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델로의 밤과 낮 (1)
공항에서 30분이 걸린다는 곳.
그렇게 가깝다는데도 공항에서 몬델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버스라고 하는 것은 굳이 팔레르모 도심지역까지가는 것, 그거 하나였다.결국 나는 라이언에어 티켓을 결제한 뒤 나타나는 'Do you need a Taxi?' 배너를 클릭했다. 30분에 45유로. 우리돈 5-6만원 정도의 차비. 어쩔 수 없었다. 그 외의 탈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칠리아에서 지하철을 상상하거나, 동네 구석구석까지 가는 버스를 상상하는 것은 사치이다. 일단 도로 자체가 닿지 않는 동네도 있는 마당에, 대중교통의 혜택같은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사람들이 그럭저럭 사는 곳. 여기의 택시, 지금 말하는 택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택시가 아니다.
공항에 내린 나는 강남역의 5번 출구가 소개팅의 메카이던 시절 이야기처럼, 본적도 없는 '시칠리 택시 서비스(Sicily Taxi Service)'라는 회사의 기사를 만나야 했다. 회사의 전화번호와 예약 확인시 화면에 뜬 그냥 승용차같던 그 그림 한장을 들고 Exit으로 나갔다.
Baggage Claim창구의 규모에서도 느꼈지만, 오래되고, 앙증맞은 옛날 김포공항 반토막 같은 느낌은 Exit에 나서자 더욱 짙어졌다. 느낌이 아니라 팩트였다. 이 동네는 정말 공항부터 Old Town임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시간이 멈춰버린 곳 같았다.
Exit에서 가리키는 단 하나의 이정표, Taxi 사인을 보고 나가자 대여섯대의 하얀 택시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다른 택시 승차장은 없었다. 하나뿐인 출구, 하나뿐인 승차장. 자신이 생겼다.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고 'Hello'를 연발하는 기사들 무리가 달려왔다. 나는 내 택시 예약 표를 보여줬다.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시칠리 택시 서비스. 그건 이 줄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그 서비스는 소규모 아날로그 우버(Uber) 사업자같은 서비스였다. 그러니까, 인가받은 택시 자체는 공항 택시 줄에 있던 그나마 하얀 도색을 통일적으로 해 입은 각양각색의 택시 몇대가 전부였다. 실제 시칠리아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물반 택시반 같은 택시 행렬을 보기 어려웠다. 호텔에서 불러주는 택시 모두 차체 외부에 'Taxi'라고 표시된 것이 없었다. 아는 기사, 아는 사람들이 근근히 소소하게 그 지역만 넘나들며 하는 일이 택시 서비스였다.
나를 기다린 택시 역시 외부에서 보면, 그냥 승용차같았다. 내게 안내된 번호 2개중 하나는 본인이 영어를 못하니 다른 번호로 전화하라고 했고, 놀란 마음에 걸게 된 다른 번호는 나더러 Exit 앞에 있는 단 하나의 커피숍 앞에, 내 이름을 들고 서 있는 남자를 찾으라고 했다. 갈아타느라 20시간은 깨 있었던 나는 몽롱한 가운데 007이라도 찍어야할까봐 긴장이 다 되었다. 나는 전화를 끊지 않고, 커피숍 앞으로 걸어갔다. 전화는 내게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대 캠퍼스에서 자주 봄직한, 바짝 마르고 엣된 얼굴의 청년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얇은 A4용지에 내 이름을 적어 펄럭이면서, 전화기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I met her!"
동남아 여행지에서 현지가이드 만나듯, 우리는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물건, A4용지와 검은 드레스를 손으로 가리켜가며, 누가봐도 친구 태우러 온 것 같은, 청년의 경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뉘엇뉘엇 져가는 Sunset을 배경으로 비좁아도 미치게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어요?"
"저는 한국에서왔어요."
"저는 택시를 2년째 하고 있는데, 아시아 사람을 처음 만나요. 반가워요."
"많이들 여행한다던데요."
"그렇다고들 하는데, 저는 처음 봐요. 휴가(Vacation)로 오신거에요?"
"네."
"이탈리아는 처음이에요?"
"아뇨, 두번째요."
"와, 정말 부럽네요. 저도 한국을 두번 갈수 있을까요?"
택시 청년의 이름은 미르꼬. (Mirco)
그는 그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만큼 배운 남자였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그 또래면 인종을 불문하고 볼 수 있는, 영특하고 센스있는 청년이었다. 멀리 가보고 싶지만, 수중에 돈이 없고, 멋있는 일을 해보고 싶지만, 먹고사는데 정신없는. 공부하고 싶지만, 돈을벌어야 하기에 사제 택시회사에서 일을 하는 청년. 그는 여행 가이드도 한다고 했다.
나에게 회사(?) 명함, 명함이라기엔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페이스북 아이디만 적혀있던 Sicily Taxi and Tour 외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까지 남겨주며 열과 성을 다한 미르꼬는, 한 20-30분 드라이브 시켜주는 내내 피곤해도 적극적인 방청객 호응을 보여준 내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인지, 호텔 정문에 다다르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호텔인데, 이제부터는 제가 선물을 드리려고요. 선물을 주고, 다시 여기 내려줄게요."
"선물?"
"네, 이 호텔은 몬델로 비치의 정 중앙에 있어요. 그런데, 몬델로 비치의 시작과 끝은 길지 않아요. 내가 지금부터 드라이브로 보여줄게요. 아주 아름다울거에요."
미르꼬는 그렇게 우회전하더니, 익숙하게 허름한 피자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피자집이 몬델로 비치의 시작이에요. 이제 우측을 보세요."
끽해봤자 2층건물이 이어지던 어떤 모퉁이를 돌자, 오른쪽으로 밤 바다가 나타났다. 드문 드문 듬성 듬성 바닷가에 세워진 가로등을 보니, 저 편이 파도치는 바다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너무 예쁘다!"
"하하, 이 해변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시칠리아 다른 해변을 가도 몬델로가 생각날거에요."
"우와."
"왼쪽에 나타나는 저 카페도 정말 좋아요."
미르코는 신이 났다. 왼편에 나타난 카페며, 레스토랑이며 하나하나 짚어가며 맛이 있네, 분위기가 좋네, 데이트하기 좋네 등등을 읊었다. 나는 계속 물개박수를 치며 돌고래소리를 냈다. 미르꼬도 신이나서 낄낄거렸다.
"저 집에서 해산물을 실컷 드세요. 그리고는 저 광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드세요."
"광장?"
"저 작은 분수 있잖아요. 저기가 광장이에요."
"오늘 밤 일정으로 추천하는 거에요?"
"네! 한밤중에 젤라또 먹으면서 스퀘어에 앉아있는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에요."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했던, 정말이지 마르세이유 어느 한 골목에서 본듯한 작고허름한 분수가 전부인 광장에는 실제 동네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나는 깔깔거리며 박수를 쳤다.
"호텔에 짐만 놓고 나와서 나도 저기 갈래요."
"이제 제 선물도 끝났어요. 광장 여기가 해변의 끝이거든요. 제 선물도 끝났어요. 이제 우린 호텔로 갈거에요."
미르꼬덕분에 나는, 짧은 시간, 길지 않은 그 해변을 신나게 드라이브했다.
작고 아담한 규모의 레스토랑 몇 개가 전부였던 몬델로 비치에 그렇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