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강의 교통 지옥 팔레르모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정말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아름다운 몬델로 비치. 그곳을 뒤에 두고 돌아나오면서, 우리는 정말 골백번은 뒤를 돌아봤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우면 이별인 것이 인생사니까, 11시 체크아웃을 칼같이 지킨 우리는 붕붕이를 타고 갈 길을 재촉해야 했다.
우리가 오늘 밤 도착할 곳은 산 비토 로 카포 (San Vito Lo capo)라는 곳이었다. 몬델로에서 해변을 따라 1시간 반 가면 나타난다는 이 곳에서 도착하자마자 또 해변 앞 호텔에서 잘 예정이었다. 계획은 꼭 'beach holiday'그 자체였다. 11시반 체크아웃해서 한시간 반 달린 다음, 거기 해변에서 또 선탠과 물놀이를 즐기자는 것. 여유가 흐르고 낭만이 흐르는 계획 그 자체였다. 우리는 시간이 남아돌아 시간 부자가 된만큼, 낮에는 괜찮은 점심이나 먹으며,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서 노닐다가 갈 길을 떠날까 싶었다. 격무에 시달리던 두 여자는, 느려터진 LTE 데이터를 긁어가며 그제야 팔레르모라는 이 도시에 대해서 초치기 검색을 더하여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마침, 맘에 드는 목적지를 금방 찾았다.
"1850년도부터 커피 파는 걸로 유명한 곳이 있대."
"커피랑 달달한 카놀리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 안에 치즈를 인심좋게 넣은 튀긴 과자, 안 맛있을 수가 없는 구성이다) 라, 좋네. 이탈리아, 아니 시칠리아 같네.먹고 여유있게 출발할까?"
"오예!"
커피집은 팔레르모의 가장 중심에 있다는 마씨모 극장(Theatre di Massimo) 근처라고 했다. 우리는 마씨모 극장을 도착지로 놓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날씨 조오타!"
"어어어, 아저씨 매너가 없구만."
"야, 저아저씨도 매너를 못 지켜. 이거 차선이 어디냐?"
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욕과 질문이 따라나왔다. 어딜가나 내 눈을 의심할만큼 아름다운 돌 산이 배경으로 깔리지만, 현실은 차선이 보이지 않는 2차선으로 훅훅 끼어들어오는 시칠리 드라이버들 덕에 등줄기에 땀이흘렀다. 도로 포장의 연식을 알 수없는 좁고 낡은 2차선 도로들. 골목 골목 튀어 나오는 오래된 경차들. 이탈리아가 알파로메오 (Alpha Romeo)와 마세라티의 고향이라고 하더니, 그들은 모두 외지로 떠난 것인가. 눈에 보이는 건 주로 작고 낡은 피아트500c였다.
"저 차는 언제 뽑은걸까."
누가봐도 검은 연기 뿜느라 바쁜 엉덩이를 보니, 적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피아트가 질주했다. 하나 사면 오래 쓰는 유럽인들의 경향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그것때문만은 아닌 것같닸다. 눈에 도드라지게 낡아빠진 도로 꼴이나, 그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의 모습은 경제의 중심지라는 팔레르모 한 가운데를 지나는 내내 시칠리아의 살림살이가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했다.
시칠리아.
가리발리 장군이 남북통일을 하기 전에는 동네 사람 모두 양장점에서 옷을 해 입고 오페라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는 낭만있던 남쪽 섬.
그런데, 그 낭만은 정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것이라고 한다.
통일 이탈리아는 경제력을 북부에 집중했고, 그 덕에 북부의 중심 밀라노는 패션의 중심지인 동시에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돈이 돌아야 생활이 되고, 생활이 되야 사람이 돈다. 돈이 안 돌면, 생활이 어렵고, 생활이 어려우면, 사람이 떠난다. 이 간단한 순리에 따라, 시칠리아는, 이 아름다운 남쪽나라는,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줄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아저씨의 팽팽한 어린 시절이 그림같이 담긴 '대부'를 기억하는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타던, 가난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이 남쪽나라, 시칠리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시칠리아가 그덕을 보는 것이 있다면, 기념품 가게에 잠깐씩 등장하는 말론 브란도 마그네틱 제품이 전부이지만.
