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드로잉

한과

by 혜윰

#63일차

내가 대학 졸업반일 때 큰 조카가 태어났다.

생명이 탄생해서 식구가 느는 당연한 일을 처음 겪어보니 믿어지지 않았다. 언니가 출산한 날 학교에서 돌아와 작은 방을 여는데 겹겹이 싸인 포대기가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로 집에 가면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받은 터였다. 그 당시 나는 착하게 살지 않기로 작정한 중2병 걸린 사회 초년생이었다. 설마 무슨 일 일어나겠어?


겉 싸개를 열었더니 얇은 싸개가 드러났다. 다시 열었더니 또 다른 색깔의 싸개가 가로막았다. 아무것도 없는 보자기 묶음 아니야? 빈 상자를 택배로 받은 불안감 비슷한 감정이 들면서 포대기 젖히는 속도가 빨라졌다.


두터운 포대기 맨 안 쪽에 밤톨만한 아기가 씨앗처럼 쏘옥 담겨 있었다. 투명한 피부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면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고 싶고 만지고 싶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짓말처럼 저절로 손을 뻗었고 가만히 볼을 건드려보았다. 갓 구운 식빵을 찢으면 결이 드러나며 모락모락 식빵 조직이 꿈틀대는 것처럼 이제 막 형성된 아기의 피부조직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것 같았다. 어떤 경험은 사진처럼 뇌리에 각인되기도 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20년 전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동안 아기를 들여다봤을까. 공기에 닿아서 아기가 닳을까 봐 황급히 아까의 동작을 거꾸로, 속도는 두배로 포대기를 거둬들여 싸맸다. 그 놀라운 생명이 얼마 전 군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보내준 단체사진에서 까까머리 조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말이 없고 잘 참는 속 깊은 사람으로 자라서 힘들어도 엄마 생각하며 웃었을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분명 울 거라고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입고 간 옷가지와 신발을 택배로 받은 언니는 울고 말았다. 남동생이 군대에 갔던 20년 전에는 엄마가 울었고 조카가 군대에 간 지금은 언니가 운다. (제발 군대는 입고 간 옷을 택배로 보내지 마시라!)


추석을 앞둔 금요일이다. 오늘 오후부터 서둘러 귀경길을 떠난 사람들로 학교는 텅 비고 한산했다. 농경사회를 벗어났어도 추석의 힘은 한결같다.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태어난 나도 고향이라는 말에 왠지 마음이 흔들린다. 죽을 때 머리를 고향 방향으로 틀고 죽는다는 여우처럼 명절이 오면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어딘가 근원적인 것을 향하고 싶어 진다.


미술시간 한복 입은 아이가 보름달을 한 아름 안고 있는 도안을 꾸미고 달 안에 추석 소원을 적는 활동을 했다.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랍니다.", "평화통일"을 적은 아이들이 보였다. 많은 아이들은 우리 가족 건강하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적었다. (내가 일하는 지역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언제나 추석에 올려다본 달은 유난히 밝고 드높아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언니에게 이번 추석은 사랑하는 아들의 무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남편이 직장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났다. 아쉽게도 그 동료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있는 가족 곁으로 떠났다. 며칠 전 보낸 이를 알 수 없는 택배가 왔다.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누가 보낸 지 알 수 없었다. 강원도에서 만들어진 한과가 예쁜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발신인을 알 수 없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엊그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과를 보낸 이는 고향으로 갔던 동료였다. 깜짝 선물을 주고 싶어 보낸 이를 알리지 않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어쩌면 둘이 다시 못 만날 수 있는데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추석에 한과를 보낸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어떤 감정들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하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의 마음, 생활에 지친 이에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 주는 의미, 멀리서 찾아온 가족을 위해 추석 음식을 만드는 손길, 오랜만에 돌아 온 고향집 근처에서 마주친 첫사랑의 기억,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것과 이제는 내 일부가 된 어떤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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