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저마다의 때에 저마다의 모습으로 핀다: 개화시기

by 니모

꽃이라고 하면 추운 겨울을 지나고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올 때 피는 봄 꽃을 떠올린다.


흐드러지게 피어 흩날리는 벚꽃도

귀여운 노란 개나리꽃도

탐스럽게 핀 목련도.


모두 봄에 피는 꽃이다.



분명 뜨거운 햇살 아래 피는 여름 꽃도 있고,

선선한 가을에 피는 가을 꽃도 있고,

삭막하고 고요한 겨울에 피는 겨울 꽃도 있다.

꽃은 저마다의 개화시기가 있다.



그런데 나는 모든 꽃은 봄에 핀다고 무식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봄이 되었는데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를 닥달했다.



서른이 넘으면 회사에서 멋진 커리어를 쌓고, 승진도 여러번 하고,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돈도 많이 벌어서 나를 위한 백 하나 정도는 사고,

관리잘한 외모에 스타일리시함정도는 갖추고 있을 줄 알았다.


서른이 넘으면 나도 남들처럼 인생을 꽃피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앞자리가 3으로 바뀐 나는 한해 한해 거듭해도 꽃은 커녕 새싹도 틔워내질 못했다.

아니, 혼자만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버텨내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주변에는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나만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게 창피했다.

그래서 나의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숨어도 보고, 가지 위에 가짜 꽃을 걸어보기도 했다.


남들과 비교할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그럴수록 내가 더 미워졌다.

그러다 결국 나는 병에 걸렸다.



나의 병은 나를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터널로 던져버렸다.

그 속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한줄기 빛을 찾았다.


모두에게는 모두의 때가 있다는 것.

각자는 각자의 모습으로 피어난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이 나를 어둠 속에서 건져올렸다.



내 안에 중심을 두지 않고, 자꾸 밖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내가 지금 싹을 틔울 때 인지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마디를 올리는 것을 보며 조급해했다.

다른 사람이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초조해했다.


하지만 나와 마주하면서부터는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씨앗인지, 나는 언제 싹을 틔우는지, 나는 어떤 꽃을 피우는지.


그러면서 불안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도 조금씩 옅어졌다.



지금 이 시기는 내 시기가 아니란 것을 받아들인 후 부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내일을 위해 에너지를 모아두는 때.

고개를 빼꼼 내놓으며 새싹을 내는 때.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우는 때.

낙엽을 떨구며 겨울을 대비하는 때.


그 때는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기별 이상적인 모습은 망상이다.

애초에 그런건 없다.


각자의 때에 각자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82억개의 꽃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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