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유

by Nima

달그락 거리는 중국집의 젓가락을 휘두른지 한참 지나서야, 서로 마주보고 앉아 밥을 다 먹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나는 이 남자와 내가 만난 이래로 최초로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오붓하게 저녁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새삼 부끄러웠다. 낯선 남자와 레스토랑에서 마지막으로 밥을 먹어본 것은 지난 달, 소개팅이 마지막이었다.


“왜, 왜 그래?”


나는 오빠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이제 와서 내 몰골이 걱정되는 것은 무슨 플레이인가. '일당잡부'같은 몰골은 처음부터 다 알려준 거 아니었나. 이제 와서 이 모든 것을 어색해 하면 어떻게 하는가. 정신 차리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내 얼굴은 붉어졌다. 자꾸 붉어졌다. 숨이 막혔다.


“그냥요.”

“하하. 이상한데?”

“이상한 건 오빠가 더 이상해."

"왜?"

"이렇게,도와준 사람이 내가 처음이에요? 오빠 원래 낯선 여자가 도와달라고 하면 쉽게 도와줘요?”


오빠는 잠시 젓가락을 놓았다. 오른쪽으로 잠시 고개를 움직이는 오빠의 머리카락이 창가에 스며들어온 가느다란 불빛을 머금고 빛났다. 정말 빛났다. 흡사 트와일라잇 1편에서 본 금빛 에드워드처럼 빛났다. 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지금까지도 내가 왜 왔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었구나.”

“안 궁금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야. 내가 오빠였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렇구나.”

“나라면, 일생에 한번 본 여자가 전화 한 통 했다고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달려올 생각 안했을 것 같아. 내가 오빠라면 이유가 없어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네.”


오빠는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렸다. 저 손, 기억났다. 보드랍고 따뜻했던 손.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이 순간,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던 정신 차리자. 나는 침을 삼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오빠는 가만히 컵을 잡았다.


"잘 모르겠어."


안 돼. 안 돼. 잘 모르겠다는 말은 너무 치명적이야. 그것은 내 마음과 같다는 말이니까. 내가 왜 오빠에게 전화했던 것인지, 왜 오빠가 이렇게 반가운지, 왜 오빠가 이렇게 미더운지, 왜 내 얼굴이 이렇게 붉어지는 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건 별로 좋은 설명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유가 없다는 건 이해가 안 돼. 오빠 날 뭘 믿고 달려왔을까. 절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유.”

“이유가 없어? 정말 아무것도?”

“음……. 우리 어머니?”


오빠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머니'라는 단어를 꺼냈다. 오빠는 내 접시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한국 여자 여행객들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모르는 척 하는 게 어려워. 물론 최근에 아주 나쁜 일이 있어서 다시는……, 다시는 한국 여자에게, 한국 여자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뭘 해?"

“아무튼 그래도 강도당했다는 말은 어쩔 수가 없더라. 병인가봐.”


알 수없는 말들. 한국여자와 뭘 하는 데, 어머니 얘기까지 나올 일인가. 어머니가 한국여자랑 사귀면 죽이기라도 했나.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같은 질문을 했다.


“어머니? 영국에 계시는? 오빠한테 한국여자 만나지 말래요?”

“아니. 돌아가셔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는 잘 모르겠어.”

“어, 어떻게.”


난 또 물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눈치 없이 쿡 찌르고 말았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안절부절못하는 나와는 달리 오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럴 거 없어. 건강이 원래 좀 안 좋으셨는데, 다 인사하고 좋게 가셨어.”

“그래도 미안해요, 그럼 오빠 누구랑 살아요? 아빠?”

“응. 근데, 난 아버지랑은 안 살아.”

“아, 이런.”


불편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오빠는 더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억지로 입 꼬리를 올려 보이는 표정은 내 마음을 얇게 저민 유리조각으로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는 안 나와 주면 안 될까. 이렇게 복잡 미묘한 가족사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 아닌가. 도대체 이런 비련의 주인공이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산다면 사는 거지, 왜 하필 오늘 저녁 이렇게 처음 마주보고 저녁을 함께 먹는 당신인가.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빠는 더더욱 영화 같은 가족 스토리를 읊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고 독일에 혼자 오셨대. 비행기에서부터 몸이 안 좋아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죽을 것 같이 열이 났는데, 엄마는 아직 독일어를 잘 못했지만, 뱃속에 애기가 있어서 그냥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대……. ‘나는 독일어를 잘 못한다. 뮌헨 대학으로 가야한다. 도와 달라.’는 말을 노트에 써서 들고 걸었대.”


그래, 독일. 오빠는 나에게 ‘Gute Nacht'라고 했었다.


“어떻게…….”

“동양 여자 흔치 않던 때라 구경거리 되었나봐, 사람들이 놀리기만 하고 아무도 안 도와주고 엄마는 혹시 나 잘못될까봐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데. 그렇게 한참을 무슨 정신에 헤맸는지 모르고 배회하다가 아버지, 지금의 남편을 만났대.”

