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시시한 내 시간들아, 힘을 내렴
"불금 보내."
금요일 저녁, 퇴근을 준비하려고 정리를 하면, 서로 건네는 인삿말. 나는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지 않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가끔은, 특히 모두가 여유 있는 금요일 오후에는, 사무실 사람들끼리 이런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약속 있어?"
"네. 근데 급한 일 있으시면 말씀 하셔도 되요."
"아니, 일 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이렇게 날 좋은 날 일을 왜 해?"
"하하하."
"그리고, 오늘 옷 차림이 남자 만나러 갈 줄 알았어."
"선배랑 저녁만 먹는데요, 뭐."
"결혼 별 거 아니야, 그냥 만날만 하면 팍 결혼해."
보통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지면, 옛날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선배님 결혼 하셨어요. 선배님이 하도 시간이 안 되니까, 그 회사 근처 가서 저녁만 먹으려고 하는 건데..."
구구절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선배의 사생활을 낱낱이 읊어주던 순진하던 시절, 검찰청에 끌려간 초보 잡범 마냥,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내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주던 시절, 나는 저렇게 대답했다.다만, 웃자고 한 사생활 이야기를 찌라시 기자보다 더 더티하게 엮어서 시도 때도 없이 나팔 불 수 있었던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즘의 나는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노력해볼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불금을 보내라고 인사하며 돌아서봤자, 요즘의 내 갈곳은 환갑 넘은 어머니가 여즉 나를 먹이겠다고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본가 뿐이다. 어떻게 보내야 불타는 금요일이 되는지, 뽀뽀 처음 해 보는 아가씨처럼 갸우뚱거릴 것 같다. 다 까먹었다. 금요일을, 날 좋은 주말을, 황금같은 연휴를 보내는 방법 같은 것은 모두 다 까먹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어둑해진 퇴근길, 혼자 걸어 들어오는 길은 사무치게 외롭다. 꼭 누가 옆에 없어서는 아니다. 그냥, 퇴근길은 무지하게 외로운 것 같다.
그렇게 무겁고 외로운 퇴근길을 4번만 마치면, 나는 다시 반드시 뭔가 다 태워버려야 할 것 같은 금요일을 맞이 한다. 오후 부터 마주치는 사람들과 '불금 보내'라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집에 오는 지하철 내내, 뼛속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한 여름에도 손이 시린 채.
늦잠 자고 일어나, 동네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시집 못 간 친구들끼리 만나 뭐가 좋다고 히히덕 거리기도 하면 다시 저녁이 되고, 다시 일요일 아침이 되고, 홀린 듯 터벅 터벅 오피스텔로 돌아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다 잠이 든다.
다시 일어나 출근을 할 것이다. 4밤만 자면, 나는 다시 불금을 보내라며 인사할 것이다.
(사진 *올해 처음 본 바다는 출장지였다.)
시집 못(안)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등산 동호회 갈래?"
"어우, 내려갈 산 왜 올라가는데?"
"거기 남자들이 많다길래."
"등산 좋아하는 여자들을 찾아봐."
"그럼, 와인 동호회 갈래?"
무미건조한, 그러나 이제 상당히 편안해진 내 일상의 바운더리에 뭔가 낯설고, 어마어마하게 신선한 자극을 새로이 주입하여야만 하는 걸까. 그저, '새롭기만 한', 그러나 별로 관심 없는 남자들을 힘들여 만나기 위해 심기일전 해야할까.
나는 그냥 고맙다고, 그래도 같은 처지인 나를 잊지 않고 챙겨줘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까이 지내는 동료이자, 학교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선배 오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싱글을 즐기라니까."
"면벽수행을 즐긴다고 말 할 만큼의 내공은 아직 없어."
"여전히 무지하게 외롭니?"
매일 매일 '외롭다'는 말을 인삿말처럼 하는 내게 선배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충 하루하루 일정이 감이 잡히잖아, Recurring 이 다 잡혀 있지 않니?"
"그 와중에 틈틈이 외로워."
"큰일이네... 진짜 잘 안아주는 곰돌이 하나 얼른 구해보자."
"하하, 정말? 누구 있어?"
"아니, 정말 요즘엔 소개해 줄 남자가 없어."
하하하.
요즘만 그런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며 까먹는 내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도 지쳤다. 그래서인지, 등산동호회는 진저리가 나고, 와인동호회는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그러고보니, 내가 연하남과 티격태격하다 다시 혼자 남았을 때, 그래서 몸서리치게 외로움에 떨며 지낼 때, 너를 만났다.
너는 교통사고처럼 내게 왔다.
너라는 사람이 내게 들어온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나는 다시 출근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4밤만 자면 불타는 금요일을 보낼 것이다.
아야코 할머니의 에세이 중,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는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간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다. 그것이 그 아이의 행복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남들같은 금요일은, 주말은, 연휴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와이프가 리조트를 예약한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바람에 하루종일 베트남 다낭 이야기를 하던 사람도 생각난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이와 함께 물놀이하기 좋은 리조트를 고르며 즐거워할 수 있을까. 내 행복의 방향은 다른 곳에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