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태양은 아득히, 바람은 가득히

트라파니(Trapani)에 부치는 ‘태양은 가득히’ 타령

by Nima



산 비토 로 카포의 밤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우리는 새벽 6시반에 맞춰둔 알람을 듣고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해안선을 따라 달려가겠지만, 그냥 해변에서 선탠이나 하며 누워 있으려고 이 부지런을 떠는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작은 보트를 빌려, 파비냐냐 (Favinana)섬으로 섬 보트 투어를 갈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배는 9시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다음 배는 없다. 보트 투어는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하루를 꼬박 섬 투어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전 8시 반까지는 트라파니(Trapani)의 항구에 도착해야 했다.

트라파니에서의 보트 투어는 내가 시칠리아 여행을 하고 싶었던 두 번째로 중요한 ‘도장깨기’ 목표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골프 투어가 열린 리조트에 놀러 가보는 것이었는데, 그건 주제 파악상 자체적으로 다음 생으로 미루어두었으니, 사실상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보아도 된다.)


“No Breakfast?(아침 안 먹고 가니?)”

명색은 24시간 열려있다는 리셉션이었지만, 누가 봐도 잠이 덜 깬 것 같은 아저씨, 아줌마가 우리에게 정녕 조식은 안 먹고 가는 게 맞냐고 물었다. 조식은 8시. 호텔의 조식 치고는 정말 느긋한 시간에 시작하는 그 조식을 먹고는 도저히 보트 투어를 갈 방도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잘 있으라 외쳤다. 길가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휴양지의 아침 7시. 선선한 바닷바람에 아쉬움을 담아 보내며, 우리는 포함된 조식, 멋지게 포기한 채, 다시 붕붕이에 올라탔다.


서서히 동이 트던 새벽 6시 50분... 그러니까 아침...

“하아, 비치홀리데이 인 줄 알았는데, 정말 빡세구나.”

“미안하다. 탐욕에 눈이 멀어 좋다는 곳을 다 구겨 넣다 보니 일정이 지옥이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가보자, 근데 오늘 비 올 수도 있다는데.”

“비 안 와! 내가 왔는데, 비 안 와!”

“강수확률은 높진 않았어.”


홍삼빨 끌어올린 드라이버, 드라이한 내 친구는 적막을 가르며 산길을 달렸다. 나는 비가 올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근자감 같은 거였다. 당연히 날씨는 좋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 하루, ‘태양은 가득히(혹은 ’미스터 리플리’)에서 본 것마냥, 보트 뱃머리에 누워 멋쟁이들 사이에서 선탠도 하고, 좋은 스팟에 배를 띄워놓고는 바다에서 스노클링도 하다가 샴페인과 함께 준다는 선상 파스타를 음미하다 돌아올 생각을 하니, 그저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돌 산을 가로질러, 또다시 비포장도로 같은 그 험한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는 내내, 바닷가에는 하얀 구름 떼가 몰려 있었지만, 나는 그 구름 떼가 대수롭지 않았다. 눈 감아도 다시 생각날 것 같던 소박한 골목의 저녁을 놓고 나오며, 용감한 척 가보지 못한 길을 나서는 자체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날씨 좋아서 떠 있는 줄 알았던 구름떼

산 비토 로 카포를 선택했던 것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해변 때문이었고, 그래서 일말의 고민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행선지를 고를 때에는 엄청나게 고민했다. 시칠리아의 서편에는 정말 들를 곳이 즐비했고 서편의 북쪽에는 '마르살라'와 '트라파니'가 있었다.
‘마르살라’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할까, '트라파니'에서 배를 탈까.

전체의 일정을 고려할 때, 마지막까지 50:50이었던 이 두 가지 옵션 중, 트라파니를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 그나마 산 비토 로 카포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산 비토 로 카포에서 트라파니까지 구글맵으로 1시간 정도 나왔다. 아침에 달려가기 좋아보였다. 그런 식이었다.


지금 보니 더더욱 가관인 구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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