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답서스는 우리 집에도, 친구네 집에도 있는 흔한 국민 반려식물이다.
잘 죽지 않는 덕에 초보 식집사들도 쉽게 들이는 식물 중 하나이다.
스킨답서스의 줄기에는 갈색의 작고 뭉툭한 뿌리가 나있다.
흙 속이 아닌 공기 중으로 뻗어 나오는 뿌리인 기근이다.
열대우림에서 사는 스킨답서스는 바닥에 머물지 않고 큰 나무의 기둥이나 바위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이때, 기근은 나무껍질의 틈새를 파고들어 자기 몸을 단단히 고정하는 갈고리 역할을 한다.
또한 본래의 뿌리가 물을 잘 끌어올리지 못할 때, 덥고 습한 정글의 공기 속 수분과 미세한 영양분을 기근을 통해 직접 빨아들인다.
스킨답서스 줄기가 잘리면 기근은 일반 뿌리로 변신하여 흙이나 물에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래서 마디를 잘라 물에 꽂아두면 새로운 하얀 뿌리가 자라 독립된 개체가 된다.
처음엔 기근이 징그럽고 요상해 보였다.
스킨답서스는 기근 덕에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스킨답서스처럼 기근을 만들어두지 못했다.
원래의 뿌리만 가지고, 줄기에 가지도 내지 않고 한 길로 쭈욱 나아갔다.
방황이나 진로 변경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줄기가 꺾여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고꾸라져 일어나기 어려웠다.
내가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 보고, 방황도 해봤으면 어땠을까?
스킨답서스처럼 중간중간 기근을 만들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럼 줄기가 꺾였을 때, 내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기근을 토대로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나를 지탱하기 힘들 때 어딘가에 갈고리를 걸어 잠시 쉬어가거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았을까?
올곧게 바르게 대나무처럼 자라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나무도 아니면서 대나무인척 자랐다.
혼자서 앞가림하며 열심히 자랐다.
누군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면 어리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 일, 저 일 벌여놓는 모습을 보면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생각들은 다 나의 오만한 생각이고, 엄청난 착각이었다.
혼자 서 있기 버겁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잠시 기대는 것이 현명한 거였다.
대나무처럼 줄기를 길게 올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 길이 아니다 생각될 때, 바보같이 오기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시 뿌리내리고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었다.
나는 지금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방황을 하는 시기이다.
안식년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숨어서, 이것저것 해보고, 생각해 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보며 지내고 있다.
내 인생의 기근을 만드는 시간이다.
그 기근이 계속 기근으로 남아있을지,
언젠가 새로운 뿌리로 자라날지,
등반을 하기 위한 갈고리로 역할을 해낼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 인생에도 기근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히 배웠다.
줄기가 꺾인 채 쓰러져있던 과거의 나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