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중성화된 고양이, 겨울이

가을같이 맑은 날 쓰는 밤의 일기

by Nima

며칠전, 케이블TV를 이리 저리 돌리다보니, 강형욱선생님 말고 또 수의사 선생님 한 분이 이 집 저 집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맡은 것 같았다. 한참을 채널만 돌리다 지친터라, 별 생각없이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틀어놓았던 TV였는데, 갑자기 묘하게 귀에 꽂히는, 자극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고환이 없었나요?"

"(고환) 없다던데요."

"겨울이 하는 거를 보면, 전형적인 성적 퍼포먼스에요. 겨울이 고환이 있을거예요. 잠복고환이라도."

"잠복고환도 없다고 했어요. 중성화 수술할 때 꼼꼼히 봤거든요."

"중성화 수술하시면서 놓쳤을 가능성 있습니다. 잠복고환이 여전히 방광에 붙어있을 것 같아요. 지금 겨울이는 중성화가 안 된 상태고, 넘치는 에너지를 뽑을 데가 없어서 저러는 거 같거든요."


음.

나는 핸드폰을 놓았다.

겨울이가 누구인가.

도대체 고환이 있다 없다는 문제로 TV를 타는 고양이, 겨울이는 누구인가.

나는 TV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겨울이는 2살된 고양이였는데, 이상한 행동을 일삼기 시작해서 가족들이 TV에 제보한 모양이었다.

그 이상한 행동들이라는 것은 가령, 잠시라도 실내에 들어앉아 있질 못하고, 문 밖에 나가겠다고 하루종일 울거나, 실제 나가면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소변을 갈기기를 5분 간격으로 하거나 (스프레이라고 하던가), 갑자기 잘 지내는 동생(?) 가을이 위에 올라타 목을 물거나, 이상한 소리로 오래도록 울어제끼는 것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위와 같은 행동들을, 중성화 되지 못한 겨울이의 성적 에너지 표출이라고 단정지었다.

소변을 갈기는 것은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며, 묘한 울음소리도 이성에게 어필하는 것이며, 동생 목을 무는 것은 그것이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없을 지경에 이르러 겨울이 자신도 컨트롤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에너지 표출을 해봤자, 이 모든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 분노(?)의 에너지를 격한 마실로 풀기 위해 하루종일 문 앞에서 울었다는 것.


이렇게 때되서 장가를 못간 고양이, 겨울이는 어떤 결론에 이르렀던가.


프로그램 막판이 되자, 그렇게 속 썩이던 노총각 겨울이는 방광 속 숨어있던 잠복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나왔다. 그리고, 몇 달뒤, 얌전해진(?), 힘 제대로 빠진 중성화 고양이로 변신된 겨울이는 그렇게 착한 고양이가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을 남기고 조용히 캣타워에 올라갔다.



개나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의인화 할만큼 애정을 주진 않는 나에게, 남의 집 고양이, 겨울이는 꽤나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일견, 잘된 결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 강제로 중성화되긴 했지만, 어찌보니 겨울이의 제2의인생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어떤 갈증이나, 그 어떤 결핍이나, 그 어떤 허무함, 쓸쓸함, 말 못할 괴로움은 이제 지난 시간의 겨울이에게 오롯이 남기고, 오늘의 겨울이는 얌전히 캣타워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득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게 무슨 수컷냥이의 인생이란 말인가.

뭐가 되든, 예쁜 고양이 처녀 만나 불타는 사랑 한 번 해보고 살아야 사는 것처럼 살다 가는 거 아닌가.


나는 꽤나 오랜시간, 영양가도 없는 고민, 중성화된 고양이의 만족스러운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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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 노인이 되어도 여자였으면 좋겠다.

내게 주어진, 직업인으로서의 모습, 딸로서의 모습, 개인으로서의 모습, 여자로서의 모습들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여자로서의 내 모습을 제일 먼저 고르고 싶다.


한참 사랑할 수 있는, 깊게 사랑받을 수 있는, 여자라는 내 모습이 제일 소중하다.

결혼한 여자로서의 내 모습을 겪기란, 현실성이 점점 희박해지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오랜시간 공들여 얻은, 그나마 안정적인 위치에 있어 보이는 내 직업인으로서의 모습보다도, 실패 투성이에다가, 결핍만 한 가득 있는 여자로서의 내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반강제적으로 중성화과정을 겪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시작한 골프 덕분에, 어릴 적 친구 하나가 모임을 만들었다. 다들 싱글은 아니지만, 그 중에 싱글인 남자 선배도 있는데, 천성이 사교적인 그는 두런 두런 말을 재미있게 붙이는 타입이었다.

오늘, 돌아오는 차에서 그가 내게 물었다.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왜 남자친구가 없?"

"하하하, 관심이 없어서 혼자가 아니에요. 그냥 혼자에요."

