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가 열심히 키를 키워댔다.
하늘에 닿고 싶었던 건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고 싶었던건지
길게길게 하늘로 솟았다.
그러던 어느날, 다육이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식물은 빛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위기감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빛을 더 보기 위해 빨리 키를 키운다.
줄기가 튼튼해지도록 세포 분열을 하며 성장해야 하지만,
불안해진 마음은 튼튼해지는 것 대신 길어지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 덕에 키는 쑥쑥 커진다.
하지만 연하고 물렁해진 식물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거나 부러지고 만다.
겉만 컸지, 속은 텅 비었기때문이다.
우리집 다육이처럼 나도 튼튼해지는 대신 높이높이 키를 키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 속이 빈 나는 픽 쓰러졌다.
어릴적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던 나는
휴학 한 번 없이, 졸업도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동기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따돌림으로 외로운 시기를 보냈던 나는
여러 활동들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쉴새없이 연애를 했다.
그러면 나는 내 컴플렉스를 다 채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난이라는 단어에서 멀어졌고,
주변엔 사람들이 많았으니깐.
그럼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키를 키웠으니 나는 남들보다 성공했다고 착각했다.
내가 공황으로 쓰러지기 전까진.
그동안 나는 속이 빈 껍데기였다.
남들보다 태양에 더 가깝게 다가가면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언제 행복한지도 모른 채 남들이 성공이라 일컫는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려갔다.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나는 내가 잘 자라고 있는 줄 알았다.
또래보다 더 빨리 승진했고, 더 많은 연봉을 받았다. 자기개발도 하면서 갓생을 산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날 갑자기 맥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알았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웃자람이었음을.
쓰러지고 나서야 알았다.
한 번 쓰러지고 나니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웃자란 다육이의 줄기를 정리해주듯 나도 삶을 가지치기했다.
나를 단단하게 채우는데 집중했다.
웃자랐던 나는 그동안 이뤘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다시 짜리몽땅한 볼품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죽을만큼 싫었지만, 살기 위해선 받아드려야 했다.
이 키 작은 위치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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