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는 쉽다
만남도 어렵지만 이별도 어렵다.
서점가를 뒤덮은, '글 그림 혼합체 감성에세이'마다 이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읊고 있다.
서점까지 갈 일인가, SNS 마다 넘쳐나는 조각 글들의 팔할은 이별의 무게에 대해 변주하고 있다.
이별에 휘둘리고 쿨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내 몫인데, 이 대회에 공식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 여간 아쉽지 않다.
이 나이까지 백명의 남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Happily ever after' 해피엔딩 없이 살면서 이별에 관한 맷집이 생겼어야 하건만, 나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을 붙잡고 괴로워하다,
'역시 나는 안돼, 나는 사랑받기 어려워.'상태가 되면 가까운 지인들은 대게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남자 만나. 남자 많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처럼 나하고 거리가 먼 것도 없다.
다른 남자는 어디서 만나는가.
누군가 내가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개팅을 받으라고 했다.
소개팅은 쉬운가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요즘의 소개팅은 셀프 소개팅도 포함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결혼정보회사에도 가입하고, 소개팅 어플도 활용하라고 했다. 무조건 만나다 보면 남자는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내가 어려운 지점을 알았다.
나는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고, 몇 번을 사귀었는지 커피 스탬프처럼 당당하게 자랑하는 류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가기도 어려운, 경제적이지 못한 연애에 허덕이는 것이었다.
30년 넘게 모르던 사이에 갑자기 만나
'어디 사세요'
'뭐 좋아하세요.'
'주말에 뭐해요.'
관심도 없는 주제로 적절히 시간을 보내는 게 아무렇지 않으면 좋을텐데.
나는 이게 무슨 짓인가.
또다시 결론은 나의 잘못. 내가 잘못. 내가 문제.
이 증상은 요즘말로 '자존감 바닥'상태 라고 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연애도 어렵다고 했다.
자존감을 테마로 한 그 많은 서적에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은혜가 아니므로 나를 사랑했던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했다.
그는 아무나 중의 한명이므로, 너는 아무나를 더 만나면 된다.
오케이.
이제 아무나 하나 걸려라.
아무나 하나 걸리면 된다.
그래, 제발 나타나다오.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수긍하는 척,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남자 만나자.
다른 남자 많다.
매일 그렇게 생각하지만, 문득 문득 가슴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좌절감, 그 좌절감으로 인한 따가운 고독감, 그 고독감으로 인해 내리꽂히는 자존감으로 나는 또 되뇌이게 된다.
'나는 안 돼, 나는 안 되나봐.'
몇 년전, 노오력으로 결론을 내 보려던 연하남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 3월 헤어진 그를 떠올렸다.
그와 결혼을 원한 것도 아닌데
그에게서도 나는 버림 받았다.
그러니, 당연히 '백점만점 신랑감' 연하남은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맞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안된다.
이 엄청난 바닥에서 솟구쳐올라,
기적적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 다시 꿈꿀 수 있을까.
보통의 에세이처럼,
'그래, 나는 다시 꿈꿀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말 못하겠다.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다고.
나 자신은 나만의 방식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며 삶에는 기준도 법칙도 없다고.
나한테 유리한 말만 받아적고 싶다.
삶에는 기준도 법칙도 없으니, 나처럼 감나무 밑에서 감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살아도 다시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