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좋은 이별을 부탁해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줘

by Nima

보려고 본 것은 아닌데, 페이스북 피드에서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다. 아마 개그맨 안영미씨와 다른 게스트가 나와서 연애상담을 해 주는 프로그램의 일부였던 것 같다.


안영미씨가 사연 읽기를 마치며, 조근조근 말했다.


"옛날 남자친구가 새벽에 전화하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그냥 찔러보는 거에요. 하자고."

"깔깔깔깔깔깔."


맞는 말이다. 수학적 공식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만큼 오답의 여지 없는 대답이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이기적이었다. 나와의 만남이 물거품이 되는 과정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았다.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 다른 핑계를 댔다. 다 받아줄 수 없었다면, 노력이라도 하는 척은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회피했다. 내가 원하는 것 중에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우린 끝났다.

최초의 나는 '그만하자'고 했다.

그러자, 덥썩 '이제 편하게 보자'고 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말이 준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나는 계속 비아냥 거렸다. 편하게 보는 사이는 밤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하나였다.


'그건 잘못했어. 진심이 아니었어'


그러나, 그는 그 말이 나오면 전화를 끊곤 했다.

우리는 미적거리며 만나는 내내 서로 비아냥댔다.

우리의 상처가 아물어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너도 나도 조금은 노력해줬어야 했다.


그러나 우린 실패했다. 사과 없이 회피만 하는 너,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제 이야기만 하는 너, 그런 너를 보고 애써 비아냥 대던 나, 도대체 나한테는 왜 노력하지 않냐고 들들 볶던 나. 그리고 내게 '이직'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었지만, 너는 못 본척 했다. 그런 일은 모른다고 했다. 관심 없어했다. 나는 그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너는 간간이, 새벽에만, 연락했다. 나의 아침이 궁금한 적은 없었다.


일어났니.

새로운 회사는 어떠니.

일은 재미있니.

이런 말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불쑥 '어디니'라고 묻는 새벽. 나는 진저리가 났다.

그리고 카톡에서 탈퇴했다.



카톡에서 탈퇴하기 전, 연말 내내 나는 모질게도 힘들었다. 한참 사랑타령하던 그 순간 오래도록 울려퍼지던 'LALA LAND' 가 죽지 않고 돌아온 각설이처럼 올해도 연말 내내 울려퍼졌고, 나는 매일 무너졌다.


잊고 싶어 죽을 것 같지만, 눈 감으면 생각났다.

눈을 감으면, 꿈 속을 헤매면, 그의 커다란 손을 잡고 나는 신나게 걸었다. 따뜻하게 전해지던 그 온기. 칼바람 불던 그 겨울이 하나도 춥지 않았던 그 순간.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냐고 묻는 말에 보고싶다고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답이 없었다.

다만, 또 언젠가, 만취했음이 분명한 시기에, 어디냐고 연락했다.


나는 카톡에서 탈퇴했다.


우리는 LaLa Land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까지 연말마다 괴로울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력하고 있다.


새벽 1시 반이었던가. 전화가 왔다.

미처 무음으로 바꿔두지 못했는지,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연락처를 지웠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뒷번호. 나는 전화를 껐다.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껐다.


다시 전화가 왔다.

무음으로 돌렸다. 잠을 청했다. 눈물이 흘렀다.

너는 이기적이다.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편한 시간에는 언제나 그랬듯 마음대로일 뿐.


다음날 자고 있었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며칠 뒤 저녁시간에 전화를 해보았다.

받지 않더니, 문자가 왔다.

일하고 있어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어제 새벽 1시 반, 다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 할말이 있어서 한 전화는 아니냐고 물었다.

할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내일 그 번호를 해지할 것이다.




라라랜드의 결말을 두고 우리는 늘 안타까워했다.

그 둘은 왜 헤어졌을까.

그리고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불길한 일인것처럼 서둘러 얼버무렸다. 우리는 이렇게 위안했다.


'겨울은 걱정하지 말자. 지금 우리는 Spring Summer만 있는 거야.'


우리에게 겨울이 찾아왔다.

우리는 끝났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무수히도 많은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럴때마다 너는 그것을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이제 너는 내게 작별인사를 준비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그냥 쥐고 있으면 뭐하니.

나를 놓아다오.

나를 놓아다오.

좋은 사람이었다고.

좋았다고.

그래도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이 이상은 망치지 말아다오.


라라랜드의 음악이 들려올 때, 대단한 사연 있는 여자처럼, 나 혼자 눈물을 뚝뚝흘리며 살아도 좋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겨울이다.


아야코 할머니는 '휘둘리는 것이 인생이다'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나타났듯이 나쁜일에 휩싸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너를 좋은 일로 기억하고 싶다. 나의 나쁜일이 되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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