“한국 사람을 만난 거예요?”

“아니, 독일로 공부하러 온 스페인 남자. 그 사람도 독일어는 잘 못했는데 마침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데. 그래서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대.”


오. 첩첩산중이구나. 알고 보면 우리 가족처럼 할 말 없는 가족 구성이야말로 특수사례일지도 모른다. 나는 괜히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라며 시킨 것같아 미안했다. 오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대. 엄마를 어디로 데려간다고 해도 알 수가 없잖아. 그래도 내 생각 때문에 믿고 신세를 지기로 했대. 팔자다, 믿자. 행운이라고 우기자.”

“대단해. 어떻게 그랬지.”

“그래? 지원이가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저요?"

"응. 넌 바르셀로나에 있던 나를 여기로 불렀어.”

“으으으 으윽. 너무 미안하게. 그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저, 정말 왜 강도라고 했는지 반성하고 있어요.“


진심이었다. 그 망할 놈의 단어 하나 때문에 이 사람은 '천사'나 할 수 있는 공간이동을 500유로주고 해버렸다. 하지만, 나의 천사는 고개를 저었다.


“반성하지 않아도 돼. 난 내가 좋아서 왔어. 나 좋으라고.”


오빠가 웃었다. 바짝 당겨졌던 긴장감이 살며시 풀리는 느낌이었다. 저 미소는 참 힘이 있다.


“그럼 두 분은 언제 결혼했어요?”

“처음엔 결혼 안하셨어. 엄마는 나한테 눈 파란, 아니 갈색인 백인 아버지가 생기는 게 무서웠다고 하셨거든. 그리고 아버지 역시 그 점을 잘 아셨고. 대단히 이해심이 풍부한 사람이야. 인간적으로 존경해.”

“계속 안 하다가 나중에 결혼하신 거예요?”

“응, 내가 큰 다음. 나한테 자기들 결혼해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시청 가서 결혼하셨어.”

“멋있다.”

“더 멋있는 것은 Jose (호세), 우리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었어.”


오빠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어릴 적, 난 한국인 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아버지가 주말 마다 한국 교회에서 하는 한글학교에 보내셨어. 넌 그렇게 생겨서 한국말을 못하면 아무도 안 믿어준다는 거야. 난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난 독일 사람이고, 내 친구들 중에도 한국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말 못하기도 하거든. 그래서 나는 내가 한국이 싫은데 왜 나한테 강요 하냐면서 많이 반항했어. 그런데 아버지 본인도 한국말을 배우셨고, 소설도 읽으셨어. 난 그 학구열에 지고 말았지. 어머니는 신나서 집에서는 모조리 한국어만 쓰고 싶어 하셨고. 우리 집은 완전히 한국어만 쓰는 지역이었어. 지금은 아버지가 그렇게 해 주신 게 너무 고마워.”


대단한 사람. Jose (호세) 라는 그 남자, 궁금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더더욱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때 처음 기차역에서 봤을 때 내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만 했구나. 난 그게 얼마나 이상했다구요.”

“응, 이해해. 하지만, 내가 내 평생을 독일 사람으로 살았지만, 어디 가서 내가 나를 독일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처음엔 다 고개를 갸웃거려. 난 공항을 지나다녀도 독일 공항 직원들도 ‘너 어디서 왔니’부터 물어. 여권을 보여주면 조용해지지만.”


identification, 정체성의 문제. 오빠의 교포 친구들이 술 먹고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어쩔 도리 없이 '바나나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재미교포 2세를 낮게 부르는 말)'일뿐이라는 말. 그 말이 기억났다. 독일인이되 독일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 외로운 느낌 때문에 오빠도 마음을 다쳤을까.


“…… 상처받았어요?”

“아냐, 그런 건 상처가 아니야. 사실이니까. 나도 내가 어디에도 소속된 것 같진 않아. 페이퍼 상으로는 독일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스페인 사람, 어머니는 한국사람, 그러면서도 내 안에 스페인 피는 없고, 완전히 한국 DNA를 가지고 있지. 이런 걸 한국식으로 하면 ‘유복자’라고 하지?”

“그런 말 하지 마요.”

“아냐, 난 정말 그 단어에 아무 감정 없어. 난 ‘한국 사람’은 아니고, ‘코스모폴리탄’인 것 같아. 타이거우즈가 자기를 보고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소개했다는데, 난 그와 전적으로 같아. 물론, 우즈처럼 백인 모델만 좋아하는 건 아니구.”


오빠는 웃었다. 나는 오빠가 웃으니 더 힘들었다. 난 이런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집의 문제아인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오빠, 근데요. 한번도 안 알아봤어요?”

“아버지가 누군지 한 번도 안 궁금했냐? 난 알고 싶지 않아.”

“진짜요? 한 번도? 서울이 안 궁금해요?”

“난 죽을 때까지 서울은 가보고 싶지 않은데.”

