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지금 사랑하고 계십니까

사랑해서 하는 게 결혼 아닌가요

by Nima

직접 이혼 상담을 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그 문제를 자주 접한다. 보통은 친구 얘기라면서 본인의 문제를 상담하기도 하고, 누구는 후미진 커피숍으로 나를 몰래 부른 다음, 비장하게 입을 열기도 한다.


"저기, 내가 이혼하면 말이야..."


이혼이란,

누군가에게는 아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아이가 있어도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자,

누군가에게는 내 인생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절대 해 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남의 일이니 드라이하게, '되도록 하지마라, 애기를 생각해라' 류의 조언을 한다. 건강가정위원회 회원마냥 어른 노릇 버겁게 하고나면, 남의 집 이야기 되도록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뒤돌아서도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저 정도인데 왜 헤어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남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고보니,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곁에서 지켜본 그녀의 가정 생활은 안타까웠다. '저럴 거면 왜 살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결혼한지 9년이지만, 아이가 없던 그녀가 첫 회식 자리에서 대표님에게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제가 이 회사를 위해 일하느라 아직도 애기가 없습니더. 이거는 진짜 보상을 어디서 받지예? 하하하하'


그런데, 지켜보다보니, 회사 핑계, 그러니까 본인이 즐겨 말하는 변명, '저는 워커홀릭 입니더'라던지, '저한테는 이 회사가 제일 중요합니더' 등의 변명은 오히려 크게 수긍 가지 않는 상황이 많았다. 일이 없는데도 굳이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일단 저녁을 먹기 시작하면 그 시간은 제한이 없고, 결국 9시 무렵에나 책상에 앉아서 이것 저것 하다보면 11시, 이런 패턴이 반복되었다. 나는 실미도에 끌려온 사람처럼 하는 일이 없어도 그 시간까지 앉아 있어줘야 했다. 혹시라도 어디 간다는 말을 하는 것은 들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처럼 반가운 트집이 되었다. 일장 연설로 시간을 떼울 수 있는 핑계를 주는 셈이니까.

다만 이런 나도 살 길이 열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것이 11시 무렵이다. 그 무렵쯤은 택시비 청구가 가능한 시간이니 택시를 타고 가셨다. 최초에 나는 '저녁을 굳이 3시간씩 먹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가, 오늘은 기분이 별로이셨나' 같이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그런데, 그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번 집에 가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고 있었다.


남편이 연락 오면 일하는 중이라고 하고, 회식을 하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 일의 연속 일 수 있다. 그런데, 빈도가 문제였다. 그녀는 늘 새로운 변명이 생겼다.


그나마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집에 메여야 하는 시간은 주말이었는데, 교회를 나가거나 집에서 TV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서 들었음직한 말, '요즘은 친구가 없잖아. 부부가 친구로 주말에 놀고 하는 거라니까.'라고 자조적으로 읊조리며 같이 본 TV프로그램 이야기를 오전 내내 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이름은 '회의'자리 였지만.



그녀의 진심이 불쑥 튀어 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제가 원래 정말 규칙적인데 오늘 거른 거라예, 그래서 진짜 죽고 싶었습니더. 하하하하하.' 라던지, '몸 생각 하셔야죠.'라고 'Women's Tea'를 드린 내게, '왜? 내가 임신하면 이 자리 니 거 같애?"라던지.


아니면, 서향희 변호사, 조윤선 변호사가 그래도 똑똑하다는 말이 나오면, '내도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을 갔어야 되'라고 하거나, 유부남 직원들이 내 칭찬을 하면, '어머, 집이 권태기에요?'라고 떠보거나 하는 등의 작은 에피소드 들을 겪으며, 나는 그녀가 퇴근 후 불행한 시간을 보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최초에 상경하여 '도를 아십니까'를 외치며 개량한복을 입었던 첫번째 남자친구에 비해, 가난하지만 연수원을 나온 남편이랑 결혼하고 느낀 만족감이, 회사의 엘리트 임원들을 보면서 산산 조각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그녀의 남자 보는 눈은 뒤늦게 높아졌고, 욕심많은 그녀는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감에 남편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도 중요하지 않고, 이 인생을 걸고 싶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래도록 가까이 지켜보면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혼자'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아주 좋은 방패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주 애교 많기로 유명했는데, 아슬아슬 선을 넘나들면서 묘한 표현을 하는 중간 중간, 상대방에게 겁먹지 말라고 하는 멘트가 있었다.


