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식물이 들어오거나, 기존 식물이 잘 자라 더 큰 화분이 필요해지면 분갈이를 한다.
식집사 초보 시절에는 화분에서 뽑힌 식물의 뿌리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다뤘다.
원예 선생님이 식물 뿌리를 정리해 주라고 할 때도 조심조심 잔뿌리만 뜯어냈다.
그러나 그건 식물이 아파할 거라는 나의 착각일 뿐, 식물을 위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뿌리를 툭툭 끊어내는 단근 작업이 식물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식물의 굵고 긴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하는 역할보다는 식물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오히려 솜털 같은 잔뿌리들이 물과 양분을 흡수해 식물을 먹여 살린다.
그래서 굵고 길게 뻗은 뿌리를 잘라 잔뿌리가 많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 식물을 위한 일이다.
나는 굵은 뿌리만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최대한 잔뿌리를 내지 않고 굵은 뿌리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당근도 아니면서 당근처럼 살려고 했다.
굵은 뿌리를 조심조심히 다뤄왔다.
굵은 뿌리는 나를 바로 설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나 내가 무시했던, 소홀히 생각했던 잔뿌리들이 없어
점점 야위여갔다. 속이 비어갔다.
나의 뿌리들은 나를 지탱해 줄 뿐, 물과 양분을 흡수해 나를 살리진 못했다.
과감하게 굵은 뿌리를 끊어내는 단근 작업이 필요하다.
자잘한 뿌리들이 만들어지도록 아프지만 기꺼이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것들. 내가 이뤄왔던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작은 솜털뿌리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시간이다.
새로운 것들에 도전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왔다 갔다 방황도 해보고.
나는 이제 부지런히 잔뿌리를 만들어낼 거다.
서른 후반이라는 이 나이에
굵은 뿌리를 단단하게 심어놓아도 모자랄 판에
새롭게 잔뿌리를 내겠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그리고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단근 작업일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번아웃이 왔거나,
새로운 시작을 앞뒀거나.
지금 이 시간에도 뿌리를 잘라내며 열심히 잔뿌리를 만들어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응원한다.
지금 만드는 잔뿌리들이 나를 살리고, 나를 지탱하고, 나를 키울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