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일차
개미네 집 주소는?
허리도 가늘군 만지면 부서지리
매일 방귀를 뀌는 나무는? 뽕나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수수께끼다.
수수께끼 문제에서 은행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나무란다.
아이들은 은행 얘기가 나오자마자 코를 막고
"아~ 똥냄새~" 하며 손을 내젓는다.
하굣길 은행을 밟으면 집에 가는 내내 운동화 바닥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를 아이들은 똥냄새로 기억한다. 성인이 은행 냄새에서 연상하는 것은 다르다. 현미경으로 봤던 대로 생김새도 닮았다. 대학원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존, 밀림을 떠올리면 적자생존, 약육강식, 만물의 투쟁, 혼돈을 연상한다. 이는 자연을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 다가간 시대를 거치며 갖게 된 편협한 자연관에서 나온 생각일 뿐이다. 나의 은사님은 통념과 다르게 실제 밀림에서는 공존과 공생 활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일이 훨씬 많다고 했다. 흔히 정자 수억 마리가 난자 하나를 목표로 경쟁해서 가장 우수한 정자가 수정에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억 마리 중 단 한 마리의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과정은 무한경쟁의 전쟁터가 아니라 협업과 공존의 드라마에 가깝다.
우선 정액 양이 2ml 이상 한꺼번에 방출되어야 하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의 선수들은 운동성이 활발해야 한다. 1~2억 개의 정자들은 15~20cm의 목숨을 건 장애물 경기에 뛰어든다. 질 내 산성물질과 대식세포가 동료 정자를 잡아먹는 동안 다른 정자들은 살아남아 끝에 다다른다. 가장 먼저 목표에 닿은 선두그룹에서 최후의 승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두그룹은 난자 표면을 둘러싼 난구 세포와 마지막으로 싸우며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들이 길을 뚫으면 드디어 2등 그룹의 정자 중 1마리가 난자의 투명대를 통과해 결합한다. 무수한 동료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생명 탄생의 신비는 불가능했다.
<은행나무> 시에서 시인은 밥 할 줄도 모르고 돈도 없지만 낙엽과 햄버거를 바꿔주는 세상, 낙엽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면 그렇게 결혼해 살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이 깔깔한 돈 세상에서 뺨맞을까봐 돈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는 재미없는 세상에는 기웃거리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우리를 돌아보면 먼지보다 작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며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야를 얻는다. 우주의 빅뱅은 137억 년 전에 일어났다. 별이 출현한 것은 135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는 45억 년 전에 탄생했다. 지구에 생명이 나타난 것은 38억 년 전이며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 등장하고(여기서부터 만 단위로 뚝 떨어진다.) 농경을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1천 년 전, 근대혁명은 250년 전이다. 우주와 별, 지구가 생기고 어마어마한 시간 뒤에 나타난 인류가 농경과 근대혁명을 벌인 지 얼마 안 되어 지구는 위기를 맞았다. 이대로 가다간 20년 안에 지구 표면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게 되어 폭염, 홍수, 가뭄이 몇 배 자주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학교는 요즘 생태전환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라벨을 떼고 플라스틱을 배출하자, 안 쓰는 전등을 끄자,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자, 휴지 대신 손수건을 생활화하자며 약속을 정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서로 격려하고 칭찬한다. 아이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조그만 손으로 부지런히 실천한다. 그런 모습에 나는 조금 슬프고 회의감이 든다. 문제 해결은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산업구조와 국가적 차원에서 석탄 의존도를 낮추는 대대적인 변화에 달려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가 마치 개인의 손에 달린 것처럼 생활습관을 바꾸면 나아진다고 눈가림하는데 학교와 교육이 동원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2억 5천만 년 전에 출현한 은행나무는 몇 번의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살아있는 화석"이다. 똥냄새난다고 코를 막고 밟을까 피해 다니지만 종, 속, 과, 목, 강이 모두 은행나무 하나인 대단한 생명체다. 기나긴 지구 역사의 흐름을 지켜봐온 은행나무가 인간의 소동을 내려다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기후위기는 인간의 위기이지 지구의 위기가 아니고,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이 있을 뿐 지구는 계속 돌고 휴식기를 갖다가 다른 종의 탄생을 허락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