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 걸까?
삶의 의미가 뭘까?
살아야 할 이유가 뭘까?
이런 고민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때가 있었다.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가는 자의 마지막 잎새 같은 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춘기 시절에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런 고민들로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핸드폰 연락처에는 '내 삶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나의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삶의 이유, 방향, 목적을 모두 잃었다.
할머니와의 사별에 우울증까지 더해진 나는 무너졌다.
무너진 삶의 잔해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해 있던 어느 날,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삶의 이유나 목적이 없다면 생을 마감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답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할머니라는 큰 존재가 떠난 뒤, 내가 어떠한 이유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함 때문에 계속해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걸까?'
이 질문을 곱씹었다.
그럴수록 더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었다.
한평생 고생만 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를 모시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꽃구경도 가고, 바람도 쐬러 가고.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돈을 열심히 벌었다. 할머니 속 썩이지 않게 착한 손녀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젠 할머니가 없다. 내가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효도하고 싶었던 대상이 사라졌다.
내 인생의 나침반은 늘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침반 바늘이 부러져 나침반 안에서 굴러다녔다.
마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잃고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룻배 같았다.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집어 먹힌 나는 깜깜한 날들을 보냈다.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계속 잠만 잤다. 눈을 떠도 나는 침대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이따금씩 허기가 몰려오면 레토르트를 데워 먹었다.
그렇게 연명하던 내가 지금은 밖에도 나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웃고 떠들며 산다.
'나는 왜 살까?'라는 질문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오랜 기간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고민했던 나는 한 가지 깨우친 점이 있다.
건강한 사람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봉착하는 날이 또 올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오면 그냥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갈 거다.
발이 닿는 카페에 가서 달달한 크림 라떼도 사 먹고, 작은 조각 케이크도 하나 사 먹어야겠다.
달달한 디저트에 기분이 좋아진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걸 거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치킨 포장해 갈까?라고 물어볼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반동안 집 주변을 돌고 돌며 수다를 떨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갈 거다.
뭐 사는 게 별거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인생이지.
인생 뭐 있어?
커버이미지: Designed by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