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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02. 2021

1일1드로잉

맥문동

#48일차

여름 끝자락에 와 있다. 일찍 도착한 가을바람에 곳곳에서 맥문동 꽃이 아른거린다. 메마른 당면 줄기처럼 기다란 꽃대에 작은 보라색 꽃이 별사탕처럼 조롱조롱 매달려있다. 군집을 이루어 피어 있으면 라벤더 꽃밭처럼 보여 괜히 코를 킁킁거리게 된다.


2000년 초 개봉했던 영화 <라벤더>는 상영 중 라벤더 향기를 뿜어주어 시각과 청각에 이어 후각을 동원하는 영화적 경험을 세계 최초로 시도했다고 홍보한 기억이 난다. 그땐 왜 그런 게 유치하고 상술이라고 여겼을까?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일어나는 순간이 적어진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도 세상을 낯설게 보는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경험을 분류하고 그룹화하며 차이를 무시하고 과거의 연속선에서 빠르게 판단해버리는 것 같다. 이제는 호기심을 무조건 따라갈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배움과 의미를 찾을 자신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대부분의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상징색이라서 그럴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I love you" 대신 "I purple you"를 사용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들었는데 거꾸로 사고가 언어를 지배하기도 하는구나.  "사랑해"가 "보라해" 가 되는 사랑의 힘.


나희덕 시인은 <보라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에서 말한다. 보라색 내부에서 빨강의 뜨거움과 파랑의 차가움이 갈등하고 있고, 그 갈등은 나아가 탄생과 죽음, 현실과 이상,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여성성과 남성성,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보라빛을 보면서 중간색들이 갖는 불균형, 소멸과 죽음에 대한 경사, 슬프고 병적인 심리, 석탄 찌꺼기처럼 연소되고 남은 재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자신의 내면을 보라빛과 연관 짓게 된다고 했다. 시인은 왜 보라빛에 이끌린 것일까. "386세대" 시인은 자신을 지나간 많은 일들이 빨강과 파랑의 극명한 대립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보라빛의 균형감각이 자신에게 필요했다고 말한다.


"찢겨진 감정을 스스로 쓰다듬으며 갈등을 해소하려는 심리는 마치 빨강과 파랑이 제 고유의 색을 버리고 서로 한 몸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작용과도 비슷하니까요. 그렇다면 보라빛은 단순히 병적이거나 모호한 색이 아니라, 상처를 넘어서려는 치유력과 더불어 분열을 넘어서려는 역동성을 지닌 색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나희덕"


"색조는 따뜻함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으로 크게 나뉜다. 이 두 가지가 조합돼 네 가지 울림이 나타난다. 예컨대 어두운 따뜻함이나 밝은 차가움 등이 나타난다. 따뜻함이나 밝음은 보는 사람을 향해 운동하고, 차가움이나 어두움은 보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진다.

노란색은 전형적인 지상의 색깔이다. 푸른색은 전형적인 천상의 색이다...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서 가장 평온한 색이다. 절대적인 초록이 그 균형을 파괴해 노랑으로 상승하며, 거기에서 생기를 얻어 젊고 기쁨에 차게 된다. 초록이 파랑으로 기울어 깊게 침잠하면 전혀 달리 엄숙하고 사색적인 것이 된다. 빨간색은 생기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동요하는 색으로서 내적으로 작용하지만, 사방으로 자기 힘을 소모하는 노란색의 경솔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빨간색과 노란색을 혼합하면 주황이 된다. 빨강 내부에 있던 운동성이 살아나서 사방으로 퍼지는 방사 운동과 확산 운동이 일어난다. 빨간색이 파란색에 의해 인간에게서 멀어져 감으로써 생겨난 것이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냉각된 빨강이다. 그래서 보라색은 일종의 병적인 요소, 불꽃이 꺼져 버린 것 같은 비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황색과 보라색은 거의 안정되지 않은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중에서

바실리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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