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ma Mar 15. 2018

욕망덩어리의 무쇠방패

하느님 아버지와 기복신앙

딱 봐도 날티나던 그는 주변에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슬쩍 보고 섣부른 판단을 하자면, 그는 이 집, 저 집 묘한 여지를 남기며, 애매한 상황을 만드는 데 능숙하고, 그 상황을 싫어하지 않아 보였다. 얼굴값 하나보다했다.


어느 날 아침, 왜 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와 그는 잠깐 둘 만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말이나 한다는 것이 그만, '윤회'를 언급하고야 말았다.


"다음생에 태어나면, 나는 부잣집 개로 태어날까봐."


그는, 그렇게 양아치 포스 풍기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되서 하는 말인데, 다음생은 없어. 죽은 다음엔, 천국과 지옥이 있는거야. 너 하느님 안 믿지?"


하느님.

혹시 우리 엄마가 매일 기도하는 그 성모상과 관련된, 전지전능하다는 그 분인가.

그런데, 이 아침에 내 농담을 죽자고 진담으로 받아치는 이 사람은 양아치, 동네한량이 아니었던가. 그는 왜 나의 윤회를 걱정할까. 이 사람, 이렇게 순수했나.


그 날 이후, 나는 그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자세히 살펴본 그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야말로 조신한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반듯한 그의 성품과 엄격한 그의 신앙은 꽤나 어울리는 좋은 본보기였다. 그가 말하는 '예수님'의 존재는 힘든 시간을 보낸 그에게 대단한 의지가 되어 주었던 것 같았고, 나는 그 때, 종교가, 이 팍팍한 세상에서 꽤나 좋은 순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지인 중의 하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예쁘면, 예뻐서 욕하고, 돈 많으면 돈 많아서 욕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다고 욕하고, 그러면서 본인은 예뻐지고 싶어 수술하고, 돈 많이 벌고 싶어 투 잡뛰고, 공부 열심히 하고 싶어 무수한 강의를 수강하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제일 기억나는 것은 그녀의 욕망이라거나, 그녀의 모순이 아니라,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하여 신랄하게 비난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녀는 신앙심이 깊으셨던 그녀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유난히 기독교가 싫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매주 3번 교회에 나간다는 소식이었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닥치는 대로 교회를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 점쟁이들에게 빚 받듯 다그치던 모습이 생각났다.  재물운이 좋다는 사주를 가지지 못했다며, 점쟁이들에게 본인의 사주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솔루션이 있는지 다그쳐 묻던 모습, 타고난 사주 팔자를 몇 가지 얄팍한 방법(가령, 부적을 쓰는 등)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의뢰하고 그것리 불가능하다며 뜨뜻미지근하게 거절한 점쟁이를 오래도록 곱씹던 모습들이 떠오르자, 그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전지전능한 하느님 아버지 뿐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그녀와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열렬히 바라고, 무엇인가 열렬히 원하고, 그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많이 확보하고, 제일 많이 가지기를 원했던 그녀의 모습에, 뜨거운 마음으로 온 몸을 불사르는 기도는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내가 아주 익숙한 사람과 매우 닮아 있었다.


전 직장의 상사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하느님을 본적 있다는 말을 백주대낮에 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오래도록 함께 살았지만, 하느님을 본 적 있다는 등의 말은 대단히 낯설었는데, 사실 그녀가 본 하느님, 그녀 인생의 하느님은 그저 대체로 낯설었다.


그 낯선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던 우리 엄마의 하느님과는 달리, 콕 찝어 그녀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의 징표는 기도때마다 나타가 대개,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혜택을 약속하시는 듯 했다. 가령,


'기도를 하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나는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번 계약은 내 기도 덕분이다.'


'오늘 아침에 하느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 때문에 큰 화를 입을 것이니 너를 단단히 조사하라고.'


'아이고, 아버지가 어제 기도할 때 저는 내일 잘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잘 될 겁니다. 이렇게 낯빛이 좋으신 대표님을 뵙고, 저는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가 올리는 기도의 주된 내용은 '아부지,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이거나, '아부지, 저는 이 자리가 필요합니다'이었는데, 그것은 과욕이라는 흠이 되지 않았다. 신성하고 홀리한 기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영혼이 맑은 그녀 눈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든 그 사실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프로젝트 해보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은 금기된 터부였다. 정치적이구나, 야욕이 있구나, 너의 급한 마음은 조직에 해가 된다, 내가 우습냐, 나를 밟고 올라갈 생각이구나...내가 그 금기의 단어를 뱉은 댓가는 엄청난 것이었은데  일단 보통의 상식으류는 감당하기 어려운 논리들이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이 허락 되지 않았다. 밑에 두고 괴롭히고 싶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나의 탈출을 온갖 논리로 막던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제 너한테 자신이 좀 생겼거든. 탈출은 안 되지."


그녀는 악마였다.다만, 하느님을 방패로 영업하는 악마.

그 공격의 최선봉에서 악용되던 '하느님 아버지'는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 정녕 기도의 화답이 그렇게 구체적이실 수 있나요. 아버지. 제가 아는 아버지 맞으신가요.


오늘 아침, 지인의 신실한 종교생활을 전해준 친구는 나에게 같은 종교를 권했다. 지난 겨울 도망쳐온 여자, 기도의 이름으로 악마같은 짓을 일삼던 그녀를 기억나게 했다. 어느 날 아침, 나에게 천국과 지옥을 얘기하던 남자와 같이 그냥 버팀목은 될 수 없나요, 아버지.  



작가의 이전글 새로 시작하는 커플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