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델로의 낮과 밤(2)
영국에서 올 친구의 비행기는 나보다 늦었고, 그녀는 우리 여행의 8할을 차지하는 붕붕이를 렌트해 오기로 했다. 붕붕이를 리스펙트 하는 마음으로 조신하게 방에 앉아 기다리려 하였으나, 눈이 가물 가물 감기는 것이 나는 드러누워 자버릴 것만 같았다. 얼마나 기가 막힐까. 기껏 들어왔더니 자고 있는 친구라니.
나는 나가기로 했다. 20시간을 물구경도 못한 꼴을 사람 답게 위장하기 위해, 해변에서나 눌러 쓸법한 모자를 눌러쓰고, 호텔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때마침 동네 행사가 열린 모양인지 만원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남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래서, 그렇게 밤길을 나섰다.
미르꼬가 태워준 그 몬델로비치의 정중앙에 있는 호텔의 이름은 Mondello Palace Hotel.
실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바닷가가 펼쳐지는 기가막힌 위치였다. 나는 동네 어르신들의 작은 파티가 이어지는 정원을 가로질러, 미르코가 보여주던 그 길로 내달았다.
몬델로 밤 바닷가는 차에서 볼 때 더 설레었던 것 같았다. 작고 한적한 동네 해변가라고 해야하나. 가까이 바라본 해변의 밤은 소박한 시골 어촌 마을의 밤 공기였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닷가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나는 호텔 앞 Palace Terrace 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찰랑거리는 은 수저 마주치는 소리가 나를 미치도록 설레게 했다. 잠깐 둘러보니 그 Terrace는 밤바다가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곡선의 안쪽 정 중앙에 위치한 그 Palace terrace는 양 해변의 불빛을 촛불 삼아, 식사할 수 있었다. 데이트 장소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날 따라, 동네의 차려입은 노부부들이 데이트하느라 바빴다. 식당은 인산인해였다. 밤바다를 걷기 위해 나온 차림들이 아니었다. 나는 다음 집을 찾아 걸었다. 한적하고 소박하고 자그마한 해변. 어느 덧, 한국의 한 블로거가 인생 맛집이라며 극찬했다는 식당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와버렸다.
'까짓거 한 번 먹어나 볼까.'
일단, 나는 앉았다.
밤바다가 보이는 노천 식당.
습기 없는 공기. 살랑거리는 밤 바람.
어딘가 앉았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행복했다.
나는 작정한듯, 해산물 접시만 세개를 시켜버렸다.
돌이켜보았을때는 사실, 그 집이 그렇게 대단한 맛집은 아니었다. 일주일 내내 '이탈리아 백반집'인 이탈리안 레스토랑만 줄창 다니다 질릴 지경이 되었을 때, 냉정을 되찾아 돌이켜본 맛집의 랭킹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시칠리아는 모든 시가지가 해변을 끼고 발달한 덕분에, 모든 퀴진이 해산물 원재료가 원체 좋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쉐프의 기술일텐데, 이 집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기술은 없다. 왜 그렇게 블로그마다 칭찬이 자자했을가 생각해보면, 모두가 들르는 팔레르모에서, 모두가 만날 법한 한국인 B&B에서 추천했기에 그런 것 같다. 이 식당 주인은 그 한국분에게 정말 명예 주방장 상이라도 줘야한다.
혼자 마시는 맥주가 똑떨어질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는 친구의 메세지에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1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숨도 채 고르기 전에 '맛집을 알아뒀으니 뭐든 먹어라' 부추겼다. 친구는 일단 '한밤중의 아이스크림'에 꽂혀줬다.
