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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Feb 19. 2018

고통의 가치

봄이 올 때 까지

애지중지 꽃 피워보겠다고 사들인 '오렌지자스민'나무는 탈모에 괴로워하는 중년 남성처럼 힘들어 하다가 마지막 잎새를 남길 지경에 이르렀다 (오열)


건들리면 우수수, 그야말로 '추풍낙엽'을 시전하시는 저 분 보기가 가엾어서 좋다는 영양제, 이마트 저마트 다니며 물처럼 끼워줬는데... 가망이 없어 보인다. 희망충처럼 몇 안 남은 저 잎을 잡고 '너는 살 수 있어!'라고 하기에는 내 됨됨이가 지나치게 드라이한데... 그래도 안쓰럽고 가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더니, 이내 내 탓 같았다.


그러게 애저녁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던 그 회색 화분에 그냥 받아올걸, 괜히 검은 색 화분으로 바꿔달라고 그래서  뿌리가 다쳤나... 내가 물을 더 자주 줬어야 하나.. (쓰고보니 물은 너무 줘서 죽은 것 같기도)


이 마음은 뭉게뭉게 발전하더니 기어이 내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나는 화분하나 키우지 못하나.

그러게 내가 무슨 물인테리어 인가.

물만 주면 알아서 크는 나무도 알아서 죽어 주는데

내 곁의 남자가 떠날 수 밖에!!


이 생각에 도달하자 크게 놀랐다.

작정하고 고개를 크게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자존감을 높이려면 무작정 내 탓하지 말라더라, 저 것은 너의 탓이 아니다. 저 놈은 애초에 죽을 놈이었다. 오피스텔 구석에서 햇볕도 못 보면 선인장도 죽는다. ...





이 정도 생각으로 발전하자, 다시 소노 아야코 할머니의 책을 뒤적였다. 시비거리를 찾아냈다.


1부 초입에 있는 '고통의 가치'


할머니는, 불행도 우리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재료이나,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불행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일은 피하려 들고, 노력하지 않고도 얻어 내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며, 프로패셔널의 비율이 줄어들고, 아마추어가 급증하고 있다고 개탄하셨다.


현재 나의 고통은 무엇을 위해 참는지 명백하게 이해가 되어야 참아지기 편하다.

불행의 가치는 내가 그 그 지긋지긋한 겨울 같은 불행을 오롯이 잘 극복해냈을 때, 꽃 피는 봄이 온다고 예측이 가능해야 참아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나무가 고통을 참아내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이 나무의 고통은 참아내지 못하면 관상용 나무로서 프로페셔널리즘을 다 보여주지 못한 걸까.


누군가 내게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잔인한 것은 없다.

내가 그 부조리를 모두 눈 감아주고, 오롯이 고통을 감내한 뒤 얻은 것은 '후회'말고는 없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공자님 말씀처럼 허황되고 공허한, 그리고 무책임한 말, '현재의 고통을 참으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길 바란다.


그렇게 참아봤자, 나무는 죽을 수도 있다.

죽으면 아무도 그 나무가 견뎌낸 고통은 위로해줄 수 없다.





p.s 암튼, 오자야(오렌지자스민아...)

봄에 볕에 내 놓아 줄테니 제발 목숨만 부지하고 있어봐... 내가 방생해줄게 ㅠ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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