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하고 싶은 일
아버지는 경상도 대구 사람이셨는데, 우리 가족은 대구보다 강원도를 더 자주 갔다. 아버지는 강원도와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동해바다를 무지하게 좋아하셨다. 내가 어릴 때는 '낙산비치호텔'더러 우리 집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고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얼마전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속초를 간 적 있다.
어린 시절 더듬기 시작하면 벌써 강산이 여러번 변해버린 나이가 되었기에, 상전벽해 타령은 진부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어마무시하게 변해있었다.
내 기억속 고즈넉한 바닷가와 작은 횟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역시 우리나라는 죽은지 30년된 귀신이 고향을 찾지 못하는 나라였던가.
용기 내 기억속 횟집의 안부를 물었다.
용케도 누군가 그 횟집 주인 아주머니의 근황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횟집 자리를 팔고, 원주로 나갔다고 했다. 배가 뒤집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불현듯, 그 남편분, 아저씨의 모습 기억났다.
어릴 적, 아저씨의 모습은 나에게 '도깨비'같았는데, 새카만 얼굴에 반짝이던 금니, 그리고 무지하게 깊이 팬 눈가 주름이 잊을 수 없는 시그니처였다. 나는 가족 휴가를 다녀오면 아저씨와 횟집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 것 같다. 작은 배에 도깨비 하나, 뭐 이런식.
아저씨는 여름마다 나타나는 타지사람 가족들을 꽤나 반가워 하셨다. 내 어린 시절의 젊은 아버지를 무척 반가워 하셨는데, 두 분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곤 하셨다. 작은 쪽배로 금방 잡아온 여러가지를 내어 주시다가, 나와 동생에게는 전복죽같은 걸 챙겨주라고 아주머니에게 소리 지르곤 하셨다. 생각해보니 꽤 여러가지가 기억났다.
죽음은 내게 막연한 개념이 아니었다.
원조딸바보 같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못 해드린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나는 아주 못된 딸이었다.
언제였던가, tvN에서 새로운 예능의 예고편이 나왔다. 이름하야 '내게 남은 48시간'.
타이틀을 보는 순간 예감은 했지만,몇 십초간 지나가는 등장인물들의 표정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오래도록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죽음에 관하여 담백하다고 자부했었는데, 그건 허세였던가.
나는 매번 '내일 죽을 수도 있으므로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한다'며 인생에 미련같은 거 두지말자며, 빅 픽쳐는 개나 주라며,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굴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상 내게 남은 시간을 48시간으로 한정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막연하게 누군가를 만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아니다.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는다는 가정을 하면
당연히 엄마랑 더 있어야겠지만
둘 다 울고불고 할 것 같아서 상상 하기 어려웠다...
그럼, 누구를 만나다 죽는가.
내가 국회의원형도 아니고, 얇고 넓게 지낼 줄도 모르는 내가 마지막 48시간을 여기 찍고 저기 찍고 여럿을 모두 찍고 죽지는못 할것 같고...
내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나와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나를 존중하고, 나라는 사람을 아끼던 사람.
막상 떠오르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이 이승에서
꼭 다시 보고 죽어서 그 잔상이 내 눈앞에 남은 채 죽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떠오르지 않다니.
고육지책으로 그를 떠올렸다.
그런데, 도대체 그를 왜 만나는가.
너 그 날 왜 그랬냐고
너는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어서?
갑자기 내 자신이 섬찟해졌다.
죽기전에 고작 듣고 싶은 말이 나를 만족시키는 말, 듣기 좋은 변명이란 말인가.
그럼, 나 내일 죽는다고 밑장을 깔아서라도,면피에 불과한 사과를 구걸하고 싶은 것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를 다시 보는 것은 말아야겠다. 정말이지 피해야겠다.
그럼, 마지막까지 내게 기회를 줬던 그 남자?
또 한 명 떠오르던 옛 사람의 얼굴이 가물거리자, 나는 곧 미안해졌다.
사실 나는 그를 오래도록 다시 만나고 싶어했었다.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지냈냐는 둥의 쓸데없는 대화는
모조리 생략하고 그가 나를 가만히 안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죽으면 나는 행복할줄 알았는데, 문득 내가 너무 못된 것을 알았다
이미 예쁜 자식 낳고 세젤멋 아빠로 잘 살고 있는 그에게
그렇게 필요한 순간에는 나 몰라라 해놓고
모질게 굴어도 내게만은 거절을 몰랐던
어린 기억 속의 그를 또 괴롭히려고 굳이 마지막에 만나고 싶어 하다니
잡지 못 한 것이 후회되면 애저녁에 잘 했어야지...그 역시 고이 두고 가야겠구나.
나는 결국 48시간은 그냥 혼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몹시도 슬펐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나를 떠난 그에게 빚 받든 받아내고 싶은 사과이거나, 이미 놓친 그에 대한 이기적인 질척거림 뿐이구나.
나는 결국
누군가를 만나서 나와 그의 행복한 순간을
요약하여 복습하다 웃으며 죽을 자격은 없구나
음...그랬구나...
음....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야코 할머니 에세이 중, '오늘 저녁 밥상이 준비되어 있다'는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오늘 저녁 밥상이 준비되어 있다. 이처럼 당연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은 재능이다.
난 아직 48시간을 준비할 만큼 여문 인생을 엮어내지 못했다. 나는 내 일상에 감사하며, 천천히 영글기를 기도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