일의 거대한 ‘스마일 태양’문양이었다. 나는 그것이 레스토랑인지 뭔지 확신하지도 못한 채, 지대범에게 대범하게 재촉했다.
“저기로 가 봐요.”
“저거 뭔데요?”
“먹는 데죠.”
“어디 써 있어요?”
아마도, 이 강아지야. 나는 귀엽기보다는 징글맞은 저 ‘스마일 태양’이 오늘의 마지막 귀인이기를 기도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정말 사람이 복작거리는 거대한 레스토랑이었다.
“우와, 지원씨. 이거 유명한 식당이군요?”
지성이면 감천이고, 끗발 떨어지는 행운도 노래방 시간 연장되듯 스물스물 이어졌다. 이 징글징글 ‘스마일 태양’이 레스토랑 간판이라니. 아직 내 행운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럼요, 저도 교과서에서 많이 본 것 같아요.
“역시, 제 예상이 적중했네요. 제게 큰 도움이 되십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프라도 타령에 슬퍼하던 지대범은 금새 흡족해졌다.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야기를 했다.
“저 사람 먹는 게 뭔가요?”
“글쎄요.”
“저 뒤에 앉은 여자가 먹는 고기 같은 게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뭐죠?”
“대범씨, 먼저 앉아서 메뉴를 보는 게 낫겠어요.”
우리가 태양 아래 서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며 ‘Senor (신사분- 스페인어)’를 애타게 외치던 웨이터는 내가 지대범의 대범한 행동을 막아서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는 시늉을 하자, 내게 윙크를 해줬다. 보통 때의 스테미너만 가지고 있었더라도 나는 웨이터에게 어색한 농담이라도 한 마디 보태주며 회화 연습이라도 해보려고 했겠지. 하지만, 난 그의 절절한 윙크를 보면서 하품을 했다. 정말 피곤했다. 뜨거운 스프라도 먹었다가는 나는 이 식당 의자에 앉아 코를 골며 자버릴 지도 모른다. 어서 대충 먹으며 시간을 잘 때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군. 나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한숨을 쉬었고 지대범은 웃으면서 레스토랑을 품평했다.
“분위기 좋네요.”
분위기 좋다는 말, 그것은 오늘 오후 지대범이 한 말 중에 제일 맞는 말이었다. 늘어져 앉은 나만 빼놓으면 이 레스토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그야말로 ‘페스티발 상태’처럼 보였다. 사소한 단어를 이야기하면서도 눈을 크게 치켜뜨고, 별 것 아닌 이야기인 듯해도 모두 박수를 쳤다. ‘시청각실’에서나 본 것 같았던 사람들, 기분 좋게 소란스러운 스페인 사람들이 드디어 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몽롱한 내 머리와는 다른 활기찬 기운. 좋았다. 나는 웨이터가 가져다준 메뉴판을 보자, 비로소 그 기운을 좀 냈다. 정신이 조금 들었다. 내 앞의 지대범은 기분이 최고로 좋아보였다.
“뭐 시킬래요?”
예비 법조인 대범씨는 어느 덧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해 보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지대범이란 이 남자를 안주 삼아 와인이라도 마시고 싶어졌다.
“저녁 될 만한 것은 뭐든지.”
“그러지 말고 다 불러요. 잘 먹었다, 이런 말 절로 할 만큼. 하하하하하.”
“그럼, 와인도 사 주시나요?”
“좋아요. 레드? 화이트?”
“전 스파클링 있는 화이트와인이면 뭐든 좋아요.”
“에이. 와인 초보구나? 레드가 진짜 아닌가. 레드로 골라봐요.”
그럼 왜 묻니. 니가 먹고 싶은 레드 고르지 왜 묻니. 난 다시 내 첫 번째 만찬의 파트너가 지대범이란 묘한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순한 양이 되기로 했다.
“저는 와인 모르겠어요. 와인 진짜 몰라요. 아무거나 시켜주세요.”
