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종로구민이 되기까지
서울 복잡한 도심 속에서 옛 정서가 살아 숨 쉬는 곳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종로가 떠오를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조선왕조가 한양에 뿌리를 내린 후 600여 년 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지 키고 있는 이곳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등 역사적인 장소와 인왕산, 북악산 같은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있어 한국 고유의 색을 간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진 종로는 현대 속에 역사가 숨 쉬는 공간으로,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서울로 취업하기 전에도 서울에 올 때마다 종로에 꼭 들리곤 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니 그 속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점차 커져갔다. 결국 이곳에 살고 싶다는 꿈을 자연스럽게 품었고, 나중에 일자리를 찾아 보금자리를 찾게 될 때도 가장 먼저 고려한 지역도 종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지역이라는 것도 이유였지만, 들어가고 싶은 회사들이 대부분 종로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정말 운이 좋게, 종각에 위치한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덕분에 나는 내가 바라던 종로구민이 되었다.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나날들 속 에서도 쉬는 날마다 종로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일은 외로운 타지 생활 속 작은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를 사로잡은 동네는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이었다. 처음 서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덕분이었다. 영화에 담긴 담백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찾아 촬영지를 직접 가보기도 하였다. 여러 곳을 가보았지만, 그중에 나의 발길이 자주 멈춘 곳은 사직동의 인도식 밀크티 가게였다. 애정 어린 손때가 묻어 있는 작은 공간에 짜이 한 잔을 마시면 잠시나마 이국적인 정취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곳곳에 적혀 있는 티벳 속담이 가슴에 와닿기도 하였다. 이런 순간이 주는 깊은 여운 덕분에 종로는 내게 ‘일상 속 작은 여행지’가 되어 주곤 했다.
서촌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수성동 계곡 또한 그러한 장소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반했던 절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자연의 신비로움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계곡 근처 정자에 앉아 있노라면 마치 조선시대 한량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게 된다. 도심 가까이에 이런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공간이다.
이와 함께 장소로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청계천이다. 청계천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과 현대적인 고층 빌딩 풍경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 시청에서 시작해 종각과 종로3가, 광장시장, 동대문에 이르기까지 서울 주요 중심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마치 동맥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보신각이 있는 종각에서는 매년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5월이면 만날 수 있는 조계사의 연등 행렬은 거리 곳곳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종각을 벗어나 종로 3가로 가면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된 탑골 공원과 한국적인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인사동이 종로가 품은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길을 지나가다 보면 언제나 활기찬 광장시장이 등장한다. 마약김밥, 녹두전, 육회 등 시장을 가득 채운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청계천을 따라 걷다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이다.
허기를 채우고 걷던 길을 계속 따라 가면 패션의 중심지 동대문이 나타난다. 특히 밤과 낮의 모습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곳으 로 패션 타운, 도매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지만, 밤에 동대문은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바쁘게 다니는 상인들로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길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과 DDP의 조명이 어우러진 야경이 아름답다. 동대문을 지나 동묘로 향하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난다. 동묘 시장은 특히 구제 시장이 유명한 곳으로, 다양한 중고 의류와 소품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메라, 그릇, 책, 조각품까지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한 번 더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곳이다.
청계천은 단순히 산책로가 아니라 종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길 그 자체이다. 종로의 역사 와 문화, 다양한 삶의 모습에 나도 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것들이 이곳이 나에게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종로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계절마다 풍경이 바뀌고, 새로운 얼굴의 사람들이 늘 오가는 종로지만 그 속 에 고유한 정취는 언제나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풍경 속에 오롯하게 녹아드는 지금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