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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21. 2019

우물가 그 집

서울 도심의 낡은 동네에서 자란 나는 집에 있을 때보다 골목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 동네 친구들과 골목을 쏘다니며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엄마들의 밥 먹으라는 외침이 들리면 그제서야 헤어졌다. 이때 우리 동네란 나보다 한 살 어렸던 찬우가 맏형인 삼 형제 집을 기준으로 나와 동갑이었던 선희네 집부터 둘째 언니 친구였던 혜선 언니네 집까지를 말했다. 이 구역을 넘어가면 남의 동네였다. 동네 밖으로는 아는 친구도 별로 없고 거리도 멀어서 웬만하면 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남의 동네를 통과해서 높다란 언덕까지 넘어가며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바로 우물 옆에 있던 떡볶이집이었다.  

간판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던 기억인 걸 보면 상호가 있는 제대로 된 가게는 아니었다. 우물 옆집, 우물가 떡볶이, 우물 떡볶이... 뭐라고 부르든 그때그때 알아듣기만 하면 괜찮았다. 우리 동네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라 마치 외지인이 된 것 같은데도 내가 자주 갔던 것은 오로지 떡볶이 때문이었다. 지금도 떡볶이는 나에게 추억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달래는 힘을 가진 음식이다. 콧대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매콤한 떡볶이 한 접시면 기분 나빴던 일이 잠깐 사라지는 마술이 펼쳐진다. 우물가 떡볶이는 떡이 다른 데보다 굵었고 짜장이 들어가 거무튀튀한 국물 색깔이 특이했다. 할머니는 연두색 바탕에 흰 점이 그러데이션 된 접시에 비닐을 씌워, 국물이 찰방찰방해서 곧 쏟아질 것 같은 떡볶이를 담아서 조리대 건너편에 앉은 우리에게 건넸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손가락이 델 것 같아 조심조심 접시를 넘겨받아 내려놓곤,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곤했다. 항상 주문한 금액보다 더 많게 느껴지는 떡볶이가 푸짐했다.    


주로 초등학생들이 가던 곳이니 백원, 이백원이 고작인데도 할머니는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허리가 구부정하니 늙었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웃는 표정이 자리 잡아 그냥있어도 눈가와 입매가 상냥해 보였다. 한 번은 우물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문 열기 전에 간 적이 있었다, 때마침 장사 준비하러 가게와 집이 연결된 작은 구멍에서 나오던 할머니와 마주쳤다. 좁은 가게 안에서 우리가 있는게 거치적거렸을 텐데도 할머니는 우리를 들어와 있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식사로 스탠 국그릇에 삼각 포리 커피 우유 한 팩을 따랐다. 거기에 식빵 한 장을 푹 담그더니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서 죽처럼 떠먹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면서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돼서 이렇게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국그릇을 나에게 건네며 먹어볼 것을 권했다. 손님이 많은 날,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렸다 앉으니 미안하다며 떡볶이 한 주걱을 더 주었다. 또 손님이 없는 날은 어차피 오늘 지나면 못 판다며 더 주었고 단골이라서 더 주었고, 어릴 땐 뭐든 많이 먹어야 한다며 더 주었던 할머니는 소탈하고 마음이 넓은 욕심 없는 분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특별한 것 없던 그 떡볶이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먼 동네에 사는 우리까지 끌어들였던 것일까. 돌이켜보니 뜨겁고 달달한 떡볶이뿐 아니라, 돈 없고 배고픈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할머니의 마음이 그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에 빠져 죽은 처녀 이야기만 세 가지 버전이 있었던 우물가, ‘떡볶이’ 세 글자가 빨간 궁서체로 창문 유리 칸마다 한 자씩 세로로 쓰여 있던 떡볶이집, 추운 날이면 가게 안 열기로 뿌옇게 서리가 껴서 안이 보이지 않던 출입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유년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 중심에는 뚜껑 덮인 우물과 그 옆 떡볶이집이 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은 그 시간과 그때 만난 사람도 함께 불러온다. 나로선 떡볶이를 팔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게 없는 할머니였지만 참 좋은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존재들이다. 할머니와 같은 동네 사람들이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그 자리에 있음으로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꼬맹이였던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냈다고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모든 일이 저절로 이뤄진 것은 없는 것 같다. 감사할 일들이 하나둘씩 트리 전구처럼 켜지며 마음을 밝히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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