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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26. 2021

기억의 파편들

1일 1드로잉, 멕시코 소철

#133일차

*2021.11.26. 10분 글쓰기*

나는 기억한다. -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세요. 오늘은 10분 알람 시계에 맞춰놓고 10분 동안 쉼 없이 씁니다. 


나는 기억한다는 말 앞에서 멍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기억한다는 다음 문장을 이을 수 없어 막막하다. 몇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지만 기억한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선뜻 꺼내놓지 못한다.


나는 오래 꿈을 기억한다. 새파란 태평양 바다 위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 몸이 찬란하게 빛났다. 내가 햇빛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했다. 일렁이는 물결이 빛을 반사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온통 빛 천지였고 나는 환희에 차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십 년도 넘은 오래전 꿈인데 여전히 생생하다. 꿈에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하도 신기해서 예지몽인가 싶어 역술인을 찾아갈까 생각했다. 궁금한 것들을 일일이 해결하지 않고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는 성격이라 언젠가 해석되겠지 싶어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나는 기억한다. 새벽 재수학원을 가는 길에 커다란 달을 보았다. 지평선에서 하늘 끝까지 닿아있는 전방 시야를 꽉 채우는 엄청난 크기의 달이었다. 문제는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벽 5~6시 영등포 로터리에서 봤다. 언젠가 천문학자에게 질문 한 적 있는데 달이 유리건물에 반사되어 그렇게 보일 확률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만한 크기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며 개인의 신비한 우주 체험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생일 때 치아가 썩어서 잇몸이 염증으로 부어올라 퉁퉁해진 턱을 부여잡고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몇 시간 째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아픈 게 서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긴 외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엄마가 나를 돌려 눕혀 허벅지를 베개하고 뜨거운 두유에 식빵을 말아서 수저로 떠 넣어주었던 일을 기억한다. 엄마의 보살핌으로 사랑을 증명받은 것 같아서 아픈 내 몸이 뿌듯하고 좋았다. 음식을 씹을 수 없어 꿀꺽 삼키면서도 뜨거운 것이 몸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자 나아질 거란 희망이 몸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서럽게 우시던 아빠를. 조용하고 과묵한 아버지가 취기를 빌어 쩌렁쩌렁한 목소리톤으로 기억나지 않는 말들을 하셨다. 타령 곡조의 노래를 즐겨하셨는데 타령 자체가 구슬프기도 하지만 울음이 반 이상 섞인 아빠의 노래는 고된 삶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이 너무 많아 아빠가 힘든 것 같아서, 아빠를 고생시키는 이유가 나라는 생각에 내가 미웠던 것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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