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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21. 2019

겨울이 주는 의미

한 겨울이 왔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잠들거나 쉬게 된다. 산천초목은 마지막 남은 물을 떨궈내고 온몸을 굳게 다물고 한파를 버틴다. 행인들도 점점 줄어들고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만물이 성장을 멈추고 침묵하는 계절이 오면 나는 마치 변두리 외딴 곳으로 밀려난 기분이 든다. 그렇게 겨울이 주는 묵직한 느낌을 안고 지내다가 드라마를 보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것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SF 호러 미스터리물 ‘기묘한 이야기(원제: Strange Things)’다. 

8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극에 달하던 때여서 군사문제뿐 아니라 핵 개발, 우주 진출 등 기술 부문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힘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국가 간 경쟁 앞에 도덕적 가치나 인권은 뒤로 밀려나던 당시, 인디애나주의 작은 시골마을 호킨스에 첨단 기술을 비밀리에 개발하는 에너지 연구소가 들어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윌, 마이크, 더스틴, 루카스 네 명의 친구들이다. 사총사는 그들의 아지트인 마이크의 집 지하실에서 어울리다 헤어지는데 어느 날 윌이 집에 오지 않았다. 윌의 가족과 친구들이 사라진 윌을 찾아 나서면서 마을에는 기이한 일들이 펼쳐진다. 


윌은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고 있으며 가정 형편이 어렵다. 더스틴은 과학지식이 풍부하지만 또래에게 인기가 없고 흑인 루카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산층 가정의 마이크도 부모님들 사이가 냉랭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별다른 재능이 없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호킨스 마을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변방의 마을을 배경으로 비주류의 사람들이 연대하여 에너지 연구소를 위장한 군 관련 비밀 기지의 음모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을 찾아서>가 떠올랐다. 변방은 감상적인 차원에서 낙후되고 소멸되어가는 주변이 아니며 변방은 다음을 준비하는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역동성의 공간이다. 변방은 중심 계층이 아닌 소외계층,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 중심 문화가 아닌 외부 문화, 강자가 아닌 약자를 의미하지만 이곳은 자신을 조감하고 성찰하며 스스로 새로워지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기묘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인기를 끌고 있는 까닭은 변방에 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통찰력과 진실함이 통한 까닭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성인의 어린 시절 역할이나 보조 출연에 불과했는데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반대로 아이들이 주역이다. 어른들 세계에서 소외되어 온 약자가 주인공이 되니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한물 간 라디오 주파수와 모르스  부호가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로 등장할 때, 핵무기로도 뚫을 수 없었던 뒤집힌 세계의 문을 한 여자아이가 열고 닫았을 때 반전의 감동이 생긴다. 이 드라마는 주변부, 약자, 소외계층 안에서 새로운 변화 가능성과 삶의 희망을 보여준다.


나는 이 드라마가 약자로 무시당하던 사람이 능력을 증명하며 주류의 세계로 편입되는 결말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호킨스 마을을 구한 영웅들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주인공들은 사건이 해결되자 일상으로 돌아왔다. 세명의 친구들은 목숨이 오가는 위험에서 윌을 구해내고 함께 무사히 중학교 연말 댄스파티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더스틴은 여자들에게 거절당하고 혼자 벽에 기대어 낙담하고 있는데 마이크의 누나인 낸시가 다가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춤을 추며 말한다. “너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네 또래 여자들은 모두 바보야.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 거야.” 비주류의 삶 자체를 긍정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세계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묘한 이야기’ 주인공들은 변방의 자리에 선 자신들을 긍정하였고 그 가치를 스스로 알기에 감동을 주었다. 겨울은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계절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조망하고 성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한 창조의 시간이었다. 겨울이 있는 이유를 소중히 가슴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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