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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19. 2021

1일1드로잉

꽈리고추

#65일차

반찬하려고 꽈리고추를 샀다. 대부분의 고추가 그렇듯 꽈리고추도 원산지는 중남미이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 요리에 주로 사용된다는데 그럼 중남미는 더 이상 꽈리고추를 먹지 않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며 부딪친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은 밥을 해 먹는 일이다. 세 끼 다 챙겨 먹는 것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가능한 것인지 뼈에 사무치게 느꼈다. 코로나19로 외식이 어려워지자 배달 앱을 깔아 돌아가며 주문해 먹었다. 먹는 건 조금인데 플라스틱과 비닐이 산처럼 쌓이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시켜 먹는 일을 그만두었다. 설거지하기 편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덮밥 같은 한 그릇으로 끝내는 음식도 하다 하다 질렸다. 지금은 반찬을 사서 국 없이 밥만 집에서 해 먹는 방식에 정착했다. 이 또한 반찬가게의 반찬을 모두 섭렵하고 나면 다른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가히 끼니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집에서 해 먹는 저녁밥에 질려 언니가 보내준 햄버거 쿠폰을 쓰러 버거킹 매장을 찾아 걸었다. 인터넷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니 버거킹 대신 KFC가 있었다. 매장이 철수한 것이 인터넷 지도에 반영되지 않았나 보다. 거기까지 간 것이 아까워서 좀 멀긴 했지만 그다음 가까운 버거킹으로 향했다. 태풍이 제주에 머문 탓으로 서울의 초가을 저녁은 덥고 습했다. 아스팔트 도로는 퇴근하는 차량들로 꽉 찼다. 겨우 몇 cm씩 움직이느라 자동차들이 공회전을 해대고 있어 뜨거운 엔진의 열기가 더해졌다. 그 아주머니를 본 것은 그때였다. 석양빛을 받은 자동차 위로 뜨겁고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이는데 시선이 팔려 처음엔 못 알아봤다. 가로수에 기대앉은 아주머니는 도로의 풍경에 묻혀 사람인지 몰랐다. 인도에 깔아놓은 파란 천막 위로 여자구두, 밥솥, 먼지 앉은 책, 볼펜 무더기, 이리저리 포개진 유리그릇들과 연도가 한참 지난 다이어리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그 옆엔 그 모든 잡동사니를 담아온 빈 박스가 수레 위에 묶여있었다. 노숙인은 아니었고 길 위로 출퇴근하는 분으로 보였다. 바로 옆 도로에서 연신 배기가스가 뿜어 나오고 보도블록의 열기와 높은 습도 속에서 아주머니는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팔고 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가난의 모습이었다. 남편은 그것 또한 상술이라며 어쭙잖은 동정을 거두라고 내게 말했다.


지하철 역 근처, 어둑한 퇴근길에 몇 개 없는 물건이나 나물을 파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내가 사주면 빨리 집에 가서 쉬시겠지 싶어 필요 없는 물건을 몇 번 산 적 있다. 집에 와서 밝은 빛에 풀어보면 도저히 쓸 수 없거나 먹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적선하듯 돈을 쥐어주면 자존심 상하실까 주저하게 되었고 몇 번의 망설임이 되풀이되자 이제 그런 분들이 보이면 눈 질끈 감고 걸음을 재촉하며 지나치게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셨겠지? 복지제도를 알고 계시겠지? 혹시 정신적 기능에 어려움이 있으신 거라면 길가는 행인 중 사회복지사가 알아보겠지?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한다.       


추석 달을 올려다보며 달 속에 어린 궁녀가 사는 궁전 이야기나 털이 하얀 달에 사는 옥토끼 이야기를 주고받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그림책 속에서만 연출되는 판타지라고 여기는 이들이 어딘가 있을지 모른다.

매일 일을 해도 풍성한 추석상을 차려내지 못하는 부모는 오늘도 멀건 시래깃국을 입에 퍼넣으며 서럽다. 어린 자식을 마음껏 꿈꾸게 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숟가락에 뜬 둥근 맹물달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다. 결코 바라지 않았던 삶이 현실이 되었고 일찍 잠든 아이의 얼굴에도 잘 될 거라는 소망의 달빛이 보이지 않는다.


해마다 아이들을 만날 때 잊지 않고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가야 하고 자신을 완성해가는 길에 배움은 끝이 없단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해도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해. 선생님이 없는데 누구한테 배우냐고? 인생에는 세 가지 스승이 있어. 바로 가난, 실패, 시련이야. 모든 것이 풍족할 때 인간은 권태와 부패에 빠지기 쉽지만 가난만큼 정신을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은 없단다. 남의 도움을 바라면 빈곤이지만 자발적 가난은 청빈이라고 해. 자연은 청빈한 사람을 좋아할 거야. 쓸데없이 땅을 많이 차지하고 전기를 물 쓰듯 쓰고 옷과 가방을 수없이 사서 질리면 버리는 인간보다 가난한 사람을 환영하겠지? 그리고 실패와 시련이 있어. 실패는 내가 도전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고 시련은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어려운 고비를 겪게 될 수 있는 걸 말해.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배우지 못한단다. 시련은 힘들지만 그 고통을 통해 우리는 한걸음 더 성장하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이해해서 인생이 깊어진단다..."


최근에 코로나 디바이드 Corona Divide라는 신조어를 알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계층 간 불균형 및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참고 우리말샘)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은 저소득층에 더욱 집중되었고 상위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늘었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한숨이 푹푹 쉬어진다.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구입한 선생님은 재난지원금을 받았지만 대출 없고 집도 없고 저축만 한 선생님은 재난지원금을 못 받았다. 경제성장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집값의 호가는 높아만 간다. 내가 아는 자영업 하는 친구는 1,2,3 금융권 대출에 이어 불법사채까지 손대며 버티고 있다.


가난이 인생의 스승이 되는 수준에서 그만 멈추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다 못한 말이 있다. 극빈은 상처만 남을 뿐이라고, 상대적 빈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자연재해인지 인재인지 헷갈리는 코로나19가 100% 인재로 변하기 전에 공존 공생하는 길로, 추석에 소외된 분들이 없는지 한번 더 살피고 음식이라도 나눠 먹... 코로나라서 음식을 나누면 안되겠구나..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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