"관심이 있어야 계속 연애를 하는 거예요. 뭐 중요? 이상형 말해봐요."


또 다시 시작되는 그 망할 놈의 이상형 묻기.

이상형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게 이상형이 있었던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상형 그런거 없어요."

"이러면 어렵지. 그럼, 조건? 돈? 얼굴? 뭐 ?"


익숙한 오프닝 멘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뭐 안 보고요, 저한테 집중해서 생존체크해주는 걸 원해요."

"생존체크가 뭔데요?"

"그냥, '뭐해?', '퇴근해?','잘자라' 이런 거 물어줄 만큼, 나한테 관심있는 거요."

"하하하하하. 그거 내가 해줄게요. 그럼, 만나줘요?"


그는 농담이었을텐데, 나는 무척 당황했고, 그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돈 받고 할. 공짜 아니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요."라고 둘러댔다.


그가 농담이었든, 돈 받고 싶었다는말이 진담이었든 상관없다. 나는 여즉, 다른 사람이 들어오겠다는 말만 해도, 진심으로 당황한다. 그 일을, 그 과정을, 다시 겪는다는 생각에 짓눌려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자로 살고 싶다고 한다.

나의 이 고집은 합리화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상처받기 무서워 물러서다가 중성화되어 버리진 않을까.




지난 겨울, 내가 그를 모질게 차단하자, 그는 자신도 나를 친구처럼 볼 수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우리가 같이 아는 친구와 모인다는 그에게 나도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건 안됀다고 했다. 나한테 되는 건 뭐냐고 했다. 그러자, 다 된다고 했다. 나는 내 흥에 겨워 그를 차단했다.


그 때,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걔도 아직 자신이 없지, 어떻게 친구처럼 보겠다고, 그 자리에 너를 불러?"

"친구처럼 볼 수 있다며, 이제 여자 아니라며."

"하는 소리지. 너네 일 다 꼬이고, 그걸 감당할 용기는 없고, 그래도 너는 보고 싶고, 너가 그럼 내가 친구냐고 물으니까, 덥썩 그렇다고 말은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나만 이해심이 부족한 여자군."


하지만, 나는 그의 그런 말들에 하나하나 상처받았다. 나는 친구라고 덥썩 불러도 상처받았고, 친구 모임이라 안된다고 해도 상처받았다. 나는 그에게 갈갈이 찢겼다. 나는 그 서운함에 몸부림치다가 중성화되길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받지 말아야 하는 전화가 또 울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 야근하다 돌아가는 길이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전화를 걸수 있는가.
그의 멘탈이 궁금해서 그의 전화를 받아줬다.


"왜?"

"어? 받네."

"왜? 늦게 집에 갈때 나한테 전화하지마."

"아아니, 너가 아까 카톡했잖아."

"오전에? 너한테 대답한거?"

"뭐, 모르겠고. 너 골프친다며? 나도 배우기 시작했어."

"잘 쳐."

"나 ***회사랑 가서 치기로 했다고, 나갈거라고."

"잘 쳐."

"너도 @@@ 이랑 간다며?"

"응."

"우리도 한 번 골프나 치자."


하하하. 정말 무슨 생각이니 너.

나는 잠이 다 깨버렸다.


"내가 너랑 왜?"

"화 좀 내지 마라."

"아니, 내가 왜 너랑 치냐고.게 화 내는 거야?"

"내가 말만하면 비꼬잖아."

"아, 말 더 하기 귀찮아. 그리고, 내가 너랑 골프를 치게 된다면, 그건 우리 신랑이 돈 내준다고 초대할 때겠지? 그 때 오렴."

"신랑? 하하, 내가 코를 납작하게 해 주지."

"공짜라고 올 모양이야?"

"화 좀 내지마라고. 무슨 말을 매번 비꼬냐."

"내가 시집간다니 비꼬는 거 같아?"

"모르겠고."


겸연쩍으면 모르겠다고 하는 버릇.
끊자고 해도 제가 끊어야 끊는 버릇.
아침 출근이 나보다 늦은 그의 새벽 전화는, 내게는 정말 받을 수록 손해인 장사다.

게다가 나는 있지도 않은 신랑에, 가능성도 없는 골프 얘기로 쓸데없고 영양가 없이 이죽거리기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대화인가.


그가 얄밉다.

차단을 풀고 난 뒤, 그가 내게 보이는 모습은 그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데 아주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는 지나치게 편리하게, 어려운 숙제를 회피하고 뛰어넘고 싶어한다.

그래도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제가 뭐라고 해도 내가 받아줄 수 있다는 믿음이나, 모든 것이 안타깝다.


내가 너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흘린 피눈물이 우스워질까봐.

나는 아주 속이 타는데 말이다.


그런 너 덕분에 나는 정말 힘빠진 겨울이처럼 중성화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너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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