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두 번째 날 아침.
온몸 비틀기를 하며 수영장으로 향한 나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뚜벅뚜벅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다.
'혹시... 아쿠아로빅 수업으로 변경할 수 있을까요?'
정말 고심 끝에 나는 수영 초급반 대신 아쿠아로빅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나는 아쿠아로빅을 어머님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수업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아쿠아로빅 수업을 신청하는 데는 나도 이제 삼십 대 후반이다라는 자각이 큰 힘을 발휘했다.
내가 스스로를 아직 삼십 대 중반이라 생각했으면 '내가 아쿠아로빅을?'이라며 그냥 수영 강습을 환불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새해가 되고 한 살 더 먹은 나는 어머님세대에 한발 가까워졌다. 그래서 수영을 환불하고, 아쿠아로빅을 새롭게 등록할 수 있었다.
사실.. 아쿠아로빅은 새해부터 수영 강습을 딱 한 번 가고 포기해 버리자니 너무 창피하고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서 찾은 차선책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수영은 환불했지만, 아쿠아로빅으로 물과 친해지고 다음에 다시 수영에 도전하면 되지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나의 원대한 계획은 아쿠아로빅 한 달 배우고, 다음 달에는 다시 입문반 수영에 등록해서 제대로 수영을 배우는 것이다. 예전에 진도 상으로는 평형까지 배우긴 했던지라 입문반을 건너뛰고 초급반을 등록했던 건데, 다음 달에는 아주아주 초심으로 돌아가서 음파음파부터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다시 수영장으로 향했다.
오전과 달리 아쿠아로빅 시간에는 모든 레일이 아쿠아로빅 수업에 사용된다. 즉 지금 이 시간에 샤워실에서 수영복을 챙겨 입는 모든 분들은 나의 아쿠아로빅 선배님들이라는 얘기다.
누가 봐도 쭈뼛쭈뼛 신입생 티를 내며 수모를 쓰고 기다리고 있으니, 몇몇 분이 말을 건네주셨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파란 모자도 받아주시고, 모자를 쓰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자리까지 알려주셨다.
그렇게 나도 언니들과 같은 파란 모자를 쓰고, 언니들 옆에 섰다.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트레칭 후에 시작된 오늘의 노래는 트로트였다.
'아 맞다. 여기... 아쿠아로빅이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다시 알아차리고, 선생님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물속에서 열심히 따라 했다.
박자에 맞춰 파란 모자가 위아래로 출렁였다.
멋있었다.
사람들 속에서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파동에 움직이고 있는 게 너무 이상하고, 좋았다.
그동안 나는 늘 남편과 단 둘이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늘 혼자였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병들면서, 나는 사람들을 점점 멀리하고, 이불속으로 숨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언니들 속에서 같은 파동을 느끼며 함께하고 있다.
집에서도 책임져야 할 게 많은 맏이였고,
업무적으로도 혼자 끌고 가야 하는 대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언니들 속에서 아직은 그저 귀여운 막내가 되었다.
잘해야만 하고, 성과를 내야만 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부담감 없이
못 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은 막내가 되었다.
서른 후반에도 막내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서투름과 어설픔이 흠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은 곳이 있었다.
아쿠아로빅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수영만큼의 근육통은 없는 운동량이지만, 운동보다는 '움직임'에 초점을 둔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딱 맞는 운동이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하고, 선생님의 따봉도 받고, 다 같이 기합소리도 내보고. 나의 아쿠아로빅 첫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가끔 아쿠아로빅은 텃세가 심해 새로운 사람이 시작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게 아쿠아로빅은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아직 하루밖에 안 되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첫인상인 매우 좋았다.
수영과 달리 다음 아쿠아로빅 수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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