“정말?”

“응. 한국을 내가 왜 가. 아버지가 잘 해주시기도 했지만. 난 엄마를 버린, 아니 엄마에게 아무 관심 없는 한국도 관심 없고, 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별 관심 없어.”


거짓말. 그래놓고 한국 여자가 봉변을 당한 것처럼 보이니 바르셀로나에서 날아오는 것인가. 오빠는 역시 바보구나.


“그래도 가족들은 한국에서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지 찾으셨을 거예요.”

“어머니가 그러셨어, 아무도 안 찾으실 거라고. 나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는데 진짜 아무도 찾지 않았어.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어디서도 연락 온 적 없어.”

“설마.”

“외삼촌이 높은 공무원이었는데, 나의 유전학적 아버지가 쫓기는 사람, 그러니까 ‘정치적 운동가' 뭐 그런 거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죽이려고 하셨대. 오빠 앞 길 막는다고.”

“뭐야.”

“하하, 우리 엄마는 반항하면서 유럽으로 날아와 버렸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까지 한국의 친척들은 어머니를 찾지 않았어. 어머니도 연락하지 않으셨지만.”


말도 안 돼. 우리 엄마도 나를 찾지 않고 평생 보낼까. 오빠 잘 되라고 나를 버린다면 난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외삼촌이 높으면 높았지 그러는 게 어디 있어.”

“글쎄, 그 때는 뭐 친척 중에 문제가 있으면 앞길이 막히기는 했나봐. 그렇지만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밉지 않아. 나랑 상관없으니까 이유도 궁금하지 않아..”

“오빠, 위로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위로라니? 내가 널 위로하러 온 건데. 난 너 마음 무거워지라고 하는 말 아니었어, 네가 너무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왜 이렇게 불필요하게 남을 도와 주냐, 이유가 뭐냐. 이런 거 궁금했던 거 아니니?”


이런 걸 보면 당신은 정말 천사가 맞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한국 여자들이 이런 데서 길을 잃거나, 당황해서 패닉으로 돌아다니면 엄마가 보여. 엄마가 처음 뮌헨에 혼자 오셨을 때도,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섭거든. 그래서 되도록 내가 도우려고 해. 엄마가 기차를 탔을 때, 온 몸이 불덩이였대. 잘못하면 유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그런데 아버지 집에서 쉬면서 보험도 안 되던 엄마는 병원도 갔고, 나도 낳았어. 난 그렇게 빚을 지고 태어났어.”

“이런, 저 정말 어머니한테 감사드려요.”


오빠가 진짜 크게 웃었다.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던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하. 이런 말 처음 들어.”

“무슨 말?”

“나 크고 작은 착한일 꽤 했는데 말이야, 다른 아가씨들은 그냥 갈 길가던데. 지원이는 우리 엄마한테 고맙다고 하네. 지원이는 정이 참 많은 것 같아.”


오빠는 물을 마셨다. 나는 오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물 컵을 내려놓은 오빠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렇게 달려온 이유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 당신, 이렇게 나를 도우러 온 당신, 내가 좋아 달려온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따뜻한 사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어제 그렇게 눈이 풀려 자빠지던 나를 보면서 오빠는 어머니를 생각했을까.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감정, 이것은 꽤나 우호적인 것이었다.


“어머니한테까지 빚을 졌으니까, 제가 다 갚을 때까지 절대 도망가지 마요.”

“응.”

“도망갈 거 같아. 그냥, 바르셀로나로 훅 갈 거 같아.”

“나는 천사가 아니니까 ‘뿅‘하고 사라지진 않을 거야.”

“바르셀로나 천천히 가면 안 돼요? 가더라도 절대 내일 가면 안 돼요.”

“하하.”

“오빠가 갑자기 사라지는 거 싫어. 인사도 하고 다 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가요.”

“알았어. 얘기하고 갈게.”

“나중에, 나중에 가요.”

“네. 다 먹었어? 이제 좀 걸을 수 있겠어? 어제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뭉쳤을 거야. 아까 한인 시장에 가서 파스 사다 놓은 거 있는데, 샤워하고 붙이고 자.”

“오빠.”

“응?”

“고마워요.”


오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미소가 사라지려 하는 얼굴, 묘하게 더 섹시해진 오빠의 얼굴에 가만히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또 얼음이 되려고 했다.


“지원아.”

“네.”

“엄마 얘기는 그냥 한 거야.”

“뭘 그냥 해?”

“아까……, 나 여기 왜 왔냐고, 이유를 대라고 했지?”

“네.”

“나 말하면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내가 여기 왜 이렇게 힘들게 왔는지, 잘 모르겠어.”


이런 이런 이런. 늑대인간 제이콥같은 말은 안 해도 된다니까. 이제 와서 모든 걸 모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나 좋아서 온 거냐구. 나는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오빠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었다. 우린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웨이터 두어 명이 우리 자리를 기웃거릴 때까지 그렇게 바보들처럼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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