경제가 죽으면, 살림이 팍팍해지만, 돈을 쥐고 흔드는 무리의 수는 줄고, 그 무리에 기생하는 빨대가 더 도드라진다. 아마, 그 빨대로 대변되는 것이 마피아가 아닐까 한다.
내가 시칠리아를 간다고 했을 때, 99%의 사람들은 처음에 이 말을 뱉었다.
"거기 마피아 있대, 조심해."
시칠리아에 고작 1주일 있어본 나로서 이 말에 대하여 강경한 톤으로 반대하는 것이 다소 걱정은 되지만, 나는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피아는 우리 다니는 시간엔 없는 것 같아. 다만, 차 조심해."
생각해보면, 서울 한 복판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보호비를 뜯는 치들은 마피아가 아닌가.
서울도 마피아가 있다.
서울도 위험하다.
서울도 가지마라.
이런 말을 늘어 놓으면 다들 웃을 것이다. 그런데, 시칠리아가 딱 그렇다.
여행하는 내내 현지 사람들에게 '여긴 밤에도 안전한가'를 누차 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네, 총 쏘고, 납치하는 사람은 없는 동네에요. 다만, 아주 한 밤중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으슥한 골목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서울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나저나, 팔레르모 초입길에 다다르자, 운전을 맡았던 친구는 정말 울상이었다. 정말이지
카트 라이더 실사판, 모든 차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우회전을 하고, 모든 차들이 반대편에서 미친듯이 달려왔다. 그러다가, 퇴근길 포스코 사거리처럼, 교통 체증이 시작되었다.
"그 커피 안 마셔도 된다. 우리 어디든 차를 대자."
"그래? 그럼 그냥 산 비토 로카포로 바로 갈걸, 꼭 가야하는 커피숍인줄 알았네."
"아냐,그냥 시간이 남아 추천한거야. 그냥 차를 대고 어디서 물이나 사서 고속도로 타자."
주차장을 찾았다. 다행히 마씨모 극장 근처에 지하 주차장이 있었다. 우리는 정말 녹초가 되어 주차장에서 기어나왔다. 도대체 이 동네가 뭐라고 정오 무렵에 만난 서울 뺨치는 교통지옥은 우리를 완전 넉다운 시켰다. 나는 refresh할만한 쥬스라도 하나 드라이버에게 찾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지하 주차장을 나오자마자 카페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길을 건너자 건물 사이로 노천 카페같은 것들이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계획없이 걸었다. 그런데, 그 거리는, 여행 가이드가 돈 받고 투어 시켜준다는, 팔레르모 올드 마켓이었다.
"뭐야, 시장이네?"
"이거 돈 받고 투어 하는 데잖아. 우리 지중해 과일 사고 그라니따 사 먹자!"
"그래, 그래!"
초입에 깔려있는 과일 무더기를 보니, 이미 비타민이 혈관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싱싱하고 질 좋은 지중해 과일, 와인 재료라며, 한 송이에 만 3천원을 훌쩍 넘던 백포도는 2유로에 한 바구니를 준다고 했다. 나는 정말 주부 빙의라도 한 모양으로 손뼉까지 치면서 가격표를 가리켰다.
"저 레몬이 전부다 1유로야."
"저거 시지않을까?"
"석류도 2유로야."
"야, 석류가 지중해에서 나는구나."
"그래, 이란산 수입되잖아."
"어, 저기 그라니따(얼음을 갈아서 과일착즙쥬스를 뿌려주는 이탈리안 리프레쉬 음료)로 석류랑 레몬 다 있다."
"오예, 사먹자!"
우리는 지금까지 녹초가 된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을 펄펄내며 시장을 휘젛었다. 어느 나라나 시장 둘러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소박한 시칠리아 시장은 정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작은 가판 가득채운 신선한 과일, 해변에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싱싱한 해산물들, 그리고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튀김 요리 가득한 시장의 골목 식당.
완전히 시칠리아 속살을 다 보여주면서도 부르는 가격 모두 서울 이마트 반값도 안되는 후한 인심.
우리는 양손에 과일 바구니와 거대한 물 2병을 짊어지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이제는 정말 산 비토 로 카포로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