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어제 술 많이 먹었나봐.”
눈을 떠보니 내 몸뚱이는 좁은 방 안의 2층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실눈을 뜨는 순간 왼쪽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역시 와인은 내게 숙취를 가져다주는 사악한 놈이구나. 괜히 공짜 좋아하다 이렇게 되었다. 아, 그런데, 난 어제 누구와 와인을 마셨단 말인가.
“아저씨, 저 어제 누구랑 들어왔죠?”
“에? 지대범인지 뭔지가 남자친구 아니여? 어제 아가씨 그 놈하고 나갔다 들어왔잖아요.”
“몇 시죠?”
“지금 오후 세 시.”
세시. 그리고 남친 용의자, 지대범. 나는 이 두 단어 모두 실감이 안 났다.
지대범, 들어 본 이름이었다. 희미한 이름의 그 남자를 떠올려보았다. 다부지게 딱 벌어진 조폭 스타일의 어깨와 짧은 목, 그리고 앙다문 입술과 무거운 안경테가 가물가물 기억났다.
“아…….”
“술 좀 깨? 술 많이 먹었더만,”
기억난다. 징글맞게 웃고 있던 스마일 태양,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던 알콜의 기운. 나는 그런 곳에서 와인을 마셨다. 하지만, 그 이후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저씨, 저 어제 어떻게 들어왔어요?”
“아이고, 말도 마. 다른 학생들 다 자고 있는데, 그 총각 취해가지고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오고, 아가씨는 완전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지.”
“그 사람은 나갔어요?”
“벌써 나갔지. 아침 빨리 달라고 해서 원래 우리 집 하던 대로 토스트 해줬더니, 이런 걸로 해장을 어떻게 하냐고 얼마나 궁시렁 대는지……. 우리가 계란 국이라도 괜찮겠냐고 해서 겨우 달랬지, 아니면 정말 해장국 하나 때문에 설교 한 시간 들을 뻔했어. 근데, 남자친구는 아니야?”
난 아저씨의 마지막 질문은 듣지 못했다.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에 얼굴에 웃음이 잔뜩 피어올랐다. 그가 해장국을 먹어서 다행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가 나 없이 먼저 나갔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었다. 아픈 머리를 이고 앉아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나는 그 짧은 시간, 그 예비 변호사에 대해 뭐 하나 좋은 기억을 가진 게 없었다. 비록 그가 날 때린 적도 없고, ‘해꼬지’한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그가 나 없이 나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나는 오후에 오롯이 나만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신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여전히 왼쪽 머리가 아팠지만,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제야 난 자유였다. 별로 계획은 없었지만, 난 그냥 무작정 걸었다. 잘 자고 일어난 직후의 힘이 뻗치는 상쾌함에 더하여 앓던 이도 하나 뺐다. 나는 오롯이 자유인이 되었다. 절로 노래가 나올 일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지대범도. 나를 구박할 수 없는 시간, 완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카페가 보이면 마음에 드는 천막 색깔을 골라 앉아 한약보다 더 진한 커피를 시켜 먹을 심산이었다. 아랍의 영향이 유럽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남아있는 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오히려 더 진한 아랍식 커피원두를 쓴다던데, 글로 배운 그 진한 커피, 설탕을 반 채워주는 ‘cafe bonbon(카페 봉봉)’이 절실히 필요했다. 혈관 속 가득히 카페인을 채우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보면 된다. 닥터 지바고의 촬영지였다는 옛날 기차역, 요즘은 식물원으로 변한 그 곳도 가보고 싶고, 교과서 맨 앞장에 나오는 피카소 아저씨의 ‘게르니카’, 그 대박 그림이 걸려있다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마드리드를 오고 싶어 했던 이유는 ‘투우’와 ‘레알 마드리드’였지 피카소는 아니었다. 공부하는 내내, 투우 시즌에 맞춰, 축구 시즌에 맞춰 마드리드에 한 번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겨울의 시작에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겠지.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달달한 커피를 오래도록 음미하며 그렇게 카페에서 혼자 놀았다.
