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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03. 2021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1일 1드로잉, 책

#140일차

*2021.12.3. 10분 글쓰기*

올해의 책


올해의 책으로 정신과 의사 김현수 샘이 쓰신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를 꼽고 싶다. 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선생님들은 자존감이 사라지고 민원처리반, 동네북, 감정노동자가 되어 교사 소진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 소진된 상태란 마음이 피를 흘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로 번아웃되고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감정의 도가니인 교실에서 쏟아지는 감정을 받아내느라 혼란스럽고 막막하다. 상처받을까봐 갑옷을 입고 출근하는 교사, 곧 어딘가 장기가 고장나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며 학교 문을 나서는 교사들은 자기 상태를 제대로 판단할 힘이 없다.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그러하듯 김현수 샘은 책을 통해 소진된 교사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픔을 달래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여기저기 찢어지고 갈라진 교사의 마음이 애정 어린 진단을 받는 과정을 거치며 상처의 원인을 직시하게 된다. 책의 끝부분에서 소진과 트라우마를 견디는 일의 의미를 읽고 나면 용기를 얻는다. 고통이 주는 역경에 주저앉지 않고 극복하면 인생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타인과의 관계가 달라지며 자신 안에 새로운 강점을 발견하며 내면이 단단해지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선생님은 봉천동에서 지난 20년간 프레네 교육과정을 따르는 <성장학교 별> 대안학교 교장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을 별, 교사를 별지기라고 부르며 상처 받은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 치유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실천적 지성인 중 하나다.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책은 학교의 3 주체 중 하나인 교사가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하도록 먼저 길을 나선 선구자의 경험과 정신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도록 불을 밝혀준다.  


김현수 선생님은 공부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인 타고난 학자 타입이다. 선생님은 학교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희망이고 교사들은 무너지는 세상의 파수꾼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와 교사,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릴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간다. 선생님의 간절한 외침은 게으른 내 귀에도 이르러 김현수 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심단(관계 심리학을 연구하는 교사단)에서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공부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 중, 고 선생님들과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 연결되고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관심단은 서로를 향한 지지와 성찰을 위한 사유를 함께 하는 동료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책은 박두순의 시 <상처>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진공 상태에서 살지 않으므로 상처 없는 사람이란 지구 상에 없다. 학생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교사가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면 그는 교육을 실천한 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흔들리고 시달릴수록 상처는 깊어지지만 그만큼 마음의 품도 넓어진다. 이 상처를 믿고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깃들 수 있고 교실은 안식처가 된다.

우정의 다양한 면모를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시기인 4학년 아이들은 솜털이 여기저기 빠지기 시작하며 못난이가 되는 아기새처럼 마음 씀씀이가 삐죽빼죽하다. A가 B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C가 귀찮게 자꾸 끼어드니 "너랑 이야기하기 싫어"라고 했다가 사이가 나빠진 일이 있어서 풀어가다 나도 마음이 지쳤을 때였다. 작년에 가르쳤던 5학년이 된 제자가 교실로 찾아와 수줍게 편지를 내밀었다. 국어시간에 마음을 전하는 글을 배우고 있어서 내게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편지를 읽는데 문득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듯이 제자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싶어 묵직한 책임감이 들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내려갈수록 큰 물살을 이루고 지형을 바꾸는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번 주말 오랜만에 예쁜 편지지를 골라서 정다운 답장을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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