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인생은 혼자야

결혼해도 다 똑같아

by Nima

와병(?) 중이라는 소문이 퍼져, 지인들이 병원을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반가운데 귀찮고 부끄러웠다.

내가 대수술을 마친 것도 아니고, 혼자 넘어졌고 그나마 뼈 붙으라고 기다리는 중일 뿐인데 이게 뭐라고 다들 숨 넘어가게 오는가 싶고, 문제는 온다는 사람들 모두 언제든 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눈치빠른 친구가 물었다.


"그 분이 오신다면 바로 나을 병인데, 그치?"


역시 나를 너무 자세히 파악했다. 나는 예의상 아닌 척했다.


"연락도 없는 사람이 뭘 안다고 어딜 와."

"기다렸네. 이 가엾고 불쌍한 것아."


정곡을 찔리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랬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내추럴한 모습을 굳이 보여줄 용기는 없지만, 엄연히 내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살면서, 한 번은 안부를 물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했다. 특히 요 며칠.


다시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는가.

왜.

연락이라도 오면 받아주게.

받을 모양이야, 얼씨구나 기다렸다는듯.


나는 오지도 않을 사람,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몹시도 허한 밤을 지새웠다. 소염제 링거 가지고도 쉽게 잠들지 못한 밤, 딱딱한 병동 침대에서 오래도록 뒤척였다.



또 다른 친구가 안부를 물었다. 우리 나이에는 뼈조심을 시작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도, 어젯밤의 뒤척임을 다 떨쳐내지 못했다. 나는 부끄럽게 질척거렸다.


"병문안을 바라고 뼈를 부러뜨린 것은 아니지만, 와서 들여본다는 것이 가족, 가족이나 다름 없는 친구들 뿐이야. 내 인생 참 초라하네."

"조인성이라도 와서 꽃을 던져야 안 초라한가? 그만하면 따뜻한 그림이구만은."

"신랑이 와서 '괜찮아?'정도는 물어봐 줄 나이니까."

"내가 신랑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없애 줄 이야기를 해주지."


본래는 다소곳하게 내 말을 들어주는 편인 그 친구는 다소 신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 회사 00부장님이 너처럼 입원했거든, 그 분은 수술을 해서 뭘 못먹었는데, 너가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는 신랑이랑 아들이 수술 끝나고 병동에 들어가니까 와서 들여다 보더래."

"좋네, 뭐."

"와서 앉더니 주섬 주섬 뭘 꺼내더라는 거야. 보니까 초밥 도시락이더래. 자기는 수술을 하고 소 사료 같이 묽은 죽을 씹네 마시네 이러고 있는데, 아들이랑 둘이 신나게 먹더래. 약간 미안했는지 '당신도 먹을 수 있는 줄 알았어.' 이러는 얼굴을 보니까, 한 가지 깨달았대."

"뭘."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걸."


하하하.


나는 그 친구와 한동안 깔깔대고 웃었다.

친구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5살 된 아들이 있고, 듬직한 신랑이 있다. 이 이야기는 유난히 고독에 몸부림치는 제 친구를 위해 웃자고 한 이야기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마워."

"뭐가. 얼굴보고 왜 왔냐고 구박 받아가면서 해야되는 이야기인데, 애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니까 고맙다구.. 그리고, 너 너무 부러워."

"도대체 뭐가 부럽니."

"넌 신랑도 있고, 아들도 있고, 난 뭘 같이 할 사람이 없어."

"허허, 이 사람아. 결혼해도 인생은 혼자라니까. 뭘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기 시작하면 같이 못 살아. 그냥 사는 거야.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어."


그냥 사는 것이라.


내 귀엔 그냥 사는 그 모습도 나는 가질 수 없는 그림 같다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친구의 자해 개그를 더는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산다고 해서, 항상 내 마음 같을 수는 없겠지. 항상 나를 이해해 줄 수는 없겠지. 항상 모든 순간이 익숙하고 편안할 수는 없겠지.


그를 떠올렸다.

사실 지난 3월 이후에도 우리는 서로 목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핑계로 연락을 하긴 했었다. 물어 볼 것이 있다는 둥, 혹은 그냥 정말 뻔하게 보고싶다는 둥.


한 번은 술을 먹었다는 핑계로 나를 만나러 올 기미가 보이자, 속상한 마음에 전화도 차단하고, 카톡도 차단했다. 그렇게는 싫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채 3달을 못 버티고, 먼저 연락했다.

그는 예전처럼 자기가 하는 일이 많고 바쁘다고 징징대고 투덜대느라, 내 안부 하나 묻지 않았다.


나는 그새를 못참고 먼저 물었다.

"어떻게 안부를 안 물어."

"물으려고 연락해본 적 있지, 나 차단한 거 같던데."

"지금 물으면 되잖아."

"뭐, 그건 모르겠고."


그리고는 다시 일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보통때 같으면, 하나 하나 다 반응해주고, 잘했다, 장하다, 칭찬 좀 하다가 코너에 몰린 그에게 이런 저런 아이디어도 줬다. 순전히 자기 일 얘기만 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한동안 얼굴도 못 보고 연락도 되지 않던 그 시간 덕분인지, 익숙했던 그 통화가 지루했다. 말이 끊기는 순간, 나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걱정할 지경이었다.


"하던 걸 해야 되는데, 그거 좀 안 들었다고 들어주는 것도 어색하다."

"뭐가..."

"그냥 이게 딱 나랑 너 같다. 이 어색한 순간이."


매몰찬 척 이야기를 꺼냈지만, 눈에서는 피눈물이 났다.

내 24시간이 모조리 집중되었던 사람.

온 겨울이 모조리 한 사람을 위한 시간이었던 것이 무색할만큼 짧은 전화통화도 어색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너에게 들어갔을까.

어차피 이렇게 겉돌며 나올 것을.

혼자라는 사실이 더더욱 사무치도록

너는 왜 나타났다가 그렇게 사라지는가.

우린 그냥 살 수 있었을까. 내가 너의 이기적인 하루하루를 참고, 너는 나의 이 엄청난 needy함을 참아가면서, 같이는 살지만 서로를 쿨하게 허락하는 그런 사이로 그냥 살 수 있었을까.


자신 없다. 그리고 자신이 있어봤자 우린 완전 끝이다.

그와 만나던 얘기를 듣던 친구는 이렇게 말 한 적도 있다.


'너 걔랑 결혼해봤자, 가방은 커녕 국물도 없어. 걔가 돈 잘벌고 잘 나가면 뭐하니. 너는 말라죽을 건데.'


그 말 덕에 두 손 탁탁 털면서 그를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말라죽을 일이 무서워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무섭다.나는 그를 만나는 내내 외로웠다. 혼자였다. 그러니 나는 그와 그냥 살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설득시키고 싶었다.


나는 그 날 저녁, 잠을 청하지 못했다.

아마 맥주 몇 캔은 마셨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야꼬 할머니의 글 중 '매사는 때가 있는 법'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3년쯤 후에 만났더라면 인연이 닿아 결혼했을지도 모르는 상대를 조금 일찍 만나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한 때 3년쯤 전에 우리가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관하여 이야기한 적 있다.


돌이켜보면 다 부질 없는 이야기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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