길 가는 사람만 줄창 구경하던 나는 그 날 ‘닥터 지바고’를 촬영했다는 식물원은 한 곳 겨우 들렸다. 식물이 식물이고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 영화에서 어느 언저리에 어떤 식물분이 등장했었는지는 기억이 날만한 영화도 아니었지만 나는 몸소 사진도 찍었다. 느릿느릿 성의 없는 여행객이 되어 어슬렁거렸다. 낯선 마드리드가 너무 편했다. 어느 덧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시간 낭비라고 낙담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난 시간이 오후 세시가 넘었던 걸 생각하면 이것도 큰 수확같았다. 마드리드가 서울만큼 거대한 곳이었다면 이런 막무가내 스케줄은 불가능했을 거니까 행복할 일이었다. 난 흐뭇한 마음에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교과서에서 배운 오징어 먹물 ‘빠에이야’ (볶음밥 종류)와 스텔라 맥주를 시켰다. 그 때는 신났다. 혼자 멋 내던 그 순간까지는 마드리드가 내게 약속의 땅같이 느껴졌다. 스텔라 맥주를 목으로 넘길 때 까지는 서울의 반보다 작은 마드리드가 좋았다. 하지만, 넓지 않은 그 다운타운을 홀로 걷다가 반쯤 눈이 풀린 지대범씨를 다시 만나면서부터는 마드리드를 좋아할 수 없었다. 지대범은 멀리서 봐도 완전 패닉 상태였다. 나는 도저히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대범씨.”
“아, 지원씨. 저 진짜 어떻게 하죠.”
“무슨 일이에요?”
지대범의 자신감 충만하던 그 애티튜드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을까. 그의 얼굴에는 ‘호환마마‘보다 더한 공포가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무슨 일이 천하의 지대범을 이렇게 만들었나.
“대범씨, 정신 차리세요.”
“저……, 저 강도당한 것 같아요.”
“네? 뭐라고요?”
“아니지. 폭행이 없었으니 절도구나. 절도범들이 제 가방을 잘라갔어요.”
“어, 어디서요?”
“모르겠어요. 아까 프라도에서 나와서 돈을 뽑으려고 했는데 가방이…….”
강도든 절도든 뭔가 크게 당한 그는 애잔하게도 몸통이 거덜 난 메신저 백의 끈을 달랑 들고 서 있었다. 아, 그는 또 ‘한국 남자 여행객’처럼 보이는 폴로모자와, ‘한국 남자 여행객’만 좋아하는 발리 메신저 백을 메고 있었구나. 공식 의상을 제대로 입으면 집시들에게 바로 찍힌다. 그의 가방은 늘 굶주려 돌아다니는 스페인 집시들에게 ‘오늘의 대박’으로 기록되고 있으리라. 나는 그 끈만 쥐고 서 있는 그를 보며 뭐라도 꼭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만하던 그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도 힘 빠져 보이는 그 모습은 내게 큰 함정이 되었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뇨.”
“같이 가요. 따뜻한 거, 우선 저녁 먹으러 가요.”
“경찰서는 어디 있죠.”
“변호사시라면서 이 상황에서 스페인 경찰부터 찾으면 어떻게 해요. 카드부터 전화로 정지 시키고 여행자 수표는 은행으로 전화해야죠. 현금 많았어요?”
“네. 전부요.”
“현금은 그냥 집시한테 적선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여긴 집시들 거의 불법체류라 그 자리에서 못 잡으면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저 보다 절도 사건처리를 더 잘 아시죠.”
“그런가요.”
난 그냥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나는 원래 오지랖과 거리가 먼 인간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민박집에서 보자며 바쁜 척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안 하던 짓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겁에 질린 표정의 지대범을 끌고 근처의 작은 비스트로에 들어갔다. 허기져 보이는 예비 법조인을 위해, 야채가 가득 들어있는 감자와 치킨 스튜를 시키고, 맥주를 좀 깨기 위하여 나를 위해서는 커피를 시켰다. 지대범은 여전히 패닉이었다.
