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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Feb 20. 2018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요?

사랑이 죄인가요.

자격지심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상사.

당장 병원이 더 시급할 것 같던 그 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들과 어마어마한 나쁜 예의 학습을 남기셨는데, 어느날은 나더러 좋은 포지션(해외연수) 지원해보라고 했다.


열심히 일한 직원에 대한 포상같은 자리였고,

나는 '내가 얼마나 이 회사에 충성스럽게 일해왔는지'를 당선이 가능하도록 열렬히 적었다.


그 분은 그 지원서를 읽고, 제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고두고, 나를 두고 '정치적'이라고 했다.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류라는 둥의 이야기를 꺼낼때, 가끔 그 지원서의 구절을 읊었다.


나는 해외연수 담당자로부터 내 지원서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그것이 일종의 관음증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상사는 늘 내 등뒤에 간이 의자를 펴고, 내 뒤통수를 바라보며 앉아서 일하는 척했다.

나에게 긴장감을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 때 그에게 관음증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끔, 내가 문자를 보내면, 벌떡 일어나서 내 등뒤에 서거나,

내가 이메일을 쓰고 있으면 갑자기 내 어깨에 고개를 대면서 내 마우스를 함께 잡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 상사, 동성의 상사라 이것이 추행이라고 말하기 망설여졌는데,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갑자기 상냥하게 내이름을 부르며 안아주는 척 하다가 귓속말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니가 한 번에 감기다니, 불어 터진줄 알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미저리급의 24시간 지옥 체험이 이어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회사를 사랑했다.


나는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는 그 조직 속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 모진 고문 속에서도 그렇게 버텼다.

그 이유는, 내가 그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좋은데 이유가 없듯이,

그 회사가 좋은데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나는 마치 프시케라도 된냥 이 모든 고난이 지나면, 에로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 같았다.

결론은 결국 에로스를 만나지 못하고야 말았지만.




 소노 아야꼬 할머니의 에세이 중에서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가 기억났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나 조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 이유는 사랑이란, 그 시작과 동시에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회사를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은 점을 예로 드셨다.

구조조정의 광풍이 휘몰아쳐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조직에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는 결혼 생활의 현실감이 내 앞에 닥칠 것이 무서워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들린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믿으시는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팔지 말고 살라고 하셨지만, 회사를 사랑하는 일이 그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신이 회사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그 지옥같은 사람들은, 그저 그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그 조직을 원없이 사랑해도된다.

물론 원없이 미워하며 떠나도 된다.

다만,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서, 회사를, 누군가를 미리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싫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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