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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21. 2021

1일1드로잉

날개

#67일차

제사음식에 물리고 편하지 않은 친척들 속에서 사회생활용 미소를 짓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스타벅스나 동네 카페로 피신한다. 집을 탈출해 나온 사람들에게서 하루 종일 전 부치느라 몸에 밴 고소한 기름내가 까페 안에 감도는 것 같다. 좀처럼 추석 기분을 낼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주류의 이야기에 끼어들기 어렵다. 고향길 오가며 겪은 교통 정체, 추석선물 사느라 지출을 크게 하거나 친척들에게 근황을 설명하느라 고생했다거나 가족의 도리를 하고 왔다는 뿌듯한 피로감에 동참할 수 없는 나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장착하고 침묵을 유지한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은 분명 긴 연휴 중 한 번은 치킨을 시켜먹을 것이다. 먹다 남은 양념치킨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꺼내면 양념이 진하게 배어들어 더욱 맛있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젊음이 시들어가듯 음식 맛도 가는데 미역국이나 김치찌개처럼 치킨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늘은 양념치킨 닭날개를 그렸다. 


나뭇잎, 꽃, 이름 모를 열매, 과일, 채소, 달걀 그리고 치킨까지 67개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정말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평생 67개의 그림을 그렸다고, 내가 그린 그림을 셀 수 있는 사람(그런 걸 세는 사람도 없겠지만)이 되었다. 그동안 그린 것들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모두 시들어 없어지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먹어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 그림을 꺼내 보면 그때 내 앞에서 자신의 전 모습을 드러내어 주었던 대상과의 교감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림으로 자리 잡은 것들은 모두 사랑스럽고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비춰준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으로 남기는 이유를.     


천상병 시인은 날개를 가지고 싶어 했다. 날개 달고 어디로든지 날아가고 싶었다. 날개를 달고 싶어 한 이유는 그의 인생을 보면 이해된다. 그는 간첩사건에 휘말려 6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정신질환까지 얻었다. 출소 후 행방불명된 기간에는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일생 직업이 없었고 지독한 가난이 늘 함께 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에게 세금처럼 돈을 빌렸는데 결혼 안 한 지인에게는 500원, 결혼한 지인에게는 1000원을 꿔달라고 하며 술을 사 먹었다고 한다. 그가 간경화로 오래 고생하다가 63세의 나이로 죽고 혼자가 된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낸 책이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다. 


레아 리오니의 <프레드릭>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들쥐 가족이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모으느라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오직 프레드릭만 빼고 말이다. 

"넌 왜 일을 안 하니?" "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들쥐들은 이후에도 계속 프레드릭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한심하다는 듯 뭐하냐고 묻는다. 드디어 겨울이 오고 쌓아둔 식량을 축내며 들쥐들이 긴긴 추위와 어두운 날들을 견디고 있을 때 프레드릭이 바위 위에 올라 말한다. "모두 눈을 감아봐. 내가 햇살을 보내줄게." 파란 덩굴 꽃, 노란 밀짚, 붉은 양귀비, 초록 딸기 덤불에 대한 프레드릭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던 들쥐들은 잿빛 겨울 속에서 밝고 따뜻한 색깔을 보게 된다. 들쥐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한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날개 없는 새 천상병은 삶 자체가 시였다. 그는 죽음을 귀천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고백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렇게 멋있는 사람은 잊히지 않게 회자되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야 한다. 나의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불행한 삶을 밑에 깔려는 속셈은 없다. 그토록 오해되고 억울하고 멸시되어 살았던 삶을 온통 긍정하고 떠난 그의 뒷모습이 맑고 눈부셔서 이것저것 계산하고 가리느라 복잡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작년 학교 선생님들과 동시를 쓰는 이안 시인을 초대해 강연을 들었다. 이안 시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때 쓴 시로 학교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자신의 혈관에 시의 피가 흐른다고 믿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아내와 함께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돈을 꽤 벌었다고 한다. 그러자 문득 이러다 내가 가난을 잃어버리겠구나 싶어 학원을 정리했다고 한다. 시인이라면 무릇 가난을 잃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인구 중 몇% 는 프레드릭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야 오염된 세상이 깨끗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시인, 성직자, 예술가들이 여기에 해당될까? 종교가 본연의 기능을 하고, 예술하는 친구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고,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지하철에서 시 읽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멋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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