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ma Mar 04. 2018

이미지에 속지 맙시다

당신은 stereo type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속았다.

흔히 뒤통수 맞았다는 경우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작은 '이미지'가 가진 함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7-8년전, 00일보의 디지털 소설 공모전에 글을 냈는데, 발표일 무렵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설 심사하는 출판사의 담당자였는데,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내가 남자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자 주인공 1인칭 시점의 글을 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다.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러지 말고 '우리 당장 만나'가 되었다. 맞선보는 사람처럼 설레며 나갔는데 우리의 첫 미팅에서, 출판사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놀랍네요. 저는 여자분이더라도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예상했거든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허허"

"아니요, 너무 좋죠. 바짝 말라서 너무 예민한 작가 분보다는 이렇게 인심 좋은 인상이 더 좋아요."


아, 그랬구나.

그러고보니, 내가 상을 타거나 관심을 받았던 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치밀한 심리묘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치밀하고 지독하게 심리를 후벼파며, 내가 마치 궁예라도 된냥,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써대려면, 대단히 예민하다고 예상했을 것이고, 예민하다면, 바짝 말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BMI 3으로 시작하는 내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잘못이 없다. 그녀의 논리는 일리가 있다. 다만, 나의 덩치는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을 뿐.


나는 덩치 좋은 데 예민할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예민한 여자 작가'가 가진 이미지의 폭과 깊이를 흔드는데 내가 일조했다면, 나도 그녀에게 어쨌든 좋은 측면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날이후 버릇이 하나 생겼다.

지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버릇 말이다.


'나 인심 좋게 후덕하게 생겼어?'


당신이 이쯤에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녀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아래에 소개하는 여자에 관하여, 당신이 가진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그녀는 어릴 때 무척 가난하여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신용불량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일단, 그녀의 영특함을 칭송할 것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해냈다는 점에 대해서 무척이나 애처롭고 기특하고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것 같다.대부분의 상식처럼.


그런데, 그 여자가 밝고 잘 웃고 애교가 많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좋네


뭐 이정도의 생각을 가질 것 같다. 대부분이 그러하니까. 혹자는 이렇게도 말했다. '천사네, 천사.'


아무도 그녀가 가진 진짜는 알 수 없다.

기껏 만나봤자 일년에 몇 번, 그리고 만나봤자 회의 하는 동안 잠깐, 혹은 검토 의뢰하는 동안 잠깐 만나니까.

그러니 오며 가는 동안 밝은 모습 잠깐 겪고,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어렵게 산 얘기'듣다가 '그래도 잘 해내서 기특하다'는 칭찬 한번 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신불자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 거처가 절간이다가 교회였고, 천주교 신부님과 아주 깊은 교감을 나눈 고교 시절을 보냈으며, 서울에 올라와서는 고시원에 살면서 개량한복 입은 총무와 사귀면서 '도를 아십니까'에 빠졌다가 거기서 대 주는 돈으로 공부를 마치고 빚더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자고 한 남편을 만나 기독교로 전향하여 번듯한 회사의 대표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인간 승리 같은 이 이야기 속에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우물안처럼 좁았던 자기의 세계로부터 번듯한 회사의 으리으리한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세계를 만났을 때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한 박탈감,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등감, 모든 것을 부셔버리고 싶다는 내재된 폭력성이 그녀의 영특한 머리를 통해 어떻게 발현될수 있을지에 대한 점이다. 


그렇다, 그녀는 내 전 직장 상사이다.

그녀가 내 인생에 남긴 얼룩이 지워질까 모르겠지만, 나는 최초의 이미지를 보고 내 직장 생활이 순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도 이야기하면 안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무엇을 사 주셨다는 이야기,

가족끼리는 어느 식당에서 먹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

어릴 적 피아노 전공을 준비한 적 있다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는 cctv 없는 사각지역, 회의실로 날 불러들여, '니가 얼마나 고고하게 구는 줄 아느냐? 내가 우습냐? 내 아래 무릎 꿇어라.'를 대낮부터 외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고 일정 기간 이 좋은 회사에서의 근무 기간을 연장하려면 무조건 죽은 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입사한 지 서너달 뒤였다.


하지만, 그녀는 작지만 내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완장을 찼고, 그 완장을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었다.


혹여라도 다른 부서 사람들이 내가 힘들어 보인다고 하면 그것도 안된다. 왜냐하면 '나를 엿먹이기 위해서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 지 뻔히 보인다, 그렇게 머리를 쓰는 것이 역겹다.'고 소리를 지르다 인사팀에 '쟤는 꼭 승진에서 누락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는'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도 호락호락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내 인생에서 만난 최악이자, 악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그러나 녹화 테이프도 없고 녹음파일도 없는 말과 행동들이 떠오르면 일정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유없이 울기도 한다, 여전히.


덕담이 오고 가는 자리마다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를 외치고, '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났어야 되'를 외치다가, 내가 자리를 비울 때, 내 가방을 들여다보며 '이거 진짜냐? 얼마냐?'를 물었다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굳세어라 금순이'류로 대변되는,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는 이미지가 역겹다. 가난한데 착하지 않을 수 있다. 가난에서 비롯된 결핍과 목마름은 오히려 악마가 되는 증폭제로 좋은 기능을 하기도 한다. 최소한 나는 그런 예를 하나 알고 있다.


어제, 누워 있는 내게 후배가 신세한탄을 했다.


"언니, 진짜 00팀장이 그럴 줄 몰랐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난 정말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완전 양아치였어."


도련님과 양아치.

참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캐릭터가 아닌가.

도련님처럼 다소곳한 이미지에 대해서 아마추어처럼 마음 풀고 믿은 거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다독이며 전화를 끊었다.


그 악마가 생각나서.

내가 누구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니다. 내 앞가림이나 제대로 해야할 사람이 누구한테 조언인가.


아야꼬 할머니는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의 특징'이란 글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 했다.


다른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는 성격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한없이 나약하는 점이라고. '나는 나'라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성격적 결함을 안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부드럽게 칭찬해주면 된다며 그 이유는 칭찬 받은 상대가 기분이 좋아져 곧바로 좋은 관계가 맺어진다고 말이다.


할머니야 말로 아마추어다.

모질게 결핍이 깊은 사람들은 '칭찬'에 대해서도 '너 진심 아니지? 너 나한테 잘 보이려고 허튼 수작을 부리는 거지? 너 참 정치적이구나.' 라고 받기도 한다.


내 결론은, 그냥 그런 사람들하고는 관계를 안 맺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내 사람들 챙기기에도 시간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 이런 남자와 시작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