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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18. 2021

1일1드로잉

사과

#64일차

가족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던가.

해마다 추석이 오면 가족에 관한 사건 사고 뉴스가 빠지지 않는다.


최초의 인간관계와 갈등을 겪으며 평생 씨름해야 할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는 가족.

서로 잘 알 거란 기대와 다르게 많은 오해와 불완전한 이해가 뒤섞인 관계 집단.

공동의 목적은 없고 공동의 생활을 소유하며 온갖 욕망의 충돌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생활공동체.

운이 좋으면 안식처, 대부분의 경우 돌아보고 싶지 않은,

더는 가까워질 수도 이제 멀어질 수도 없는 지긋지긋한 구심점.


추석이 되니 행인들 손에 선물세트나 보자기로 감싼 상자가 들려있다.

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모르게 들여다보며 상상해본다.  

문을 열면 저 상자가 맞이할 그 집의 풍경은 어떠할까?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을까?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흩어지듯 생계를 책임진 자가 문을 열었더니 가족 모두가 뒷모습을 보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릴까? 흔한 치약 샴푸 세트, 스팸이나 사과 배 따위가 담긴 상자는 집 구석 어딘가에 외따로 던져져 잊혀지겠지?


유자효의 <추석> 시를 읽었다.

시인은 부끄러웠던 젊은 날의 기억으로 나이 쉰에도 잠을 설친다.

부끄러움은 앞뒤 재지 않고 열정적으로 매달린, 열심히 살아본 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나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이불 꽤나 걷어차며 불면의 밤을 보냈었다. 청춘의 시절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기억 하나 없다면 그는 도전하지 않은 시시한 인생을 산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시인은 철들기 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으로도 잠 못 이룬다. 추석날, 달빛이 감도는 가을밤에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리며 어둑해진 집 앞 길목을 서성인다.


철이 든다는 건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영어로는 cuts one's wisdom teeth.

사랑니는 사람에 따라 1개~4개 다르게 갖고 있고 잇몸이나 턱뼈 안에 매복되어 있다.

세 번째 어금니. 음식이 부드러워지고 익혀먹으면서 필요 없어진, 진화 과정에서 퇴화된 치아.

사랑니가 돌출되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으나 보통 17~18세를 지나 나타난다.

사랑을 알 나이쯤 이가 나기 시작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사랑니.

철이 들고 지혜로워지면 나는 이라고 하여 wisdom teeth.

영어권에서 사랑니가 날 때 철이 든다고 생각한 걸 보면 가족끼리 얽힌 관계가 우리처럼 복잡하고 질기지 않은 것 같다.


그 옛날 시인의 부모님도 추석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밤이 깊도록 골목을 서성였을 것이다. 시인은 반백의 나이에 노란 추석 보름달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을 읽는다.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철이 든다.


가족을 연민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바꿀 수 없는 환경에서 나를 이루어온 과거를 수용할 힘이 생기는 나이는 언제일까? 사랑니는 진즉에 발치했다. 아마도 내 나이 쉰은 되어야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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