“걱정되겠지만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가방에 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은행, 카드사 말고 또 전화해야 될 곳이 어디어디인지, 천천히 정리해봐요.”
“생각할 것도 없어요. 몽땅 다 있었는데, 어쩌죠.”
”우선 저녁 따뜻하게 드시고 천천히 생각하세요. 대범씨, 힘내세요.”
지대범은 잠시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변호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원씨, 천사 같군요.”
“아니에요. 외국 나오면 한국 사람이 큰 힘이 되잖아요.”
나는 그 말을 스스로 뱉으면서 바르셀로나 어디쯤에 있을 상호오빠를 떠올렸다. 오늘쯤은 여독이 제대로 풀렸을까. 낯선 한국 여자의 주책 맞은 부탁 때문에 지루한 밤기차 안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바보 같은 총각. 오빠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이 대범하지 못한 지대범씨에게 큰 힘이 되어주면서 오빠처럼 착한 척을 한 번 해보려고 했다.
“어제 저 맛있는 것도 사 주시고 그랬잖아요. 제가 보답하는 거지, 제가 천사라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아. 어제 그 유명한 집보다 여기가 백번 맛있습니다.”
지대범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사실 그 요상한 ‘스마일 태양’네 집보다 이 집의 싸구려 스튜 한 그릇이 더 맛있어 보였다. 그렇게 잠시나마 그래도 제법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마드리드 한 복판의 추위를 피해 위장에 토마토 향 물씬 풍기는 맛있는 스튜를 채워주었다. 혼자 으쓱해진 나는 거기서 오버하고야 말았다.
“이거 100유로(Euro) 인데요, 대범씨가 여기서 계산하시고 잔돈은 여비로 쓰세요.”
“지원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니에요. 제가 잔돈을 가져오고 몽땅 100유로(Euro)짜리만 가져와서 제가 조금만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오빠 급하실 때 요긴하게 쓰세요.”
지대범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내가 내민 100유로(Euro)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기억나네요. 100유로 뿐이라고 하시면서, 택시비를 못 낸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걸 바꾸라고 보채기도 했죠.”
“맞아, 그날 저녁 먹을 때 택시비 결국은 못 드렸던 것 같네요. 이거 택시비 드리는 걸로 생각하세요. 근데, 여권 찾으시는 건 어떻게 하는 줄 아시죠? 저는 자세한 절차는 잘 몰라요. 대사관에 가야 된다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대범씨 침착하게 대처하면 다 잘 하실 분이잖아요.”
“지원씨 천사 맞죠?”
그 저녁,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지대범은 정말 언어의 마술사처럼 나를 보고 ‘천사 찬양’을 끝없이 노래했다. 듣다듣다 내 손발이 오그라들어 도저히 앞발의 기능마저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은 우리가 민박집으로 나란히 들어설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는 정말이지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한국에서 보자고 했고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 샤워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어제 보다는 멀쩡한 상태로 이층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꿈도 꾸지 않고 한 번 깨지 않고 그렇게 잘 잤다.
다음날, 난 조금 늦게 일어났다. 이미 민박집의 투숙객들이 반 이상 외출해버린 상태였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지대범이 보이지 않았지만 별 생각 하지 않았다. 난 아침에 토스트를 바르면서 지대범이 죽고 못 사는 프라도 미술관에 가야겠다고 급하게 결정했다. 벨라스케스도 고야도, 엘 그레코는 물론이고 기괴하다고 생각했던 달리까지도 모두 보고 싶었다. ‘기초 스페인어책‘부터 ‘고급 회화2‘까지 지겹도록 실려 있던 복사본들을 천천히 찾아보기로 했다. 목적지를 정하니 발걸음이 당당해졌다.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프라도 미술관으로 찬찬히 걸어갔다. 금 코끼리가 수놓인 내 태국산 민속가방을 당당히 어깨에 메고 제 2차 마드리드 정복길에 올랐다. 화창한 겨울 하늘은 이곳의 계절이 정녕 겨울인지 헷갈리게 했지만 칼바람은 잊지 않고 불어줬다.
