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물싸대기 후려치는 아름다운 해변

지중해성 허리케인이 온다는 9월말의 시칠리아

by Nima

시골 마을 중에서도 두메 산골에 가까운 이 곳.

전지전능하신 구글 맵 덕분에 해변 바로 코앞의 위치라는 소식을 확인, 무조건 예약한 이 곳은 모두가 'no ingles (영어 못 해요.)'를 외치는 순박한 이탈리아 시골 사람들 뿐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이른바 '이탈리아 식자재 페어'라는 행사가 이 마을에서 개최되는 바람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작은 도로는 미어터졌다.


"도대체 어느 골목으로 가란 말인가."


손바닥 만한 동네 이곳 저곳 진입 금지 바리케이트가 있었다.그렇게 먼 길을 달려 왔건만 엎어지면 코 닿을 호텔까지 무던히도 빙빙 돌았다.그래도 우리는 지치지 않았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로 했다.


뭔가, 몬델로와는 확연히 다른, 강릉이나 속초 같은 친근한 해변가가 아드레날린을 샘솟게 했다.


"이히히, 맨 앞자리다!"


호텔마다 몇 개의 파라솔을 놓을 만한 구역을 찜 해놓고, 투숙객에게 파라솔 대여비를 받는다. 우리는 오후에 도착했다며, 맨 앞자리임에도 불구하고, 3유로 정도 디스카운트 받았다. 그래도 머리당 20유로씩은 냈다. 나름 비싼 선 배드였다.


내 뒷자리 선 배드들은 몽땅 비었다. 빈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거늘.

우리가 달려가자, 옆 자리의 노 부부들이 살짝 움직였다. 할머니는 화려한 비키니만 입고 여유롭게 누워 계셨다. 선탠을 하시던 중이었는지 잠시 일어나 선크림을 좀 더 바르셨다. 할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누워 있었다. 친구는 책을 꺼냈다.


"Beach Holiday를 하겠다. 놀고 싶으면 놀고 오라."

"그래, 나는 물에서 놀겠어."


나는 눈 오는 날의 강아지마냥 미친듯이 뛰었다. 오전에 잠시 들린 몬델로비치만큼 영롱한 비취색 해변. 그 해변도 그렇게 천국 같을 줄로만 알았다. 같은 섬, 시차도 없는 곳 이기에.


하지만, 시칠리아 해변을 만만하게 본 죄로 나는 정말 강렬한 물싸대기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평안해 보이는 모습은 웬 말, 바다에 발을 담그자 마자, 정말이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내게 달려들었다.


"하하하하하하."


개구리 소년 노래라도 불러야 하나.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 여러번 반복하던 나는 결국, 동네 꼬마들하고 같은 줄에 서서, 파도가 오면 뛰어 넘는 시늉이나 하며 오래도록 놀았다. 내 인생 통 틀어 운동량이 제일 많았던 순간이었다.


정말 아쉬웠던 것은, 내가 그 이억 만리 짊어지고 간, 튜브였다. 몬델로에서는 시간에 쫓기다가 제대로 바람을 넣지도 못했지만 별 아쉬움이 없었다. 천사들이 헤엄칠 것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는 굳이 튜브가 필요없었다. 배영을 하며 가만히 노닐어도, 호텔 수영장에라도 있는 것처럼, 잔 파도 하나 없이 가만히 물 소리만 들려오던 그 곳.


그런데, 여기는 와이키키 해변 저리 가라였다. 진심으로 강력한 파도는 굳이 비구름 좀 다가와줘서 그 날에만 있었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지형상 몬델로와 산 비토 로 카포는 좀 달랐다. 로 카포의 경우, '곶'이라고 해야하나,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이고, 몬델로는 '만'이라고 해야하나, 움푹하게 들어간 곳이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지리학 상식을 쥐어짜내며 그렇게 private sun bed time을 즐겼다. 먹구름은 다가왔지만, 여전히 따뜻한 바람에 선 베드는 신선 놀음이었다. 현지인들은 모두 식자재 페어에서 공짜 음식 먹느라 신나있었건만, 외지인 여럿만 남아 지킨 산 비토 로 카포의 해변도 꽤나 멋있었다.

정말 한적했던 산 비토 로 카포의 동네 해변

시칠리아는 화산섬이라고 한다. 여전히 살아있는 에트나 화산의 경우, 팔레르모보다 남쪽, 카타니아 쪽에 있다. 시칠리아를 크게 남과 북으로 나누었을 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북쪽이다. 북쪽의 주도, 팔레르모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온 첫번째 행선지, 산 비토 로 카포.

오는 길에도 동네 사람들로 바글댄다는 해변이 두 어개 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꼭 오고자 했던 것은, 돌 많은 시칠리아의 멋을 한 방에 보여주는 해변의 왼쪽 산 때문이었다. 어딜가나 산 비토 로 카포의 지명과 함께 등장하는 이 곳의 상징. 실제 눈으로 보니 꽤나 절경이었다.


산 비토 로 카포의 마스코드 산


사실, 산이면 산인데 해변 바로 앞 까지 산이 있었던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바다인데, 산이 있고, 산 인데 바다가 있는, 드라마틱한 시칠리아의 경치는 오래도록 잊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저렇게 낮게 깔린 먹구름에도 불구하고, 다들 물 속에 뛰어 들어 노닐어도 크게 걱정없는 야트막한 바다도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집에 가라고 다가오는 먹구름들
강릉이나 해운대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는 파라솔들. 음료 광고가 찍혀있지 않은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리고 고퀄리티의 선베드, 이중 차양으로 어떤 각도로 누워도 그늘진다.
그나마 착한 구름이 몰려오던 순간

친구도 독서를 접을 준비를 했다. 사실 우리는 출출할 타이밍이었다. 둘 다, 호텔에 들어가 씻은 다음, 느즈막히 Dinner out을 하자고 했다. 물론, 여자 둘이 씻고 꾸미다 보니 점점 과해져서, 저녁을 먹으러 나오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나마 햇살이 뜨겁던 순가의 내 발. 진짜 격하게 파도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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