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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Mar 03. 2018

한국 여자의 인생은 '빡세다'

그러니까, 다 잘한다는 말이 듣고 싶은 분에게는 그 말 그냥 해줘라.

여자의 일생은 '빡세고',

한국 여자의 일생은 대단히 '빡세다.'


그냥 고되다, 힘들다는 정도의 수사로는 그 정도와 밀도가 전해지지 않는다. 나는 타일러나 알베르토에게 물어서 이 어감을 정확히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한국 여자의 빡센 일상을 구성하는 이유야 천 만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잘 꾸며야 한다는 것이 디폴트로 깔려 있는 점을 꼽고 싶다.

누구도 그렇게 시키지 않았지만, 다들 알아서 최선을 다한다. 뒤쳐지거나 사정이 있어 나를 놓게 되면,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K-Beauty로 대변되는 1일 1팩부터, 홈케어 까지. 말만 들어도 피곤한 여러가지 recurring들을 매일 해야한다: 메이크업 잘 갖춰서 출근하고, 지우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하니 또 잘 지워야 한다. 그나마 이 사소한 메이크업 관련 업무도 잘 해야 본전이다. 트렌드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철 지난 색조화장에 업데이트 되지 않는 눈썹같은 것은 '올드한 여자'라고 분류될 수 있다. 이것은 위험하다. 외모도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미투'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일정 수준 노력해야 한다. 아예 놓았다가는 '페미니스트'인지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한국 여자들이 맞닥뜨리는 일반적인 '빡셈'을 지적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빡센 세상에서, 본인이 앞서가는 '트렌드 리더'까지 된다고 믿고 싶은 당신 주변의 여자들을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살면서 이미 한 두명  만났을 법 할 것이나, 내가 굳이 대처하는 방법을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안그래도 힘든 인생살이에서 귀찮은 에너지 낭비는 줄일 수록 좋다. 듣고 싶은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해 피곤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 그냥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된다. 그들은 대개 본인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남들의 입에서는 '그렇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닌데 아니라는 말 듣기는 싫다, 이 모순덩어리들은 우리들의 '맞아, 너 그래'라는 입발린 소리들을 모아두고 싶어한다. 마치 구두쇠가 적금을 붓는것 처럼.


당신은 이 모순적인 옹고집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고 싶을 수도 있다. 허울만 좋은 빈말을 모아봤자, 당신 인생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네 자신을 먼저 찾으라는 오지랖을 부릴 수도 있단 말이다. 그것은 대단히 인류애 넘치는 접근이지만, 나는 말리고 싶다. 당신의 인생도 고단한데, 그 에너지를 아껴야 되지 않나.

아는 동료 중에 한 분은 유복하지는 않지만, 강남에서 자랐고, 관악산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재수인지 삼수인지 열심히 살았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스물한살 꽃다운나이부터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그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고, 현재는 본인이 오래도록 꿈꿔온 커리어 우먼이 되어 야무지게 일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읊은,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 가운데에서, 그녀가 특히 상처 받기 쉬운 테마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굳이 짐작해보라고 한다면, 대개는 그녀가 공부를 마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추측이다.


그녀는 의외로, 본인이 '트렌디한 미혼 여성'이라는 점을 인정받지 못하면, 분해서 참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이를 갈며 이기고 싶어하는 류는 업무적으로 잘 나가는 동료들이 아니라, 어린데 예쁘고 세련되기까지 한, '예쁜 후배'들이다.


한 날은, 우리끼리 모여 앉아 수다를 떨다가,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예쁜 후배' 한 명이 쓰는 향수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녀의 향수는, 최근에는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딥디크'라는 브랜드의 향수였다. 다들 별 얘기 안 했다. 그녀가 쓰는 '딥디크'는 '도손'일 것인데 그거 정말 향이 좋더라, 그 브랜드 중에 '탐다오'라는 향도 좋더라, '딥디크' 말고 '조 말론'이라는 향수도 좋더라 등등의 '여자 대화'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분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 한국 좋아졌네, 개나소나 그런 비싼 향수를 다 알고."


그러게, 하하하, 수입이 쉬워졌나봐,그런데 왜 향수는 이렇게 비싸니, 블라블라...

별 생각 없이 이어지는 수다와 별 생각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들에 비해 그녀는 쉽사리 이 테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 때는 디올향수, 샤넬 향수만 써도 손 꼽혔어. 딥디크라니, 언제 부터."

"샤넬은 지금도 좋아."


그녀가 다시 말했다.


"디올도 좋아, 내가 미라클 처음 샀을 때, 다들 나보고 센스 있다고 했어."