“Senorita, (세뇨리타.) No dinero, No boleto. (돈 없으면 티켓 없죠.)”
“Que? (뭐지?)”
“Pronto(빨리).”
“아, 이게 어디갔지?”
나는 당당하게 한 나절 서서 기다리는 내내, 내 민속 가방 속 얌전히 들어있던 내 지갑이 없어졌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 돈, 내 수표, 내 카드. 그것뿐인가? 어학연수 가는 학교의 지도, 내 학생증, 내 교통카드(Abono. 스페인의 al cala 지역에서 쓰는 교통카드)!!! 나는 정말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스페인어고 나발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직 하나 ‘엄마’였다.
“엄마, 나 어떻게. 으아아앙.”
비켜서라는 경비원들이 내게 다가올 때까지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넋 놓고 걸어오는 게 아니었다. 어제 사고 남은 지하철 표가 주머니에 있다고 어떻게 그것만 달랑 보고 여기까지 오는가. 나는 왜 지갑을 살펴보지 않았나. 지하철에서 내 옆을 서성거리던 그 검은 ‘히잡‘을 깊이 두른 아줌마가 가져갔나. 누구였을까. 누구였을까. 나는 경비원 두 명이 나를 줄에서 끌어낼 때에도 도저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으아아아아아아앙”
내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콜렉트 콜이었다. 가방 밑바닥에 떨어져 있던 KT의 찌라시를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몸소 체험하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에게는 욕을 옴팡지게 들어먹겠지만, 어째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왜 안 받아 주는 거야!!
‘엄마. 나 거지됐어. 살려줘.’
이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젯밤, 소매치기로 겁먹고 패닉에 빠진 지대범씨를 앞에 두고, 수표계좌 정지시키고, 카드도 정지 시키라며, 일장연설을 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나는 아침부터 남의 나라 공중전화를 붙들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쏟았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당장 머릿속에는 내가 국제 미아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것 하나 뿐이었다. 나중에 까지 두고두고 생각해봤지만,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패닉에 빠져 허둥거렸는지 변명거리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No cash (현금), No credit card (신용카드) 상황에서 완전히 바보가 되었다. 내 수신자부담전화를 냉정하게 뱉어내는 우리 집 전화덕분에 완전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나는 어디에서 왔던가.
‘세르반테스 드립’으로 이 민박집이야말로 고풍스러운 마드리드 여행의 정수라고 ‘자랑질’하시던 아저씨의 민박집은 ‘마요르 광장’ 근처를 가야 가는 길이 기억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지하철을 타고 왔고, 지하철에서도 한참 걸어 프라도 미술관 앞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얼마나 걸어야 다시금 정든 ‘마요르 광장’으로 간단 말인가. 나는 응석받이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의 나라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닦았다. 갑자기 동전이라도 찾고 싶어졌다. 구걸을 하려고 해도 동전 몇 개를 보여주며 보태달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처음엔 그 생각으로 가방 안 소지품을 모조리 엎어보았다. 길 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아마 거지가 몇 안되는 세간살이를 정돈하겠다며 가방을 거꾸로 쥐고 털고 앉은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정말 먼지 한 톨이라도 다시 보겠다는 심정으로 가방의 바닥 천 사이에 낀 실밥까지 탈탈 털며 온 가방을 긁었다. 하지만, 내 지갑은 동전 하나를 흘려 놓지 않았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 때였다. 길바닥에 내팽겨진 나의 작은 포스트 잍이 빛났다. 노란 포스트 잍에는 파리 남역의 귀인, 상호오빠의 필기체가 보였다. 기억이 났다. 그는 왼손으로 저 멋진 글씨를 정성껏 써 주었다. 나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 노란 포스트 잍을 낚아챘다. 오빠는 가지런히 연락처를 적어 두었다.