두런 두런 매번 메신저로나 이야기하던 얘기들이지만, 히히덕 거리며 아까 그 길을 걸었다. 아까 보다 좋았다. 둘이라 더 좋았다. 나이가 들어 혼자 여행을 다닌다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 나는 혼자는 외로워서 자신이 없다. 주말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오피스텔에 쳐박혀 있는 주제에, 여행지에서 혼자 버티는 것은 정말이지 고독해서 힘들었다. 친구에게 시칠리아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건 같이 가자는 말이었지만, 꽤나 고민했다. 혼자가고 싶을까봐. 다행히 친구는 시칠리아에 관심이 생겼다. 5달 넘게 말만 오가던 시칠리아에 여자 둘이 히히덕 거리며 해변을 걸었다. 나는 무지하게 행복했다. 다만, 레스토랑들이 자꾸 문을 닫고 있었다. 자정넘어까지 영업한다던 미르꼬의 말은, 주말에나 유효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일단,닫기전에 저 젤라또 가게에 가자."
우리는 그렇게 일단 저지른 젤라또를 들고 문 닫은 레스토랑들을 지나 결국 닿게 될 수밖에 없는 광장의 벤치에 앉았다. 어딜 가나 익숙한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 과년한 두 여자와 동네 커플 둘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4시간이 넘도록 공항 근처를 배회하던 내 휴가가 시작되긴 한 모양이었다.
"결국 좋은 소식은 없어?"
"그렇지, 뭐. 이렇게 살다 갈까봐 무섭다."
"걔 말고 다른 남자 또 있어. 우리 이렇게 죽지 않아."
초등학생때 만나 이 시절까지 만나며 사는 동안, 우리는 정말 오래도록 여러 단계를 거쳐 시달려왔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의 단계를 지나지 못한 채, 결국 신랑 손 잡고 오질 못하고 둘이 앉아 있는 것이 눈물나도록 안쓰러웠지만, 이 세상 누군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고비마다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다 아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안심이 되었다.
"내일은 조식 먹고, 호텔 수영장 갔다가, 해변을 가거나, 일단 가깝다니 팔레르모 시내에 들려서 커피나 마시거나 해볼까."
"그래, 해변은 Private Beach 입장료가 오후 2시면 좀 싸니까, 시내 먼저 들러 놀지 뭐."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날을 기약했다. 그렇지만, 시칠리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식을 먹는 중, 우리와 비슷한 계획의 노부부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이미 수영복을 입고 비치타월을 두른채, 어제 봐둔 수영장으로 총총 걸어가셨고, 할아버지는 반바지에 온갖 짐을 어깨에 맨 채, 할머니를 호위하고 걸었다. 우리도 먹던 요거트를 다 내려놓으며 수영장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수영장은 여전히 쇠사슬로 감겨있었다. 9시 반에나 연다고 했다. 우리가 조식을 먹던시간은 9시가 조금 덜 된 시간. 그러니까,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이미 수영장 같은 건 열어줬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뭐야, 이래서 할머니가 다시 가셨구나."
"어떻게, 기다려?"
"음."
일단 마음 먹은 수영인데,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찔러야지.
나는 길만 건너면 있던 그 해변으로 바로 가자고 했다. 그 때까지는 그냥 홧김이었다. 코딱지 만한 자큐지 같은 수영장이 9시 반까지 닫혀있을 것이라는 배신감에 그냥 문을 나서자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거 실화냐?"
그림같은 바닷가.
파도없이 잔잔한 바다는 그야말로 터키석 그 자체였다. 옅은 파란 보석같던 바다 뒤에는 화산 섬 답게 아름다운 산자락이 퍼져있고, 바닷가를 빙 둘러서 예쁜 해변은 모두 나즈막한 건물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었다. 눈에 띄게 도드라진 거만한 고층빌딩도 없었고, 그저 돈이나 벌겠다고, 주변 분위기 상관 없이 이기적으로 빽빽하게 만든 리조트같은 것도 없었다. 정말 딱. 있어야 할 것들만 있는 바닷가.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고기가 있어!"
깨끗한 모래위, 잔잔한 바닷물은 결국 물고기가 기슭까지 겁없이 올라올 수 있게 했다.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의 끝은, 정말이지 이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여기가 천국이니까.
몬델로 비치의 낮은, 지상 천국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