나는 문득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그녀는 몹시도 속이 상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디올향수의 팬이기 떄문에 속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딥디크 들어온지 꽤 되었어. 디올처럼 편하게 사긴 어렵지만, 많이 만만해졌지."

"디올이 편하다고? 여전히 그 정도면 비싼거야."

"아, 그래. 비싸지, 그냥 백화점 1층 어디나 있으니까 만만하다는 거야."

"백화점 1층이 그렇게 모두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나는 그 날 이 대화가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다만, 그녀가 대단히 아리게 느껴졌다. 도대체 '딥디크'의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화나게 했을까.


누가 봐도 눈에 띄게 '예쁘장한' 얼굴의 그녀.

스스로도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그 긴 공부 기간동안 화장품 회사의 소비자 모델에 지원하여 실제 소비자 모델로 뽑힌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예쁘단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트렌디하진 않으시단 말이다.


그녀는 핫한 아이템을 유행따라 갖춰줄수 있는 화력은 없었다. 곱씹어보면, 그녀는 스무살 시절에 받은 사은품 가방도 새것 처럼 예쁘게 쓰는 요조숙녀이지,  잇백이 나왔다고 바로 어깨에 걸쳐주는 잇걸은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가 대학시절 익숙했던 'EnC'코트를 여즉 입긴 했지만, 오버핏 롱코트가 유행한다고 갖춰 입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무릎 길이 EnC 코트는 그녀에게 잘 어울렸고, 나는 그 천상 여자 같은 모습이 그녀의 시그니처 룩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그런데, 그녀는 본인의 시그니처가 트렌디하기까지 해야했던 것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예쁜데 촌스러운 여자'와 '안 예쁜데 세련된 여자'

이 둘 때문에 항상 의견이 나뉜다고.

그녀는 안타깝게도 전자로 분류되는 쪽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를 속상하게 했다.


'트렌디'라는 국적 불명, 속칭 '보그 병신체'적 수사는 하나의 특정 산업군에서 요청되는 요건이다.가령,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의 악마 편집장같은 분들 말이다. 그들은 '트렌디'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 엄청난 속도를 다 따라가고 소화해야 한다. 다만, 그 산업군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굳이 그 무거운 부담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트렌디함은  대단히 전문적인 것일 뿐 아니라, 대단한 화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위 '명품'이라고 뷴류되는 브랜드의 제품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로고가 보이는  one & only bag 백을 주구장창 들고 다니되, 그를 카페 바닥에 쉽사리 내려 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트렌디'의 루프에서 허우적 거릴 필요가 없다. 그런 아이템들을 시시각각 갖춰줄 수 있는 사람들은 몇 안된다. 다만, 몇 안되는 사람이 실제 존재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에는 예쁘고 어린 여자 변호사 후배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럼, 그녀들은 축복 받은 것이다. 그야말로 나랑 다르다고 놓아주면 된다.


그렇게 놓아주는 것이  '내려놓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행복하려면 내려 놓아야 할텐데, 그녀에게 오지랖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괜한 걱정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친구는 지혜로웠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잖아. 이쁜 것들 걱정은 하지마. 그냥 지가 제일 이쁘고 세련되다는 얘기 듣고 싶은데 아닌거 같으니까, 몸이 닳아서 그렇지, 우리보다 이쁘다."


"하하하하, 그렇네."


"이쁜 것들이 만족 못하는 거나, 부자가 만족 못하는 거나, 너가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냐. 그냥, 조바심 내면 옆에서 '니가 제일 이쁘다' 그래 줘, 해주면 되지."

"성의 없다고 생각하면 더 확인 받고 싶잖아, 그 얘기가 언제 성에 찰지, 그거를 성에 차도록 그냥 계속 얘기해야 할지."

"그냥 최상으로 해 줘, 빈말 돈 드냐? 어차피 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거 지도 알고 속상해서 그러는데, 그냥 해줘라. 난 그렇게 해주니까, 나 잡고 안 늘어지잖아."


그래, 내가 무슨 사육신이라고 그 말 하나를 인심 좋게 못 해주는가. 무척 성의없고 냉정한 대책 같지만, 그녀에게는 이것이 간절한 한 마디라는데, 그 말 한마디 들으면 분한 마음 좀 사그라든다는데, 그거 좀 해주면 되는 것인데. 그냥 좀 해 주지.



아야꼬 할머니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 불행해져서는 안 돼'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세상의 대답이 다른 이유는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지 정답이 틀려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외부 의견에 일일이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굳이 세상의 대답을 들려줄 필요가 없을 때는, 상처주지 않는 나의 대답을 미리 들려주도록. 그러면, 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고, 세상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고 싶던 그가 괜히 당신에게 화살을 돌려 오랜 소모전을 치르도록 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같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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