“그럴까요? 저는 좀 배웠거든요. 나는 바디가 무거운 걸 좋아하는 데 와인 초보들은 무거운 거 아주 싫어하잖아요. 고민이네?”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책으로 공부했을 것 같은 지대범의 ‘무거운 와인’은 기대되지 않았다. 지대범은 전화번호부를 펄럭일 기세로 아까 웨이터가 가져다 준 작은 메뉴판을 오래도록 탐구했다. 와인이나 보는 줄 알았더니 정말이지 그 메뉴판에 나온 모든 메뉴를 사법고시 공부하듯 찬찬히 탐구했다. 수십 번을 물었다. 고기의 종류와 소스의 조합여부, 이것이 전통 요리인지 여부, 등등등. 죄 없는 한국인인 나에게 스페인의 식문화를 크로스 체크하던 대범씨는 그렇게 공들여 놓고 결국 재앙을 선택했다. 대단히 고심하여 선택한 그의 디너는 ‘아기 돼지고기 구이(Cochinillo Asado)’와 ‘묵직한 레드와인’ 그리고 ‘엔쵸비’(멸치, 주로 통조림에 절여놓은 거대한 크기의 멸치)가 주재료인 전채요리를 시켰다. 난 그가 웨이터에게 부르는 음식들이 다 장난이길 빌었다. 비린내 확 풍겨올 엔쵸비로 입안을 생선 수족관으로 만들고, 바짝 구운 돼지고기로 그 기름을 재차 입 안에 넣을 생각을 하니, 빈속이 벌써 요동치려고 했다. 나오던 군침이 도로 들어가게 하는 메뉴,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디너를 완성한 지대범은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저녁을 함께 먹게 된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줬다. 사양하고 싶은 관심이었다.
“지원씨는 졸업했어요?”
“어디를요?”
“학교 말이에요, 대학교 졸업했어요? 대학생 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졸업은 했는지, 여쭤봐도 되죠?”
“아. 저는 대학원 다녀요.”
“어디요?”
“서어과 대학원요.”
“그러니까 어디요. 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이라고 말했잖아요.”
“저요? 저는…….”
“프라이버시면 안 말해도 되요.”
하하, 여기까지 물어놓고 말 안하면 프라이버시 지켜주는 거니? 난 약이 오르려고 했다.
“저도 사실 고려대학교 다녀요.”
“아니, 그런데 아까 왜 아는 척 안했어요?”
“제가요? 언제요?”
“아까요. 내가 고려대학교 법대 나왔다고 했을 때, 왜 같은 모교라는 말 안했죠?”
“그런 말을 처음 본 사람한테 갑자기 막 하나요?”
“막하는 말인가? 아, 맞다. 아까 100유로 밖에 없다고 하셨죠? 여기서 바꾸면 되겠네요. 택시비는 10유로만 받을게요. 하하.”
오, 이런.
질문해 놓고 들을 생각 없는 이 태도는 반나절 마주한 지대범과 맥을 같이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어떤 생각으로 사는 걸까 막 화를 내고 싶은 찰나, 진정으로 접시 하나하나 살피며 행복해하는 동심어린 표정을 보니 화가 사그러졌다. 오히려 내 자신이 문제가 아닌지 고민되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엔쵸비를 ‘맛있게도 냠냠’하는 저 순수한 얼굴, 특별히 악한 사람은 아니겠지. 이런 사람 지천에 널려있고, 이미 많이 만나보지 않았던가. 보이는 것에 급급해서 급조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허영심을 장착하느라 바쁜 사람들, 지대범만 잘못이 아니다. 지대범은 평범하다. 그래. 재미나게 밥을 먹자. 착하게 살자. 남의 나라 길을 가다가도 귀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 동안 그래도 착하게 살아서다. 나는 웃었다. 와인 잔을 건배하자고 할 때에도 군소리 없이 ‘짠’도 해줬다. 지대범은 수도 없이 ‘짠’을 했다. 나도 쉴 새없이 ‘짠’을 했다. 손 끝까지 퍼지는 와인의 기운이 내 귓볼까지 뜨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묵직하다는 그 와인이 얼마나 많이 식도를 넘어갔는지 헤아일 수 없어지던 순간, 문득 나의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어제 새벽 한국에서 비행기를 탔고, 노을지는 드골 공항을 지나 깜깜해진 파리의 남역에 내렸다. 유령 열차같던 불꺼진 기차 앞에서 만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Jejus처럼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고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길었던 하루의 시작에서 만난 사람, 이상호가 떠올랐다.
나는 그 때부터 해맑은 예비 변호사님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와인 잔을 도대체 몇 잔을 비웠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냥 흔들리는 내 머릿속은 활달한 마드리드를 배경음악 삼아 남 역의 차가웠던 그 공기와 날카로운 콧날의 이상호로 완전히 채워졌다. 내 행운의 남자,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