'왜 이러십니꺼, 저는 집에서 사랑 받고 삽니더. 하하하하.'


그녀에게는 그 시점, 그 자리에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나마도 그 남편이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안전하니까.


지독하게 슬픈 얘기였다. 그래서 그녀를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끝없는 탐욕이 불러오는 공허함이 불쌍해서.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 기억났다.

그녀는 뭔가 내게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게 많았는데, 나는 어디까지 친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녀의 몇 가지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일단, 그녀는 시골에서 올라왔고, (누구나 그렇듯) 돈이 부족했고, 그래서 그런지 '리코타 치즈'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했다. 귀여웠다. 다만, 가끔 사람을 소개할 때, '쟤 돈 많아요.' 혹은 '쟤 돈 없어요.'라는 것이 첫번째 멘트라는 점이 아주 마음 쓰였다.


또한,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 조금 아리송했다. 서울 출신이라고 소개한 남자친구가 뻔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언니는 어떻게 돈 많은 사람들을 많이 아는가? 궁금하다, 나도 보고 싶다' 라고 재차 물었다. 반복될 수록 명확해지는 그 의도를 모른척 하기 애매해서 난감해 하던 무렵, 그녀는 동기 중에 미모가 빼어나던 친구 이야기를 전했다.


'언니, 걔 의사 킬러에요. 원나잇 걸.'

'하하하, 그것도 능력인데, 부럽네. 나는 산송장인데.'

'양다리도 마다않는데 무슨 능력이에요. 그냥 여지를 두는 거지.'

'이쁘면 남자들이 가만 두지 않으니까.'


그때, 그녀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걔 지난 번 남친은 변호사였는데, 돈 많았거든요. 서울 사람이고. 근데 그 남자한테 차이고 나서는 걔 정신과 다녔어요. 우울증때문에. 이쁘면 행복하지 않아."


섬찟했다. 내가 그녀를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그녀에게 없는 그 무엇이 안쓰러웠던 것이지, 그 사람은 귀여울 수 없는 내면을 가졌다.내 자신이 망신스러웠다. 나는 그녀를 못 본척 하기 어려웠다.


'나도 이별은 어려워. 이쁜데 마음이 약한 가 보네.'

'이쁘면 뭐해요 걔는 행복하지 않다니까.'

'안됐구나.'


애써 딴청을 하려는 내게 그녀가 덧붙였다.


'그 변호사 돈 되게 많았고 00법무법인 다니거든요 잘 나가는 사람이라 궁금해서 나도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고 빌었었는데 얌체같이 지만 다 누릴라고 했다가 차였어요.'

'너 지금 만나는 서울 출신 남친이 있을때 빌었어?'


내가 쏘아붙여 물어본 순간의 그녀 표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를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그 남자친구가 가여웠던 것이 생각난다. 그저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같은 남자친구. 언제든지 잘 나가고 돈 많은 남자 구경에 앞장 설 수 있는 그녀 인생의 구색을 갖춰주는 예비 후보. 참 슬픈 이야기였다.

듣자하니 그녀는 서울 출신 남자친구와 여즉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그 서울 출신 남자친구를 위해 갑자기 기도해주고 싶다. 더 좋아하면 지는 거니까, 얼마나 외로울까, 오지랖에 마음 아픈 적도 있다. 비록, 내 코가 석자여서 오래도록 마음 써 주지는 못하지만.


그러다가 가끔, '절대 이혼 못 해주겠다'는 말을 들으면, 굳이 보험을 쟁여놓고, 제 인생의 구색을 맞춰두기 위하여 허울만 번듯한 남자를 꽉 틀어쥐고 있는 몇 몇이 생각난다.


인생은 짧은데,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당신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나 같은 노처녀도 당신들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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