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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15. 2021

흔들리는 사람

1일 1드로잉, 라구 소스

#122일차

*2021.11.15. 10분 글쓰기*

감정


겉으론 무표정해 보여도 감정에 충실다. 돌아보면 선택의 기로에서 이성보다 감정의 소리에 따라간 적이 많았다. 그렇게 따라간 길에서는 대차대조표로 따지면 손해 나는 경우도 있지만 나 자신을 믿고 솔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언제나 논리적인 설명보다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 마음이 담긴 호소에 설득당한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중 하나를 읽어주었다. 수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단순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감동이 크지 않았다. 다음 날 수업시간에 한 손으로 그림책을 들고 읽어주는데 티라노사우르스에게 깊이 감정 이입되었다. 힘이 센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공룡이 나이가 들어 점점 약해지고 부상당한 몸으로 혼자 맞이하는 밤, 따뜻한 대우를 해주는 트리케라톱스를 만나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것, 자신을 알아봐 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절절하게 마음에 다가와 펑펑 울었다.  


아주 먼 옛날 힘이 무척 센 티라노사우르스가 살았다. 힘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던 티라노사우르스는 최상위 포식자답게 포악했다. 숲 속 동물들은 티라노사우르스만 나타나면 그를 피하고 모두 숨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티라노사우르스도 늙어가며 힘이 없어지게 되었다. 약해진 그를 얕보는 다른 육식 공룡의 공격을 받아 꼬리에 치명상을 입었다. 늙고 힘없는 티라노사우르스는 어느 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고요한 밤이 찾아오고 티라노사우르스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물린 꼬리도 아프고 이제 나는 어쩌면 좋으나 걱정하다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맛있어 보이는 트리케라톱스가 티라노사우르스를 깨웠다. 그를 잡아먹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공격당한 꼬리 부상이 심각했다. 어린 트리케라톱스는 상처 난 꼬리를 돌봐주었다. 티라노사우르스인지 몰라보는 트리케라톱스는 그를 편견 없이 대했고 친구가 되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는 친구를 처음으로 사귀게 되었다. 친구들과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데 트리케라톱스를 잡아먹으려는 기가노토사우르스들을 만나게 되고 티라노사우르스는 사랑하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남은 힘을 다하다 죽는다.  


담임 선생님이 우는 모습에 당황했고 신기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반에는 사춘기라 센 척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책을 읽고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국어 수업으로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수업 말미에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는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는 책의 메시지를 나누다가 울컥했다. 눈에 눈물이 맺히고 아무리 침을 삼켜 막으려 해도 목소리가 울먹였다.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힘내라며 때 아닌 박수를 쳐주었다.


자신의 지금 상태와 가장 닮은 사진을 골라 "요즘 나의 기분은 000입니다"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자물쇠와 쇠사슬이 가득한 사진을 골라왔다. 방과 후 아이를 남겨 상담해보니 갑자기 학원을 많이 다니게 되고 집에서 하는 공부량이 늘어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마음이 힘들면 엄마에게 잘 털어놓지만 엄마는 위로만 해줄 뿐 숙제를 줄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어서 서로 얼굴 보며 웃음이 났었다.


자연 속을 산책할 때 가슴 속 숨은 감정이 잘 느껴지고 그런 날이면 글이 잘 써진다. 감정이 기복을 타느라 오르락내리락하면 마음이 수고하는구나 긍정해보려한다. 금이정의 시 <바람을 타야 아름답다>를 읽었다. 나무는 살아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사람도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사람은 바람을 타야 훈훈해진다. 바람을 순순이 맞이하며 싱싱한 감정을 발산한다. 흔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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