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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Jun 06. 2024

복순이의 고독한 서울살이

고독을 씹어 먹으며 창문 밖 뷰를 즐겨줘서 고맙다, 내 애기

1. 복순이와 산 지 4년이 넘었다.

2. 2020년 4월 15일, 선거일이던 임시공휴일에 만난 내 사랑, 복순이는 내 마흔 초입 봄, 교통사고처럼 만났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던 나는 정말 많은 실수를 했었고, 돌이켜보면 미안한 일이 너무 많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정도지만, 4년하고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오늘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나름대로 (동물병원계에서) 인정받는 상위 1% 멈머 엄마다. 그래, 나는 '새우깡' 먹어도 복순이는 '한우 떡심' 먹이며 오매불망 애지중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아무리 회식 3차에 술이 떡이 되어 대리운전을 부를 지경이 되더라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복순이는 동네를 순찰한다. 주말이면 개모차 차에 짊어지고 산이고 바다고 노력해본다. 동네 어르신 중의 한 분은 복순이를 만나면 "아이고, 차 타는 강아지구나."라고 인사해주신다.


3. 이건 다 '비겁한 변명'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내가 잘한 일만 늘어 놓았다. 수의사 선생님들은 나한테 "복순이는 정말 복 많은 강아지에요."라고 하시지만, 사실 복순이는 지독하게 고독한 강아지일 수도 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엄마, 밥이랑 간식만 군데 군데 숨겨두고 사라지는 엄마는 12시간이 지나도록 안 온다. 그 긴긴 시간, 복순이는 혼자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내 손이 많이 필요했던 애기 강아지 시절에도 복순이는 혼자 나를 기다렸다. (피눈물나게 미안한 순간이 정말 많았던) 오피스텔서 살던 나는 아침 7시면 집에서 사라졌고, 8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갔었는데, 애기 복순이는 늘 배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도저히 알 길이 없어서 LG 유플러스 펫 카메라 광고를 잽싸게 클릭하고 부랴부랴 cctv를 설치했더니, 아뿔싸. 복순이는 거의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엘리베이터와 매우 가까이 있던 내 작은 오피스텔은 애기 복순이에게는 정말 지옥같았을 것 같다. 오전에 한 차례, 오후에 한 차례. 미친듯이 택배를 실어나르는 쿠팡과 한진택배 아저씨들의 발자국 소리는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을 것이고, 우리 애기는 늘 화장실에 숨어들어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컹컹 한 번 짖지도 않고 쪼르르 화장실로 들어가버리던 영상을 보고 한참 울어재낀 나는 일단 '강아지 유치원'을 알아보았다.


4. 강아지 유치원이라는 것은 참 오묘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애견 호텔'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면 아크릴 상자에 집어 넣는 꼴을 보게 되더니만, '강아지 유치원'이라길래 들어가보면 '비좁은 인조 잔디판'에 개들이 오골오골 모여있었다. 복순이를 몇 번이나 무리에 끼워 넣으려 해보았다. 애기의 표정을 보면 뒤돌아서 나올 수가 없었다. 온 몸을 덜덜 떨며 문 앞에 착 붙어 있는 복순이. 급기야 마지막 유치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복순이는 본인이 강아지인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어머니한테 맡기시면 안돼나요?"


하하하. 시집 안 가서 유일하게 하는 효도가 "애기 보라며 던져 놓고 도망가는"일 안 하는 것인데, 대신 개를 집어 넣어보라? 자기 인생 망친다며, 자기도 바쁘다며 거품을 물고 욕할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5. 지금의 집은 뭔가 대단한 조건을 걸어서 찾았던 것은 아니다. 워낙 내 예산은 제한적이었고 출퇴근이 너무 길어지지 않아야 했기에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 집을 보자마자 좁고 어두웠던 오피스텔의 눅눅한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쏟아지는 햇빛과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결정했다. 한 층에 한 집이었던 것도 좋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도 좋았다. 나와 사이클이 완전 반대인 아랫집 아가씨가 새벽마다 시끄럽게 귀가해도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주말 내내 붙어 앉아 복순이의 사이클을 살펴보았다. 하루종일 붙어 있는 주말에도 그녀는 그녀만의 루틴이 생길 정도로 성견이 된 것 같긴 했다. 내 옆에 앉아 누워 있다가 저 혼자 총총총 거실로 나갔다가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 사연많은 아가씨처럼 창 밖에 턱 괴고 앉아있다가 다시 오두막에 들어가 잠을 청하던 복순이. 그렇게 몇 번을 밀착 관찰 해보고, 미안한 마음 반 정도 줄어든 채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 두 대를 베란다와 오두막 앞에 설치했다.


6. 복순이가 카메라 지역에 나타나면 핸드폰으로 알람이 온다. 360도 돌아가는 카메라만 보는 극성 엄마가 되기 싫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자주 그녀의 동선이 잡혀 생각보다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복순이는 내가 나가자마자 간식을 마저 챙겨먹고는 베란다에서 잠시 사색을 즐기다 오두막으로 피신, 낮잠을 청했다. 그러다 발딱 일어나면 거실에 나가 쿨 매트에 누워 인형과 뒹굴고, 그러다 다시 베란다로 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해 지는 베란다에 앉아 있었고, 계단을 오르면 이미 그녀는 문을 긁었다.


최근 회사 스케줄이 더 좋아져서 나는 6시 반이면 집에 도착한다. 그녀는 늘 문을 긁으며 나를 반기는데, 그런 복순이를 볼 때마다, 12시간 가까이 고독하게 나만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속이 타들어갈만큼 미안하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피똥쌀 애기를 생각하면 뒷골이 땡기고, 어디 보내 놓고 전전긍긍할 나를 생각하면 답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본다. 내가 정말 돈 걱정 없이 너만 데리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그치만 우리 복순이, 너의 고독을 덜어주기 위해 불철주야 생각하고 있단다.


휴일을 앞두고 조금 일찍 퇴근한 나릉 반기던 복순이는 반나절 실컷 걸렸더니 피곤하다며 오두막으로 도망갔다. 코까지 골며 잠든 4키로 짜리 강아지를 보며, 그녀의 고독을 어림짐작하다 울컥 하여 한 줄 씀.


(너 덕분에 뭘 쓰기까지 했다. 너는 역시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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