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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Mar 03. 2018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보며

동네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늘어져 있다.

때가 때이니 만큼 길목마다 꽃다발이 난무하는데,

교복입은 아이들을 볼 때는 그나마 참을만 했으나

초등학교 입학식에 엄마 손 붙잡고 돌아다니는 꼬마들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저 아이들은 이제 시작이구나.

이제 정말 오랜 시간동안 어릴 적 읽은 동화책과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하여 피를 뚝뚝 흘려가며 버티며 배워야 하겠구나.

이제 정말 시작이겠구나.


내 자식도 아닌 아이들을 보면서도

이미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험난할 그들의 학창생활이 미리 안쓰럽기도 하고

그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내고

다들 사랑스러운 모습 잘 간직하여

속세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길 바란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군인이 귀엽다고 느껴지더니

이제는 남의 자식들이 다 애처롭고 사랑스럽다.

노인이 다 되었다.

*사랑하는 조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무렵, 이모를 위해 그려준 선물. 화가의 세계를 반영한 이 그림은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사랑스럽다.


최근에 '신과 함께' 영화가 개봉하면서, 환생을 가지고 이야기한 적 있다. 누군가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한량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눈이 멀게 예쁜 여자로 태어나서 여러 남자에게 가방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냥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

굳이 태어나야 한다면, 부잣집 요크셔로 태어나서 뜨신 방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가끔 앙탈 부리고 비싼 외제 사료 먹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다들 웃었지만, 지금도 진심이다.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동력이 이미 소진된 느낌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를 입학한 적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내 인생이 이렇게 풀릴 줄 몰랐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힘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말 뿌듯하고 보람되지 않는다. 나는 늘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자기 전에 고민한다. 그래서 밤마다 맥주가 필요하고, 그래서 이 나이에 벌써 당뇨 조심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인생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건조한 뷰를 주입시킬 필요는 없다.

다들 그들의 여정에 맞는 속도로 천천히 경험하고 천천히 내공을 쌓길 바랄뿐,


"어이, 학생. 애써봤자 소용없어. YOLO!"이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이들이 살면서 부딪힐 크고 작은 벽 앞에서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때, 상처받지 않고, 쿨해질 수 있길 바란다.


그 벽을 넘지 못하면, 다른 문이 열릴 수도 있다.


다른 문이 열릴 때, 그저 마뜩찮더라도, 가야 되는 순간도 있다. 그 때, 마음이 내키지는 않겠지만, 일부러라도 한 번만 되뇌이며 가길 바란다.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이번 기회야, 잘 부탁한다.


아야꼬 할머니의 에세이 중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의 제목을 차용했다.


평소 할머니의 공허한 글과 달리 '아무도 모른다'편은 조금 공감된다. 아마 구체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셔서 인것 같다.


요지는 이러하다.

본래 선천성 근시를 앓으시다가 40대에 눈 수술을 했는데, 실명이 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안경 없이 사신다고.


아주 아주 근사한 문이 열린 것 같다.

모두에게 열릴 다른 문이 이와 같이 근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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