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없는 내 인생에 건배를
나를 퇴사하게 했던, 그 분이 노심초사하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좋은 곳에 시집가는 일'이었다.
그것만큼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셨는지, 기회만 되면, 특히, 내가 미혼이라는 것이 회자될만큼 일이 잘 마무리 되어 서로에게 덕담 하는 회식 자리라도 있을 때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재를 뿌리고 싶어 하셨다.
가령,
'쟤가 얼마나 빚이 많은데요. 빛 좋은 개살구입니더.'
'쟤가 차마 여기서 말 못할 일이 많습니다. 호호호, 니는 유부남 좋아하잖아?' 등등.
나는 늘 대꾸 잘 못하면 입을 화를 염려하느라,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그런데, 그 시원했던 퇴사 뒤 문득, 그녀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곳의 혼사'는 차치하고, 이번 생에 결혼 같은 것은 물건너 갔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는 이제 남들 다하는 업데이트는 모조리 물건너 갔을 수도 있다.
남들과 함께 한 업데이트라고는 '00회사에 취직했습니다'가 끝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청첩장을 주고 싶으니 시간을 맞춰보자는 말이나,
아기가 생겼으니 축복해달라는 말이나,
우리 애가 학교를 간다며 시간 빠르다는 너스레를 떨 일은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문득, 매일 일기장처럼 쓰던 페이스북을 열어보았다.
내 피드는 온통
오늘 먹은 것, 오늘 본 것, 오늘 바른 것...
40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무살 대학생때의 나와 비교해서
하루 일과가 가진 캐릭터가 달라진 것이 없다.
학교는 직장으로 바뀌었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바뀌었을 뿐
나는 여즉 이 모양.
별 일 없이 살고 있다.
열렬히 간절히 인생 업데이트를 원하는데, 허락되지 않은 느낌. 비자발적 싱글 라이프, 비자발적 비혼...
세상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내가 세상 밝은 줄 아는데, 왜 나는 혼자만 있으면 이렇게 어둡고 칙칙한가. 안 된다, 안 돼. 나는 다중인격이 아니다. 고개를 젓는다.
어두워지지 말자.
행복해지자.
유부녀들은 혼자 있고 싶어서 엉엉 울기도 한댄다.
너는 얼마나 행복하니.
너의 고독은 사치이다.
애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정신 없이 온 하루가 100m 스프린터처럼 허덕이며 지나가는 게 좋니.
그 때, 와이프가 몸살이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의 와이프는 '워라밸'까지 보장해주는 좋은 직장에서,
와이프 회사 다니기 좋으라고 본인은 출퇴근 3시간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칼퇴근 하면 직장에서 5분 거리의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픽업하고, 남편에게 콘서트 가고 싶다는 카톡을 남긴다. 밤을 새는 남편은 중간 중간 와이프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새벽에 택시 타고 귀가한다.
재벌집 시집 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부러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다시금 고통스러웠다.
왜 나는 이 모양으로 방치되는가.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면 그렇게 쉽게 마음 여는 나는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고독한가.
아니지 아니야.
늦잠 자고 일어난 침대에 걸터앉아 느릿 느릿 우려 낸 차를 마시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싱글 여성 코스프레를 하자.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싱글 여성으로 살 것이다.
이렇게 외쳐보자!
'자존감' 서적 어느 한 구절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수영과 같다고. 부단히 노력해서 어렵게 끌어올리는 것이며, 그나마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멈추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고.
노력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을 훑는다.
프로필 사진 마다 넘쳐나는 애기 사진들을 애써 외면한다.
그냥 페이스북 어플을 지워버렸다.
내 인생, 입사했다는 업데이트 이외의 새로운 소식이 생기기 전까지, 나는 더는 페이스북에 내 별 일 없는 인생을 중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방문한 핫한 카페,
내가 신났던 핫한 레스토랑,
모두 의미 없다.
아무리 맛 없었던 식당이라도,
함께 호호 불며 먹던 그 음식은 영원했잖아.
나는 이제 중계하지 않겠다.
계속 별 일 없이 살 거니까.
아야꼬 할머니의 글 중 '자녀는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라는 제목이 있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내 인생을 위로해줄 그런 글 같았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라는 옛 말처럼 자식 있어 봐야 소용없다는 류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제목과 매치가 잘 안되는 할머니의 글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자녀는 교도소를 출소한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이다. 라고.
이렇게 의미있는 타인을 나는 본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