‘………036- 57-2984‘
아. 이것이 영국의 번호였던가. 기억이 가물거렸다. 그래, 영국 번호라도 좋다. 그게 무엇이든 좋았다. 지대범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강도’비슷한 걸 당한 상태였으니까. 난 영국에서 이 전화를 받을 오빠의 룸메이트들한테 내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다. 상호의 아는 동생이니, 어서 구출하라는 메시지. 그 말만 전해주면 모든 일이 해결 될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국으로 ‘수신자부담 콜렉트 콜’을 걸었다. 찌라시에 적힌 번호를 모조리 눌렀다. 반가운 한국어 안내 언니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영국이요, 이상호씨 부탁합니다.”
“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현지원, 근데 ‘지원이’라고 해야 알아요.”
“…… 실례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동생이요. 파리에서 만난 동생이라고 하시면 되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만큼 내가 마음을 바짝 졸였던 적이 또 있었던가. 강도고 뭐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이상호가 이 전화 연결을 받아주기만을 기도했다. 만약 오빠가 전화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제 돈 주고 거는 것도 아니고, 미친 여자처럼 ‘수신자 부담 콜렉트 콜’을 걸다니 안 받으면 그만 아닌가? 안 된다. 오빠가 내 전화를 안 받는 것은 곧 재앙이다.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은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한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상냥한 KT 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객님, 연결 되셨습니다.”
“여보세요, 지원이니?”
안내 언니가 연결되었다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공중전화 건너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낯설지만 알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목소리는 이상호의 목소리였다. 나는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너무 반가워서였다.
“…… 어엉엉엉엉엉엉.”
“지원아, 나 좀 놀랬어. 무슨 일이니?”
“엉엉엉엉, 오오빠아아.”
“왜, 왜 울어?”
“오빠, 나 강도 당했어. 엉엉엉엉엉엉엉엉.”
내가 그때 그 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강도’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는지, 지대범에게서 그대로 배운 그 무서운 단어를 뜻도 모르고 똑같이 뱉었다. 그 말을 들은 오빠가 얼마나 놀랄지에 대해서는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불안하고, 무서운 이 상황에서 하소연할 사람이 나타나자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너 어디니? 지원아,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엉엉엉엉. 없어어어. 나 돈 없어어어어. 지갑없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앙.”
“괜찮아. 진정해. 지금 보이는 건물 차분하게 돌아보고 말해 봐. 잘 할 수 있어. 너 스페인어 읽을 줄 알잖아.”
“엉엉엉. 우리엄마 내 전화 안 받아아아아아. 엉엉엉엉.”
“지원아. 한국 지금 새벽이야. 어머니 조금 있다가 너한테서 전화 온 거 아실 거야. 진정해. 잘 할 수 있지? 지원아. 내 말 들리니?”
“엉엉엉엉. 네에에. 엉엉엉엉”
나는 수화기를 잡고 차가운 그 길바닥에 무릎 꿇고 앉았다. 죽는다고 울었다. 처음엔 반가워서, 서러움이 복받쳐서. 조금 있다가는 오빠의 자상한 목소리가 너무 고맙고 든든해서 눈물이 났다. 그냥 그렇게 멍청하게 울다보니 아까 그 매표소 입구에서 몹쓸 거지 취급 당하며 완전히 ‘쫄아 버렸던’ 내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추운 바람 덕분에 콧물 눈물은 얼어붙을 것 같았다. 조금씩 울음기가 빠져나갔다.
“세상에……. 잘하고 있어. 차분하게 내 말 잘 들으면서 대답만 해줘.”
“네, 흑흑.”
“어디 있었어?”
