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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Feb 25. 2018

오늘도 용감한 척

자기다움을 유지하려면

매번 한달에 한 번 염색을 한다.

커트나 파마는 멀리 있는 샵을 찾아가지만, 염색은 늘 집근처 내게 맞는 집을 찾아간다.염색 작업이라는 게, 대단한 헤어디자이너들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보니, 보통은 돈 챙길 원장님 바로 밑에 있는 선생님이 맡아서 해주고, 원장들은 올 때 갈 때 인사만 해주는 일인지라, 내 담당 선생님이 사람만 좋으면 오래도록 다닌다.


그리고 나는 주말이면 염색을 맡기던 선생님이 있었다.

그 염색용 미용실을 드나들게 된 것은 선생님이 사람이 좋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단, 잘 기억하고,

뭐든 못 챙겨줘서 안달이고,

혹시라도 머릿결이 맘에 안 들면 (주로 나는 개털이긴 한데)

혼자 무슨 에멀전이니 뭐니 챙겨가면서

온갖 애를 다 썼다.

한 1년은 앉아 있는 동안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눈인사나 하고, 핸드폰만 쳐다봤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해야하나.

무엇인가 '열심'으로 마음을 써주는 모습에 마음이 녹아서

사는 얘기도 하고, 들어도 주고...

나름 그 미용실에 가면 나는 늘 선생님과 만족스러웠다.


미용실은 재미있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졌다.

일단, 원장이라는 남자 둘 모두 서른 초반으로 보였고,

다른 시다(?)들이 동네의 까불까불한 학생들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맡은 선생님은 유난히 연배가 있어보여, 원장님들의 친구 혹은 형동생으로 보였다.


'친구들인가?'

가끔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이유에서라면, 한달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그들을 바라볼 뿐인 나에게도 느껴질만큼의 묘한 기류가 있었기 때문에.


가령, 내 선생님이 내 염색 금액, 그러니까 내 수익 담당 원장님을 부를 때, 그 호칭이 아슬아슬했는데,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다가, 부랴부랴 원장님이라고 정정하는 등의 일이 바로  그런 예.


원장님은 손님들이 와글거리는 와중이어서 였는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었지만, 나는 가끔 아슬아슬했었다.


굳이 내가 둘 중의 하나 편을 들 일은 없었지만,

나는 내 담당 선생님이 만족스러워 그 집을 다녔으니

원장님이 무슨 출장을 가든, 휴무이시든,

선생님이 있는 날이면 찾아갔다.


휴무였던 달에 나를 못 만났던 원장님이

'왜 오랜만에 오셨어요?'

라고 말을 건네면

나는 굳이

"지난 달에 휴무날 왔어요. 선생님이 있으니까."

그러기도 했었다.



지난 주,

아무생각 없이 들린 미용실에, 선생님이 없었다.

대신 유난히 나를 반가워하던 원장님은

다른 시다 선생님을 가리키며

"잘 모셔야되" 라고 생색을 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쉬시나보네요?"


갑자기 모두들 쭈볏거렸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그게, 쉬는 게 아니라."

"나갔어요? 어머, 섭섭해."


원장님이 말했다.

"그쵸, 워낙 고객님을 잘 해드렸으니까 그러실만도 합니다. 대신 얘가 더 잘 챙겨드릴거에요."


뭐,  대단한 기술 드는 일 아니고,

새로운 선생님도 이렇게 한 명 한 명 더 해보면서 늘어가겠지만,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는 아쉬움에 말했다.


"선생님이 여기 있어서 손님들도 더 많았을 것인데."

"에. 근데 그렇지도 않았어요."


원장님이 말했다.


"사실,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친구라서 같이 일하는게 너무 어려웠는데... 매번 위아래 없이 굴어서 저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십년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아요."


세상에.

정말 친구였구나.


나는 별 생각 없이 맞춰주려고 말했다.


"그러게, 동년배 같긴 하더라. 비즈니스를 친구끼리 하는 것이 보통 힘든게 아니지. 맘 고생 했겠네요."


그러자, 원장님은 봇물터진듯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했다.


원래 근태가 안 좋다.

원래 위아래가 없다.

원래 개념 없이 요구한다.

원래 잘해줘도 모른다.

원래 지가 원장인 줄 안다.

원래 애저녁에 지 갈 길 가게 뒀어야 되는데, 정착하고 살라고 미용을 배워보라고 했다가 망했다....


나는 문득, 눈물이 나려고 했다.


두 사람의 우정 역사가 비극으로 끝나는 모양이나, 그것과 무관하게, 무지하게 억울하고 슬펐다.


내쫓긴 사람은 그렇게 지는 것이다.

그에게는 기회가 없다.

그는 남은 이들에게 액받이, 욕받이 심심풀이 땅콩이 되어

그렇게 오래도록 세상 천지의 나쁜놈이 될 것이다.


그는 그만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 역시 친구를 사장으로 모시며 일하는 데

쉽고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지만,

무슨 일을 겪었던지

그는 원래 싸가지없어서 나가게 된 사람으로 남아서

오래도록 씹힐 것이다.


나는 내 처지를 보는 것 같았다.

퇴사를 한 지 4달이 지났다.



소노 아야꼬 할머니의 에세이

'자기다움을 유지하려면'의 한 구절은 아래와 같다.


매사 결과는 내 몫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탓을 하지 않는다.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기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점이 발견된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나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나에게만 주어졌다.


나는 문득 또 할머니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탓을 하지 않는 것으로

진짜 자기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빠득빠득 괜찮은 척 하면

그것만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던 내 상처가

아무렇지 않게 아물고

나는 나다움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일까.


내가 부딪힌 그 억울한 일의 결과는 내가 감당할 수 밖에 없겠지만은, 무슨일이 있어도 남탓을 하지 않는다는 내안의 고고함을 피력하면, 내 상처는 누가 어루만져줄까.


선생님의 상처는 누가 들어줄까.

선생님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이야기를 들어줘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일이 없겠지.

선생님은 이미 고등학교 친구를 잃었고,

선생님은 이미 이 직장을 잃었다.

선생님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셔야 하지만,

선생님은 상처받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무슨일이 있어도 원장님 탓을 하면 안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선생님이 자기다움을 유지하는데 온전히 유일한 방법이라고 추천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이 어디 가서 실컷 원장님 욕을 했으면 좋겠다.

나는 선생님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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