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멋질 수 밖에 없는 당신을 위하여
"이상형이 누구야? 그냥 연예인으로 말해봐."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묻다보면 흔히 도착하는 종착역. 연예인으로 이상형을 말해봐.
난 항상 이 질문이 어려웠다. 누군가 열렬히 좋아했던 마지막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가수를 좋아한 적도 있지만, 그를 사랑하진 않았던 것 같고, 배우를 좋아한 적도 있지만, 그를 내 남자로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몇 번은 요상한 오답(?)을 제시하여 큰 웃음 선사하곤 했다.
"유동근?"
"하하하하, 시아버지 이상형?"
스무살 무렵의 이상형이 유동근이라는 대답은 '작동오류'같은 답이었다. 사실, 특별히 유동근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진짜 오래 좋아했던 '남자'는 '러셀 크로우' 였는데(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상형을 외국 배우라고 말하는 것이 좀 망설여졌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형'에 대한 '이상적인 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얼추 눈치를 챈 다음에는 나는 항상 '조인성'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잠시 한국에 없었던 시간,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를 통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라, 내 대답이 그렇게 튀지도 않았고, 실제 '완청'한 그 드라마에서 조인성은 지나치게 완벽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두에게 공표한 내 이상형이 나오는 드라마,'봄날'에서, 내가 다른 남자에게 빠진 것이다.
'봄날'이라는 드라마 이후, 나는 '지진희가 이상형'이라고 하곤 했다. 이제사 진짜 대답 같은 대답을 한다는 듯한 표정은 덤으로, 그가 TV에 자주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뻔뻔하고 당당하게.
즐겨 듣는 노래 중에 '샘 스미스'의 노래들이 꽤 있다.
그는 여즉 20대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흔드는 노래를 부른다. 그가 더 모진 세월을 견뎌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을 때,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하다. 나는 그의 30대가 기대된다.
한동안 잊고 지낸 지진희가 드라마에 나왔다. 깊어진 주름과 깊어진 눈빛으로. 멀쩡한 그의 모습에 백발을 덧씌워 상상해보았다. 그래도 그는 충분히 멋질 것 같았다. 그의 10년 뒤 역시 몹시도 기대된다.
10년 뒤,20년 뒤가 멋질 것 같다는 말, 아무나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겨우 지금의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며 잔머리나 쓸 줄 아는. 야트막한 간장 종지 같은 사람에게는 해 줄 수 없는 말이다. 기대되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현재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하여도 이렇게 응원하고 싶다.
사람마다 그릇이 있다고, 너는 큰 그릇이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혹여 인생이 어렵고, 그래서 발전이 더디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바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말라고.
너의 10년 뒤는 반드시 멋질 거라는 말. 그 말을 어떻게 아무에게나 하는 가. 다 '싹이 보이는', '그릇이 되직한', 그런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샘 스미스가 30대를 보내며 더 깊어질 생각과 감정들이 어떻게 녹여져 나올지 기대되고,
지진희가 50대를 보내며, 더 단단하고 넓어질 마음과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어 나올지 기대되지,
모두에게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해리슨 포드는 70대에도 현역이다.
그의 30대와 그의 70대는 여전히 똑같이 멋지다.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그릇이 다름은 어쩔 수 없다.
'윗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으로 오래도록 버텨온 사람은 항상 이쁨 받고 싶다는 욕망만 좇으며 살았기에 '윗사람'이 될 그릇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잔꾀에만 능하여, 보고 시간에만 면피하는 데 능한 사람, 그나마 밑에 둔 직원의 작은 성과까지 내 것으로 보고하여 이쁨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촌스러운 애티튜드의 사람은 평생 윗분들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비서처럼 사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본인은 그렇게 큰 그릇이 아니란 말이며, 본인은 그렇게 10년 뒤가 기대되는 리더가 아니란 말이다.
본인을 포함하여 3-4명이 전부였던 팀을 100명이 넘는 본부로, 600명이 넘는 조직으로 키울 그릇은 따로 있다.
그는 고난을 겪었겠지만, 모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 그릇대로 가는 것이다. 10년 뒤를 생각해봐.'
빌어 먹고 사는 것도 억세게 좋은 운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분이 양심도 없이 거대한 비전을 읊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고민이 깊어진 지인을 위로하다 잠깐 한 마디.
아야코 할머니는 '칭찬받는 삶은 지친다'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칭찬이 있으면 뒤로 계속해서 그에 버금가는 요구가 뒤따른다고.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세심하게 챙겨달라고 요구한다고. 악평의 주인공은 약간의 친절을 베풀어도 기대이상의 호응을 얻지만, 평소 배려가 넘치면 원래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할머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귀찮으니까 너도 악평을 받도록 노력하라는 것인가요.
난 다르게 생각한다. 그릇이 다른 것이다.
당신의 배려심, 당신의 됨됨이, 당신이라는 사람은 악평을 받기엔 아깝다. 언젠가 사람들은 당신을 알아볼 것이며, 지금도 모두가 당신의 10년 뒤를 기대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도 남다르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