“흑흑. 프라도 미술관.”
“지금도 그 근처야?”
“네, 흑흑.”
“그래, 좋아. 걱정 하지 마. 지갑 말고 다른 거 없어진 것은 없니?”
“몰라요. 엉엉.”
“그래, 그래, 천천히 봐. 지원아, 곧 점심시간인데 먹을 거는 있어?”
“…… 없어요. 흑흑”
“저런……. 지원아, 울지 말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거는 너 안정을 찾고 춥지 않은 데서 진정하는 거야. 그렇지?”
“네. 흑흑.”
오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침묵도 고마웠다. 정말이지 나와 전화기를 붙잡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꽤나 진정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한 걸음 더 나갔다.
“내가 지금 여기서 출발해도 7시간은 넘게 걸려. 그러면 밤 열시는 될 거야. 그러니까 그 때까지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쉬고 있을 수 있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거기 어딘지 찾아보고, 혼자 걸을 수 있겠어?”
“어디로 가요? 흑흑”
“아니야. 어디 가라는 거 아니야.”
오빠가 다정하게 말했다.
“지원아. 약속해줘. 너 한 시간에 한 번씩 나한테 전화하는 거야. 이 번호로. 내가 지금 마드리드로 갈게. 너 지금 생각나는 장소가 어디니? 아니, 제일 잘 아는 장소가 어디니? 요 며칠 제일 자주 지나친 곳 중에 내가 알만한 Touristic Course (여행 장소)가 있을까 생각해볼래?”
“여행 장소?”
“천천히 생각해. 전화 끊지 말고.”
잘 아는 장소, 여행 장소. 나는 그 때 또 빌어먹을 놈의 ‘마요르 광장’이 생각났다.
“오빠, 마요르 광장 알아요?”
“지원아, 잘했어. 오빠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다가 천천히 마요르 광장으로 가. 10시간 안으로만 가. 지금 당장은 움직일 필요 없어. 천천히 진정하고, 오빠한테 한 시간에 한 번씩만 전화해. 알겠지?”
“오빠, 고마워. 엉엉엉엉.”
“지원아, 울지 마. 그럼 1시에 또 전화해. 알았지?”
“네. 흑흑.”
“그래. 나 출발한다. 끊을게.”
나는 그렇게 수화기를 잡고 앉아 있으면서도, 이유 없이 쏟아져 내리던 눈물 콧물을 닦아내면서도, 오빠가 정말 올 거라는 생각은 안했다. 한 시간 동안 내가 시키는 대로 마음을 다잡고 시키는 대로 오빠에게 전화를 하면, 그 때는 이곳저곳에 대책을 알아봐 놓고, 나에게 또 자상하게 ‘대처 방법’을 알려줄 줄 알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대사관이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은행이고, 어느 은행에 가면 얼마를 출금하게 해 준다는 둥의 ‘원격지원서비스‘ 같은 것. 그런 걸 해 줄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또 큰 빚을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나 정도의 민폐녀를 또 하나 더 찾으려면 ‘순정만화’의 세계에서라도 원조 민폐, ‘캔디’가 아닌가. 뭐든 남자주인공 뼈빠지게 고생시키는 그런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고 싶었는데,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렇게 콧물도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현실세계에서는 지금의 나 이외는 민폐의 아이콘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는 미안해서 또 잠시 눈물이 났다. 착해빠지긴.
나는 눈물을 닦으며 오빠가 나보고 하라고 한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모로가도 마요르 광장으로만 가면 되는 것, 차분하게 몸을 녹이는 것, 이런 말들을 떠올리며 길바닥에 흩어진 내 전 재산, 가방에서 떨어져 나온 소지품들을 조심스레 챙겼다. 나는 제일 먼저 근처 어느 구석이든 들어가 몸을 녹일 곳을 찾기로 했다. 멀리 걸어가기 전에, 오빠는 나더러 ‘몸을 녹이고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했다. 그 말은 이미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