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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22. 2021

1일1드로잉

부겐빌레아

#68일차

잠시 비가 그친 틈에 나와 동네를 걸었다. 어떤 집 앞에 내놓은 화분에서 키가 훌쩍 큰, 진한 분홍색이 매혹적인 꽃을 보았다. 운 좋게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주웠다. 커피를 사러 카페에 오고 가는 내내 얇은 꽃대를 붙잡느라 손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눈으로 봐 뒀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워오면 좋겠지만 전에도 그렇게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번번이 없어졌다. 아마도 바람에 날아갔거나 부지런한 빗자루질에 치워졌을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이런 일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떨어진 꽃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오늘 우연히 만난 꽃은 부겐빌레아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가 원산지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꽃들 대부분이 남미에서 온 식물이라는 것도 새로 얻게 된 지식이다. 남미 출생인 식물들은 까다롭지 않고 물을 안 줘도 잘 자라고 키우기 쉽고 꽃이 피어있는 기간도 길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가 보다. 꽃은 오래 볼 수 있고 신경 안 써도 잘 자란다면 그보다 경제적인 선택이 또 있을까.   


언젠가 식물을 신체에 비유하며 꽃을 생식기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후 꽃을 보면 몰래 봐야 될 것 같고 왠지 민망해지는 것 같았다. 생식기가 꽃이라면 식물의 뇌는 어디에 있을까? 흙의 양분을 파악하고 물을 찾아 뿌리가 뻗어갈 방향을 정하는 컨트롤 타워는 식물의 어디에 위치해있을지 궁금해진다. 바람이 꽃잎과 잎사귀를 간지럽힐 때 '좋다', '살 것 같다' 느끼는 마음은 식물의 기관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에겐 길었고, 누군가에겐 짧았던 연휴가 끝나고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간다. 직장으로서 학교는 평범한 회사생활과 다르지만 일반적인 직장의 면모도 갖고 있다. 작년부터 기획하는 업무를 맡아서 뭔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저항에 부딪친다. 작년엔 없었는데 왜 해야 하느냐, 뭐가 좋아지냐, 꼭 해야 되냐, 그렇게 좋으면 하고 싶은 사람만 하자, 지금 하는 일도 많은데 부담된다... 답답해지는 나는 희망하는 학급만 모아서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학년 단위, 학교 단위로 해야 가능한 사업들도 있다. 교육활동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일단 시행해보고 결과를 평가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내년에 빼거나 수정하면 될 텐데..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같지 않다.


하던 것을 빼자, 하지 말자 할 때는 반대의견이 없는데 뭘 하자고 더하면 냉담한 반응이 돌아온다. 학교 업무를 하며 사람들을 알아간다. 일이 아니었으면 그 선생님을 자세히 몰라서 편하고 좋은 이미지로 남았을 것이다. 업무담당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위치에 선 내가 지식의 저주에 걸려 그 일을 모르는 선생님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팍팍해지는 마음을 접고 좌절하지 말자고 혼잣말을 한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에도 하늘의 구름은 예쁘게 피어나고 푸른 나무는 거목으로 자라고 있다.


부겐빌레아의 꽃말은 열정이다. "열정" 을 생각하니 김남조의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생각난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오래 기다려주기. 더 많이 더 오래 사랑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심 갖지 말기. 먼저 사랑하고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 가장 나중까지 지켜주는 사람 되기.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나더라도 열정을 간직한 채 남아서 마무리할 것이다. 학교에서의 업무도, 선생님으로서 교실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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