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냉장고

by 니모

아빠의 냉장고엔 몇 달이 되어가는 도라지무침이 있었다.

남편과 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도라지로 남편이 무친 도라지 무침이었다.


아빠는 오이가 들어간 도라지 무침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과 시장을 돌며 오이를 사고, 표백이 되지 않은 도라지를 찾아 헤맸었다.

그렇게 만든 도라지 무침이었는데... 아빠 냉장고에서 미라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번에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드린 소불고기와 부채살은 또 언제쯤 드시려나 싶었다.



오늘 안부차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빠와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막상 전화를 해도 할 말이 없다.

늘 똑같은 이야기다.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도 역시나 똑같은 패턴의 안부를 묻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은 소고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

아빠는 냉동실에 얼려둔 고기는 커녕 신선할 때 드시라고 냉장고에 넣어 둔 고기도 아직 안 드셨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속상하고 화가 났다.


이번에 한 솥 끓여드리고 온 미역국은 드시긴 했을까?

잘 챙겨드시지도 않을 거면서 코스트코 고기 얘기는 왜 하신 건지...



아빠는 뇌경색을 앓았다. 우울증도 겪고 있다.


원래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한차례 앓고 난 후의 아빠는 어린애가 되었다.

툭하면 삐지고, 화도 잘 내고, 이상한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아빠가 아파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우울증 때문에 밥을 챙겨 먹는 게 쉽지 않아서 못 드셨을 거라 이해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빠가 밉다.


어릴 때 좀 더 따듯하게 나를 안아줬으면 지금 내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으려나?

나랑 같이 시간도 많이 보내고, 추억도 많이 쌓아두었으면 지금 내가 아빠를 조금 더 잘 이해했으려나?


아빠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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