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너의 역할
1년 전, 그러니까 3월 1일이 기억난다.
나는 너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져 들어오는 순간에도 아쉬워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 때 우리가 같이 앉아 얘기하던
차 창밖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1년전 오늘 있었던 일이라면서
페이스북에 떠올랐다.
세상일은 한치 앞도 모른다더니,
나는
지난해 3월 1일에는
너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올해의 3월 1일은 소염제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다.
내 꼬리뼈가 3조각이 난 것은 대단한 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히 계단을 헛디뎠고,
통증은 그저 멍이 들어서인줄 알았기에
무려 아로마 마사지로 통증 부위를 풀기도 했다.
아찔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누워 있으니,
늙은 엄마, 늙은 이모, 그리고 동네에 같이 사는 사촌 오빠 부부가 병원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또 괜찮은 척, 별로 아프지 않은데 뼈나 잘 붙으면 좋겠다는 말을 두 어번 반복했다.
성의 없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환자식을 넣어주는 아주머니 덕분에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니,
그 때부터 나는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지난 해를 떠올렸다.
우리는 완전히 끝났다.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시작이었지만, 이어가고 싶었다.
간절했다.
하지만, 1년 뒤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사이였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몹시도 괴로운 일이다.
너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어차피 결혼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너는 나에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 하루의 시작을 확인해주고,
내 하루의 진행을 물어봐주고,
내 하루의 마무리를 격려했다.
사실,
본인 출근하는 시간에 지루한 지하철에서 전화한 것이고
본인 점심 시간에 담배를 피우다 전화한 것이고
본인 저녁 시간에 하소연 하느라 전화한 것이고
본인 퇴근하면서 무료하여 전화한 것인데,
나는 오래도록 자기 이야기만 읊어댈 너의 전화마저 그립다.
미치도록 바쁘다고, 항상 모든 시간의 중심은 너였지만,
그 와중에 만나는 시간이 소중했고,
너의 등은 따뜻했다.
나는 너의 말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나는 너의 말한마디에 길을 걸으면서도 소리 내 울었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너는 대단한 역할을 해주고 있었던 것 같다.
내 하루를 전부 안아주고 있던 사람.
야근이 길어지고 택시를 타게 될 때,
내 목적지를 받아봐 주던 사람.
내 안정감.
내 소속감.
내 평온함.
모두 너의 역할이었다.
나는 여전히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너를 완전히 덜어내는데 매일 매일 실패하고 있다.
한 에세이 집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우리의 일생에서 타인은 절대적인 역할을 하며, 거부당하고 미움받고 괴롭힘 당하고, 때로는 사랑받고 구원받으며 칭찬 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
현재의 내 불안한 모습은 오롯이 너로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