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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Aug 01. 2021

그 다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내일이 무서워지는 것은 나이 탓인가

지난 달,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좋은 포지션이 나왔다는 소식에, 3월부터 공들였던 절차들을 통과해, 새로운 곳에 출근한지 한 달이다.

이직이야 '원 데이, 투 데이'한 것은 아니기에 원래 그런가보다 싶도록 술에 물탄듯 은근하게 잘 적응중이다.하지만, 이번에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여기 정착하자. 아니, 여기 정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쉽게 이직할 수 없는 나이니까.




이유가 무엇이었든간에 나는 이미 '중년인듯 중년 아닌 중년 같은 너'가 되었다.

임원은 아니고, 신입은 아니고, 부장은 아니고 대리는 아니고, 그래서 넘쳐나는 차장이다.

그런데 차장급 이직은 이제 자리가 없다. 임원이 되던지, 아니면 정년 보며 오래도록 다녀야한다, 이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다면.


약간의 포지션 변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내 커리어를 보고, 인터뷰하시던 분이 이렇게 물었다.


"다른 목표가 있나요?"

"무슨 목표요?"

"이렇게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이 업계 포지션을 두루 다 거쳐야만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본인만의 커리어 최종 목표가 있나요?"

"아, 아니요. 그냥, 그 때 그 때 포지션이 오픈되면 도전한 것 뿐이에요. 좋은 조건 같아서."

"매번?"

"그러게요. 결과적으로 그렇습니다만 옮길 때 어떤 큰 그림 같은 건 없었어요."

"참 부럽습니다. 저는 인사일만 30년 했는데요, 두루 많은 경험을 해본 커리어는 용기가 있어야 하거든요. 진심으로 이 과감한 용기는 부럽네요."


결국, 칭찬인지 뭔지 알듯 말듯한 말씀을 해 주셨던 그 분의 회사에는 조인하지 않았지만, 그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아니, 그런 목표같은 게 있었나.

나는 무엇을 보고 앞으로 가고 있었나.

닥치는대로 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내 나이 마흔하나. 이제 일을 해온 시간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왔다. 마치 언제까지나 이팔청춘인줄 알았던 것마냥.




일을 놓을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했다. 남들은 용돈 받아 하는 공부도 나는 벌어가며 해야했다. 하다못해 시험이 임박해서도 나는 일을 했다. 그렇게 살았다면 좀 야무진 맛이 있어야 하건만, 망하기 전 쓰던 버릇 못 고쳤다는 말 들을 정도로 내 삶은 허술했고, 실제 악착같은 면은 없어서, 내 돈은 공중에 다 흝어졌다. 열심히 벌고, 열심히 쓴 꼴이니 할 말 없는 나. 마흔하나 되어서도 겨우 오피스텔 월세 살고 있는 나는 그 유명한 벼락거지다. 신랑 없고, 집 없고, 그나마 차는 있는데, 그 놈의 차도 할부가 아직 꽤나 많이 남았다. 나는 일을 해야한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유지되는, 그러니까 여전히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란 말이다.


매번 조절하지 못한 씀씀이에 펑크난 잔고에 모자라지만 겨우 들이부을만한 월급을 스쳐 보내면 한 달 더 갚을 돈이 생기고, 그렇게 허덕거리고 나면 묘하게도 빚이 더 늘어난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마흔하나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에만 관심 있었지, 요즘말로 '재테크'에는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회사가 '돈 나오는 PC방'이라고 생각하며 살 길을 찾아보라던데, 고지식한 헛똑똑이어서 그런 걸 몰랐다. 이런 건 다 변명이다. 나는 그냥 월급의 노예이다. 이 일을 놓는 순간, 길 바닥에 나 앉는 신세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해야한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백년이고 천년이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년이었으면 옮기고 싶다고 옮길 수도 없어보인다. 연봉은 높고, 이 만한 자리는 없다. 무엇인가에 도전하겠다는 순진한 생각 같은 건 이제 사치다. 나는 약 10년정도 가동 연한이 남았다. 10년도 많이 잡은 것 같다. 5년일지 10년일지 장담 못할 악간의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내 통장에는 한 달도 못 버틸 잔고가 남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다가올 시간이 무서울 때, 신랑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손사래쳤다.


"남의 돈이야. 지 번돈 지거, 내 번돈 지거. 우리도 노후 계획 없어."

"그래도 집도 있고, 기반이 잡힌 거 아니야."

"집. 너는 돈 먹는 하마 같은 애들 없잖아. 똑같애."


징징거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하는가 헷갈렸다. 가정을 꾸린 행복을 돈으로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고립된 생활더러 들 돈 없으니 고마운 줄 알라는 말때문에 잠시 미안도 했다. 또 조바심을 달래는 데 도움도 되었다. 물려줄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한 평생 바쳐가며 이자 갚을 집 안 사도 되는 거 아닌가. 그래, 조금만 아껴서 연금 더 넣지 뭐. 이렇게 살다가 적당히 늙고 병들면 연금 받아 월세 낼 수 있게만 해 두면 걱정 없는 거 아닌가. 불안해하지말자. 지금껏 그 파도 다 겪고 왔는데, 무슨 놈의 뜬구름 같은 노후 문제를 걱정하는가.


돈 먹는 하마라는 애들이 부럽다는 말을 식도에 꾸역꾸역 쳐박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하마들은 나중에 엄마가 아프면 아프냐고 물어봐줄 것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내가 오피스텔 문을 나서지 못해도 발견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끝까지 회사를 다녀야겠다. 이래서 정년이 중요한 가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인생 목표는 커녕, '우리 저기로 이사가자'며 함께 허리띠 졸라매고 가계부써가며 행복하게 지지고 볶을 신랑도 없기에, 나는 무지하게 일했지만 무일푼이다. 내 무방비를 남 탓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실제 나는 자유를 빙자한 순진한 아마추어리즘 인생으로 시간을 낭비했고, 그 결과 내 나이라면, 내 커리어라면, 다들 있을 법하다고 기대하는 그 어떤 자산은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며 여러가지 도전을 이어오다보니, 이제는 임원 오퍼가 아니면 이직 자리도 없는 쓸쓸한 시니어가 되었다. 시니어치고는 나이가 어려 일단 회사는 다니겠지만, 그나마도 이 일은 길어야 10년이다.


10년 뒤 내 인생이 그려지지 않자, 문득 내일이 무서워졌다.

다들 백세시대라며 좋아하는데, 나는 어떤 인생을 준비해야하는가.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 은퇴이후의 삶이란, 내 월급이 없는 삶일텐데, 나는 어떤 재원으로 살아가게 되는가.


이런 고민을 맞닥뜨린 사람들을 들쑤셔가며, '부동산 투자'하라는 유튜버들은 보기가 싫으니, 천상 나는 아르바이트하는 노인이 되려나.


마흔하나의 밤이란 내일이 이렇게 무서운건가.

50에 돌아가신 우리 아빠는 고생만 하다 가신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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