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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04. 2021

1일1드로잉

사철나무

떨어진 식물 줍기.

매일 드로잉을 할 때 갖는 원칙이다.

만지는 척하며 뜯어오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그래서 열심히 바닥을 보고 다닌다. 하늘도 보고 바닥도 보고 길을 걸으면 시선이 위, 아래로 바쁘다.

학교에 아침 일찍 가는 편인데 우리 학교 기사님은 더 일찍 나오신다.

부지런히 교정을 싹싹 쓸어주셔서 바닥에 떨어진 잎을 볼 수 없다.

다행히 오늘은 사철 나뭇잎 하나 주웠다.

사철 내내 푸른 잎을 지녀서 사철나무다.

도시에서는 다양한 아름다움 보다 생명력 길고 튼튼 관리하기 좋은, 비슷비슷한 조경수가 대부분이다.   


배우 황정민의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는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배움이 일어나는 교실이 영화 현장이라면 이를 받쳐주는 조연과 스태프는 누구일까?

(노동을 육체와 정신으로 단순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만) 육체노동을 하며 학교 일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기여하는 기사님, 급식 조리종사원분들이 있다. 나뭇잎 같은 사람들이다.


나뭇잎 같은 사람 많다

도종환


나뭇잎, 이 세상에 나뭇잎 같은 이들 많다

벌과 나비가 나무를 찾아오는 것은 꽃이 피었을 때다.

새나 짐승이 나무를 찾아오는 것은 열매가 열렸을 때이다.

나뭇잎을 좋아하는 것은 나뭇잎뿐이다.

뿌리는 나무를 튼튼히 받치고 있다 해서 칭찬하지만

나뭇잎은 그런 칭찬을 들어보지 못한다.

...

그러나 눈에 뜨이는 화려함이나 돋보이는 빛깔 같은 것을 지니지 못한 나뭇잎이 모여 나무를 이룬다.

평범한 이파리들이 가장 오랫동안 나무를 떠나지 않고 나무와 함께 있으면서 기쁨과 고난과 시련을 같이 한다.

...

이 세상에는 그런 나뭇잎 같은 사람이 많다.

그런 보잘것없는 이파리 같은 이들이 모여 비로소 세상을 이룬다.

그렇게 별로 눈에 뜨이는 구성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비로소 세상을 이룬다.


학교에도 유행이 돈다. 열린 교육, 영어 교육, 메이커 교육...

수년 전 1명의 영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영재 교육, 리더십 교육을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모두 리더가 되면 소는 누가 키우지? 10만 명이 받쳐주지 못하면 리더도 없는 게 아닐까?  


오늘도 나뭇잎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나뭇잎 같은 드로잉, 나뭇잎 같은 글을 쓰고 있다.

나뭇잎 같은 무수한 시간이 쌓여 꽃과 열매가 되는 영광의 순간도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오고 또 희미해지겠지. 나뭇잎 같은 확실한 오늘이 더없이 소중한 까닭이다.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나처럼 보통의 사람, 나뭇잎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공부하던 아이들은 노동하는 청년으로 사회에 나간다.

공부하는 몸이 노동하는 몸으로 변이(變移)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게 각자도생으로 일어난다.

누구나 일하면 먹고살 수 있는, 나뭇잎 같은 사람들이 마땅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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